파란만장 취업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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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취업수기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6.07.2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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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RECRUITING: 파란만장 취업수기


애 둘 딸린 백수의 심기일전!


저는 서울 모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2000년 상반기에 대기업에 입사했습 니다. 연봉은 많았지만 일이 너무 힘들어서 3년 정도 일하다가 한 사건으 로 인해 덜컥 사표를 썼지요. 막 첫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여서 주변에서 는 가장의 책임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책이 쏟아졌고 욕까지도 들 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일단 회사를 떠나야한다는 생각이 너무 절박했 고, 다른 회사에 가면 된다는 막연한 자만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대기업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벗어난 퇴사 후의 세상은 예전 같지 않았습 니다. 계속되는 최종면접 탈락을 겪고 나서야 세상이 무섭다는 걸 알게 되 었죠. 아내가 돈 벌러 나가고 저는 집에서 젖먹이 아들을 키우던 몇 달이 지나서야 작은 무역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003년 초. 솔직 히 비전도 없어 보였고 맘에 들지도 않았지만 당장 급했기 때문에 출근하 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석 달 후 회사가 망해 다시 실업자 대열에 합류하 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많아 신입으로는 원서를 낼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그래서 생각 한 것이 국비지원으로 웹디자인학원을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운 좋게 학 원 수료와 동시에 한 외국계기업 마케팅팀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 로 탄탄한 회사라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고난은 거기가 끝 이 아니었습니다. 마케팅팀의 서른아홉 살 노처녀 과장이 문제였습니다. 사사건건 저를 갈구고 제 의견을 개진할라 치면 ‘네가 날 가르치려 드느 냐’는 식으로 괴롭히기만 해 회사생활은 갈수록 꼬여만 갔습니다.
아 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일찍 퇴근 좀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더니 ‘아무 개 씨는 퇴근하려고 출근합니까? 회사가 장난인가요?’ 이런 식으로 나오 는데 정말이지 미칠 것 같았습니다. 결국 갈등이 심화되고 사장에게 저의 해고를 건의해 결국 잘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서 답답하 고 초조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지고, 이러다 노숙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어요. 아내 또한 내색은 하지 않았지 만 몹시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다 한 친구의 권유로 9급 공무원시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형편이 어 려워 학원은 다니지 않았고 근처 구립도서관에 오전 7시에 출근해 저녁 8 시까지 공부하는 생활을 시작했죠. 지난해 3월 인천 지방직을 시작으로 총 6번의 시험을 보았고 10월 16일 시행된 서울시 지방직 필기시험에 합 격, 면접을 거쳐 12월 16일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웠 습니다. 학교 후배 중에 국가직, 서울시 7급 합격한 동생들도 있고 사법시 험에 합격한 형들도 몇몇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하나도 부럽지 않았습니 다.

9급 공무원. 절대 대단한 자리는 아니지만 저에겐 그게 전부입니다. 식구 들 굶기지 않고 가장노릇을 할 수 있으면 됩니다. 많은 분들이 공무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서 울시민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에 몇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 기회는 자기 자 신도 모르는 사이 스쳐갈 수도 있고, 기회를 잡는 사람은 인생의 전환점 이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됩니다. 제게도 그런 기회가 적어도 한번은 찾아왔 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 그룹의 전자계열 연구소에서 이동통신 S/W를 개발하고 있는 연구 원입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그다지 좋은 학벌도 아니고, 취업 시기가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여자라는 점이 가장 큰 핸디 캡이었지요. 학점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비와 용돈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기에 늘 과외와 각종 아르바 이트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하고 1년간 직장생 활을 하며 남은 4학기의 학비를 벌었습니다. 복학 후 무엇보다 실력이 중 요하다는 생각에 과 PC실에서 밤새 프로그래밍 언어와 씨름했고, 거의 매 일 밤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프로그래밍 실력이 늘어 대학원 연구실의 프로젝트 에 참여하기도 했고, 중소기업의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 기도 했습니다. 평점도 어느 정도 만회해갈 무렵, 어느새 취업 시즌이 되 었습니다. 중소기업에라도 취직하는 친구들을 보면 매우 부럽기도 했지만 순간의 안락과 작은 만족을 위해 큰 미래를 저버릴 수는 없었기에 계속 제 자신을 채찍질하며 실력을 쌓는 데 정진했습니다.

모 그룹 특채 시즌. 평점이 그다지 좋지 않은 저는 캠퍼스 리크루팅을 나 온 인사팀 직원과 기나긴 면담을 한 끝에 원서 한 장을 손에 쥐게 되었습 니다. 토익 성적표도 없었고 학점도 낮은 편이었으며, 게다가 여자라는 핸 디캡이 있었지만 제 눈빛과 자신감에 가득 찬 말 한마디 때문에 원서를 주 는 것이라며 그 담당자는 저를 격려했었지요.

면접 당일, 제 자신이 무척 초라하고 부족하게 느껴져 긴장을 풀기 위해 잠시 창밖을 통해 바라본 순간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 제 머리를 스쳤습니 다. 모두 개미만큼이나 작게만 보였고, 그 사람들은 전혀 특별하게 보이 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다시 자신감이 솟았습니다. 가슴이 뛰고, 무언가 벅차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때마침 대기실의 벽에 붙어 있는 기업의 슬로 건과 브랜드 이미지 포스터가 눈에 띄었습니다.

디지털… 조화…휴머니즘…
이런 문구를 보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기업이 원하 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면접을 보러 온 것이었죠. 미리 준비해 놓은 자기소개를 모두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기업의 가치관과 당시 시대의 조류 를 꿰뚫는 짧은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면접관들의 마음에 꽤나 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면접관들의 박수를 받았음은 물론 세 명이 함께 면접을 보 는 자리, 게다가 저를 제외한 두 명은 모두 남자였는데, 모든 질문은 제 게 쏟아졌으니까요. 저는 바로 합격 통지를 받고 제가 원하는 부서에서 근 무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은 꾸준한 노력도 있겠지만, 다가온 기회 를 놓치지 않고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제게 다가 올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음을 믿고, 열심히 실력을 쌓고 제 자신을 만들 어 나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월간 리크루트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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