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갈대밭 노을 데이트 |
갈대 위 후드득 철새가 날아오른다. 늦가을부터 겨 울 내내 서천은 낭만과 운치로 풍성해진다. 그래서 이맘때면 서천으로 여 행을 준비한다. 술 익는 마을이 있고, 서걱대는 갈대숲을 거닐고, 떼 지 어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비상을 만날 수 있는 서천은 명품 겨울여행지임 에 틀림없다. 그래서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서천을 여행한다면 훗날 아련 한 흑백사진처럼 추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전통주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한산 소곡주를 곁들인다면 시공을 초월해서 신선이 어 디 따로 있겠는가.
첫 번째 잔 입 안에 탁 털어 넣으면 그 향기로운 맛에 반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고, 두 번째 잔 쭉 들이켜면 어느새 손끝, 발끝이 취해버려 몸을 일으킬 수 없게 만든다 하여 사람들은 소곡주를 ‘앉은뱅이술’이라 불렀다. 한산 소곡주는 1,300년 전 백제 왕실에서 즐겨 음용하던 술로 알 려져 있다. 현존하는 한국 전통주 중 가장 오래된 술이다.
1800년경 주류성의 아래 마을인 호암리에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9년 7 월 3일 고(故) 김영신 씨가 선조들로부터 전수를 받아 충남무형문화재 제3 호로 지정을 받았다. 현재는 우희열 씨가 한산 소곡주 무형문화재다. 문화 재 기능은 시어머니 김영신(1997년 작고) 씨에게 전수받았다. 스물일곱 살 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소곡주를 담갔으니 벌써 40년이 지났다. 10여 년 전 부터는 아들 나장연 씨 내외와 함께 술을 빚는다.
소곡주는 연한 미색이 나고 단맛이 돌면서 끈적거림이 있고 향취는 들국화 에서 비롯된 그윽하고 독특한 향을 간직하고 있다. 술의 재료가 되는 잡곡 의 냄새가 전혀 없는 최고급 찹쌀로 빚어 100일 동안 숙성시켜 만드는 전 통곡주다.
소곡주 공장을 안내하던 우희열 씨가 독에서 방금 떠낸 소곡주 한 잔을 권 한다. 잘 익은 벼이삭처럼 노릇한 술은 향기로운 누룩향이 풍긴다. 코끝 을 맴도는 누룩향의 단내를 맡으며 한 모금 맛보니 술이라 하기 민망할 정 도로 입 안이 달콤하다. 독 안의 술을 맛본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항아리 뚜껑을 열고 한잔 두잔 넙죽 받아 마시다 보니 얼굴이 벌게지며 취기가 오 른다.
소곡주, 그 깊은 맛의 비밀
우희열 씨는 소곡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첫 번째가 물이요, 두 번째가
누룩, 세 번째가 술 익는 온도라고 했다. 소곡주에는 찹쌀과 누룩, 향을
위한 약간의 국화잎과 부정을 타지 말라는 의미로 홍고추 서너 개가 들어
가는 것이 전부다. 우 씨는 한산의 건지산 밑에서 나는 약수로 담가야만
제대로 된 소곡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인근 서천 지역에서도 소곡주
를 담가 먹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도 꼭 건지산 물을 가져다가 술을 빚을
정도라고 했다.
소곡주를 빚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쌀을 찐 후에 누룩과 쌀로 밑술을 담 그고 3일 정도 발효시킨다. 발효가 되면 밑술에 고두밥(찹쌀)을 비벼 덧술 을 빚은 후 항아리에 넣고 100일 동안 땅 속에 묻어 발효, 숙성시킨다. 소 곡주가 백일주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일주는 약주로는 가 장 오래 발효시킨 술이다. 발효 기간이 길어질수록 술 빚기가 어렵고 술 이 쉬기 쉽다. 반면 백일주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그 맛도 깊고 은근하 다. 소곡주는 18% 정도인데, 이 약주를 증류해 매력적인 43%짜리 불소주 도 만들어낸다.
좋은 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산 소곡주의 달콤함은 꽤 오래 혀끝에 남아 솜사탕처럼 입안이 화해진다. 무릇 좋은 것일수록 솜 사탕처럼 아쉬움을 남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시 찾고 싶은 여운이 생 길 것이니 말이다.
그림처럼 펼쳐지는 갈대밭의 장관
앉은뱅이 술을 뒤로하고 길 건너편의 한산모시관으로 마실을 나선다. 이곳
은 서천의 대표 특산품인 한산모시의 역사와 직조 과정을 볼 수 있는 곳.
한산모시는 백제시대 이래 1,000여 년 동안 진상품이었던 서천군의 명물이
다. 모시관 내에는 옛 베틀과 길쌈에 필요한 도구, 다양한 모시 제품이 전
시된 전수교육관과 길쌈놀이의 유래, 모시 직조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
는 전수관, 전통공방 등이 있다. 모시관에서 모시 베틀을 쉼 없이 당기는
할머니의 모습이 애잔하다. 부르튼 입술과 손등을 보니 고집스런 장인정신
이 느껴진다. 수많은 관광객이 묻는 말에 친절한 대답도 잊지 않는 할머니
의 모습도 정겹다.
한산 모시관을 나서 신성리 갈대밭을 찾아간다. 서억서억 바람 부는 쪽으 로 고개를 돌린다. 갈대밭으로 가는 길은 스산한 바람이 을씨년스럽다. 영 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송강호와 남한군 이병헌이 처음 마주치 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늦가을이 되면 노랗게 꽃을 피우는 갈대 밭의 한없는 흔들림을 보며, 날아가는 새들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 는 장소다. 폭 200m, 길이 1㎞로 면적이 무려 7만여 평에 이르는 갈대밭 은 솜털처럼 부드러운 하얀 꽃이 선선한 바람 장단에 맞춰 춤사위를 펼치 는 가을에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신성리 갈대밭은 겨울철에도 매력을 잃 지 않는다.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든 수만 마리의 철새를 만날 수 있기 때 문이다. 갈대밭의 장관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이른 아침이나 해질 녘이 좋 다. 철새를 좀 더 쉽게 만나려면 금강하구언의 철새 탐조대를 찾아가는 것 도 좋은 방법. 마량포구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면 일찍 일어나 서해의 해돋이를 감상해 보 자. 서천의 북쪽, 서면의 바닷가에 갈고리처럼 매달려 남북으로 뻗은 마량 리의 독특한 지형 때문에 마량포구 일출은 12월 20일부터 1월 초순까지는 섬이나 육지에 걸리지 않고 순전히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만날 수 있 다.
<여행정보>
- 서천군청 : http://tour.seocheon.go.kr/tour/
- 한산소곡주 : www.sogokju.co.kr
문의전화
- 한산소곡주 : 041)950-0290
- 금강하구둑 : 041)950-4579
[월간 리크루트 2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