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칵테일 - 피가 피를 불렀던 참혹한 남북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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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칵테일 - 피가 피를 불렀던 참혹한 남북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8.06.2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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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피를 불렀던 참혹한
남북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19세기 중반에 일어난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은 나라를 둘로 나눴을 지도 모르는 비참한 내란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숫자인 백만 명의 사 상자는 동족 사이에 벌어진 참혹한 전쟁의 결과였다. 만약 전쟁의 승패가 바뀌었다면 미국의 역사는 지금과는 딴판이 되었을 것이다.

남북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미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내재되어 있었다 고 볼 수 있다. 버지니아를 비롯한 남부의 여러 주는 기후뿐 아니라 토지 가 비옥해 대농장 경영에 적합했다. 그곳에서 생산된 면화는 영국의 면공 업을 지탱하는 토대였기에 남부는 북부보다 영국과의 유대관계가 강했다. 반면, 남부에 비해 환경적 요인이 좋지 않은 북부에서는 상공업이 발달해 영국의 공업과는 경쟁관계에 있었다. 즉, 북부와 남부의 경제구조는 거의 대립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노예제에 대한 생각도 북부와 남부는 완전히 달랐다. 남부는 대농장을 경영하려면 노예의 노동력이 꼭 필요했지만, 북부의 경우 에는 고용이나 인도적인 면에서 노예제를 부정했다. 이에 따라 연방에 새 로운 주(州)가 생길 때마다 그곳이 자유 주가 되느냐 노예 주가 되느냐 하 는 문제로 심한 분규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 문제는 1820년에 성립한 ‘미주리(Missouri)협정북위 36도 30분 이북 의 주를 자유 주, 이남의 주를 노예 주로 한다는 것’으로 일단 해결된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1854년에 노예제의 채택 여부를 주민 투표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안’이 성립되면서 그 약속은 파기되 고 말았다.

그러다가 노예제 문제를 최대 쟁점으로 했던 186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노 예제 확대를 저지하는 입장에 섰던 링컨이 당선되었다. 그러자 남부의 주 들은 그의 취임과 동시에 ‘아메리카 연합국’을 결성해 연방에서 탈퇴했 다. 이렇게 해서 둘로 나뉜 미국은 결국 1861년 4월 남북전쟁을 치르게 되 었고,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으로 국내외의 지지를 받은 북부가 최종적으 로 승리해 미국은 분열의 위기를 극복했다.

세계사 칵테일 (역사의 수수께끼 연구회 지음, 웅진윙스) 중에서

[월간 리크루트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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