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좌담기 Ⅰ한국전기안전공사 신입사원 4인
상태바
신입사원 좌담기 Ⅰ한국전기안전공사 신입사원 4인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9.07.28 15: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HUMAN POWER: 신입사원 좌담기 Ⅰ한국전기안전공 사


지금 꿈꾸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어느 유명한 드라마 작가의 글귀처럼 ‘지금 꿈꾸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라 외치는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신입사원 4인방을 만나보았다. 유난히 취업 문이 좁은 공사에 입사하기 위해 그들이 남몰래 삼킨 눈물이 이제는 함박 웃음이 되어 4월의 봄날을 더욱 눈부시게 장식하고 있었다. 꿈 하나로 버 텨낸 그들의 파란만장 취업성공수기를 함께 한다.

사 회 : 이주희 기자
좌담자 : 이영두 (경영지원처 총무팀)
이우진 (경영지원처 노무지원팀)
최은미 (인력관리실)
홍민희 (경영지원처 총무팀)
사 진 : 한명섭 기자

사회 여러분은 어떤 인연으로 한국전기안전공사에 입사하게 되었나요?
민희 저는 원래 행정고시 공부를 하다가 방향을 바 꿔서 공사를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전기안전공 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는데요, 고시 준비를 3년 정도 했기 때 문에 다른 구직자들보다 스펙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절실한 심정 으로 입사 준비를 했습니다.
은미 취업을 앞두고 가장 고민 을 많이 한 부분이 제가 하고 싶은 일보다 저와 잘 어울리는 일을 찾는 것 이었습니다. 처음 취업 준비를 할 때는 욕심이 많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은행권부터 항공기 승무원 까지 다양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실패도 많이 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저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공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목표를 다 시 잡게 됐습니다. 1~2개월 정도 공기업 취업준비를 하던 중에 한국전기안 전공사 채용공고를 봤는데 필기시험이 없어서 다른 공기업보다 약간 부담 이 적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취하던 곳 바로 앞에 한국전기안전공사 지 사가 있어서 늘 관심을 가지고 있던 기업이었기 때문에 지원하게 됐고 요.
영두 저는 7년 정도 부동산업을 했습니다. 사업도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였고 개인사업장이었던 만큼 자유롭고 편하게 일했 죠.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제 삶이 권태로워지는 느낌이 들더 라고요.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제가 실전에서 익힌 것들을 큰 조직에 대입시켜 일해보면 훨씬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신문에서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됐습니다. 그 순간, ‘이거다!’싶었던 거죠.
우진 저도 경력직으로 입사를 했습니다. 학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 하고 외식업체 메뉴개발팀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적성에 맞아 일은 매우 재미있었지만 직장 생활은 현실이잖아요. 근무 스케줄이 워낙 뒤죽박죽이 었고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도 많아 결혼 후까지 근무하기에는 부담스러웠 습니다. 그래서 좀더 안정적인 일을 찾던 중에 우연히 한국전기안전공사 의 채용 공고를 보고 도전하게 됐습니다.

사회 경력 직은 채용절차가 어떻게 진행됐나요?
우진 제 경우에는 이 력서, 자기소개서, 경력증명서를 제출하고 2차에 걸쳐 면접이 진행됐습니 다. 사실, 근무를 하면서 입사준비를 했기 때문에 공채 신입사원들처럼 취 업 준비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무엇을 준비하기보다 는 그 동안 제가 쌓아온 경력을 잘 포장해서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입 사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영양사 1명을 뽑는데 141명이 서류전형에 지원했 다고 하더라고요. 그 중에서 최종 7명이 1, 2차 면접을 봤습니다.

서류작성, ‘진심’을 담아 진실하고 진솔하게

사회 경쟁이 굉장했는데, 자신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우진 미모?(하하) 아마 활발한 성격과 적극적인 모습을 잘 봐 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영양사는 영양사의 비중보다 사무, 행정업무가 많거든요. 채용하실 때도 그런 일까지 해낼 수 있겠냐는 질문을 많이 하셨는데 저는 무조건 다 해낼 수 있다고 제 열 정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소개서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입사 후 포 부를 밝히면서 정말 열심히 일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적었고요.
영두 저도 경력직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업무 중심적으로 모 든 걸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에도 실무중심으로 그동안 맡은 업 무, 그리고 그 실전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것인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전기안전공사 홈페이지에서 회 사 비전 및 경영목표를 숙지했고 전기와 관련된 전문 용어들, 생소한 단어 들도 미리 파악해 두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교 졸업 후 은행에 입사해 서 근무했고 벤처기업을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일을 했지만 자기소 개서가 너무 길면 논점이 사라지기 때문에 간략하게 이야기했고 부동산 쪽 에 중점을 두어 작성했습니다.

사회 그럼 신입 공채사원들은 어떻게 서류전형을 준비하였나요?

민희 요즘 구직자들은 어학연수는 물론 제2외국어, 자격증 등 정말 스펙이 훌륭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남들보다 늦게 취업준비를 했 기 때문에 이력서에 채울 게 없었어요. 오로지 서류를 통해 보여줄 수 있 는 건 ‘취업에 대한 절실함’뿐이더라고요. 그래서 고시 준비를 할 때 온 몸을 바쳐 목숨 걸고 공부했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어 요. 없는 경력을 거짓으로 만들어 낼 수도 없었기 때문에 ‘진심’을 담 아 진실하고 진솔하게 작성했습니다.
은미 한국전기안전공 사에서 채용 공고가 났을 때 지역인재와 봉사활동 참여자를 우대한다는 걸 봤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공부했다는 점과 9개월 간의 해외봉사활동 경 험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부각시키며 자기소개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정보들을 최대한 모아 대략적인 회사 이미지를 그려보고 제 가 그 이미지에 어떻게 부합되는 인물인지를 분석해서 적었고요. 가장 주 력해 작성한 부분은 우진 씨처럼 맨 마지막 부분이었어요. 앞으로의 포부 와 각오를 밝히면서 제 가능성을 봐달라고 했습니다.
사회 면접 때를 회상해 보시죠?

우진 경력직 채용이었던 만큼 신입사원들보다 절차는 간단했 습니다. 최종 선발된 7명이 모두 1차, 2차 면접에 참여했는데 1차는 팀장 급 면접이었고 2차는 호프면접이라고 해서 식사를 하면서 진행됐습니다. 처음 1차는 3명, 4명 두 팀으로 나눠 진행이 됐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질문입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지원자가 있냐고 하시더 라고요. 사실, 그날 같이 면접을 본 분들이 다들 굵직한 회사에서 5년씩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물론, 준비도 많이 하셨는지 말씀도 잘하 시더라고요. 너무 쟁쟁한 경쟁자들이었기 때문에 얼른 손을 들고 말씀을 드렸죠. 정말 열심히 할 자신이 있고 잘 해낼 수 있는 확신도 있다, 그리 고 어떤 결과가 주어지더라도 나는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 자체를 영 광으로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죠. 심사위원들 한 분, 한 분의 눈을 응시하면 서 애절하고 절실하게!!(하하) 아마 그런 제 모습을 보시고 ‘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회사를 쉽게 그만두지는 않겠구나!’라고 점수를 주지 않으셨 을까요? 아, 지금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너무 창피하네요. 다들 저 만큼 절실하셨죠?
민희 당연하죠. 절대 창피해 하지 마세 요. 저는 한국전기안전공사로 8행시까지 준비해 가서 마지막에 손 들고 발 표했습니다.(하하)

사회 2차 호프면접은 더욱 기대가 되는데 요?
우진 2차는 초밥 먹으러 가서 면접이 진행됐는데 공사에서 이렇게 자유로운 형태로 면접을 진행한다는 게 굉장히 놀랍고 참 신했습니다. 해당 부서 팀장님, 직원들과 자유롭게 식사를 하는 자리였는 데 아무리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도 엄연히 면접이잖아요. 겉으로는 하하 웃 으면서 맛있게 식사를 했지만 결국 그날 체해서 고생했습니다! 특별히 질 문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제 모든 행동이 채점의 대상이 될 것 같아서 먹으 면서도 계속 표정관리하고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아마 팀에 합류했 을 때 얼마나 잘 융화될 수 있는지를 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재 미있는 건 면접에 참여했던 7명끼리 서로 웃고는 있지만 소리 없는 전쟁 이 치열했다는 점이었어요. 식사하러 자리를 옮기는 중간에도 저희끼리는 눈도 안 마주쳤던 건 물론이고 “나 술 못 하는데…” 하던 분이 자리 앉 자마자 ‘원샷’을 하시더라고요. 회를 못 먹는다고 하신 분도 계셨는데 웬걸, 다 드시더라고요.(하하) 이쪽에서 물 컵 놓으면 저쪽에서는 숟가 락, 젓가락 놓고 있고 그럼 저는 얼른 컵에 물이라도 따르고. ‘참 치열하 구나!’ 느끼면서도 속으로 참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회 웃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슬프기도 한 면접이었네요. 신입사원 들의 면접은 어땠나요?
민희 의외로 저희 면접 때는 제 가 조원들을 잘 만나서 그런지 분위기가 좋은 편이었어요. 1차로 인성면접 (임원&팀장급), 2차로 토론면접이 진행됐습니다. 토론면접 때는 요즘 UCC 가 많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현황과 장단점을 이야기해보고 UCC의 발달로 인해 발생한 문제점에 대해 해결책을 도출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다행히 토론면접 들어가기 전에 조원들끼리 의기투합을 해서 서로 공격하 지 말고 의견을 보충•보완하는 식으로 진행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게 성공해서 화기애애하게 잘 마무리됐습니다.

은미 맞아요, 그때 저랑 민희 씨랑 같은 조였는데 서로 공격 하는 건 전혀 없었고 돌아가면서 발언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고 누군 가 여러 가지 의견을 내면 다른 사람은 정리를 해줬죠. 그 덕분인지 저희 조는 4명 중에 한 명 빼고 다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참 신기했던 점은 한 국전기안전공사에 합격하려고 그랬던 건지 면접날 아침부터 이유 없이 기 분이 매우 좋았어요. 그 덕분에 토론면접 때도 공격적으로 임하기보다 누 군가가 빠뜨린 의견에 대해 보충하는 역할을 하며 가뿐한 마음으로 면접 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영두 거긴 다들 착했네요. 저 희 때는 살벌했거든요. 부동산 전문직으로 지원해서 면접까지 올라온 사람 이 총 6명이었는데 그 중에 한 명만 합격하는 만큼 각개전투를 펼쳐야 했 습니다. 주제는 스피드 콜에 대한 것이었는데 다들 그게 뭔지도 정확히 파 악하지 못할 만큼 스피드 콜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상당히 공 격적으로 토론이 진행됐는데 그 중에 좀 과하게 격론을 펼치던 사람 중 하 나가 저였습니다. 제가 원래 어떤 문제에 대해 논쟁을 펼쳐서 분석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그날은 더욱 흥분을 해서 상대방이 말을 꺼내지도 못 하게끔 공격을 했습니다. 솔직히 토론면접을 마치고 나서 왜 이성을 잃었 을까 후회하기도 했는데 저한테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 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유지해야

사회 2차 면접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좀 해주세 요.
은미 회사에 대해 이것저것 공부를 해가기도 했지 만 행운도 따랐던 것 같습니다. 임원 면접을 보는데 저에게 한국전기안전 공사의 부산사업소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제 가 자취하던 곳 바로 앞에 부산사업소가 있어서 빌딩 이름까지 알고 있었 거든요. 시원하게 대답을 드린 것은 물론 제가 이만큼 한국전기안전공사 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귓속에서 ‘할렐루야’가 울 려 퍼지는 것 같더라고요.
민희 저랑 너무 달랐네요. 저 는 행정고시 공부를 한 부분에 대해서 공격적인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마, 행정고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입사를 지원한 건지 아니면 잠시 취 업해서 돈 좀 벌다가 다시 공부한다고 퇴사를 하려는 건지 파악하려고 하 셨던 것 같아요. 고시공부를 왜 했고, 왜 그만뒀는지, 다시 공부할 생각 이 있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부라고 하면 이제는 지긋지 긋하다고 쐐기를 박는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제가 가지 못 한 길에 멈춰 서서 세월을 낭비하기보다 사회생활을 통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고 싶다고 했죠. 끝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고시공부 에 대해 너무 많은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발언 을 하라고 하시기에 시키지도 않은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대한 8행시를 발표했죠. 사실 전에 농협중앙회에 지원해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진 경험 이 있거든요. 그때 최종면접에서 농협중앙회로 오행시를 지을 수 있는 사 람은 발표를 해보라고 하셨는데 준비를 못 해서 발언기회조차 잡지 못했어 요. 그래서 한국전기안전공사 면접 때는 미리 8행시를 준비해서 갔던 것 이 효자 역할을 했습니다. 너무 긴장하니까 잊어버려서 실수도 했고 혼자 하려니까 창피하기도 했는데 부사장님께서 제 노력이 가상했는지 홍보용으 로 쓸 거니까 적어놓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나니 마음 이 조금 안정되더라고요.

영두 저도 중개업을 잘 하고 있는데 왜 입사를 하려고 하냐 며 민희 씨처럼 압박질문을 받았습니다. 중개사 자격증이 있으니까 일하다 가 힘들면 쉽게 퇴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안정된 모습으로 제가 한 결정에 대해 꾸준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습니다. 특히, 공기업 의 특수성을 이야기하면서 짧게 다닐 거면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거라고 신뢰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회 대학시절로 다 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도전을 더 해보고 싶으세요?
우진 개인적으로는 식품영양학보다 식품공학 쪽으로 공부를 더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자유시간이 가장 많은 시기인 만큼 여행도 많이 해보고 싶 고 다양한 경험을 위해 인턴십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저는 휴학 한번 하 지 않고 졸업을 했고 취업도 일찍 했기 때문에 제 삶에 대해 여유를 가지 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거든요. 만약 후배들이 이 글을 보고 있다 면 취업 전에 많은 걸 경험해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그게 다 자신 의 재산이 되는 거니까요.
민희 저는 대학시절 학생회와 동아리 활동을 활발하게 한 편이에요. 큰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고 후배들 을 데리고 다니면서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경제학회라는 토 론 동아리가 취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경제 상황에 대해 조사하거나 조별로 토론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학회지를 만드는 활동 을 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거든요. 다만 아쉬운 건 대학교 3학년 때부 터 고시공부를 시작해 봉사활동이라든지 어학연수, 인턴십 같은 경험이 없 다는 것입니다. 머리를 채워주는 건 공부이지만 가슴을 채워주는 건 경험 인 것 같아요. 특히, 조금만 돌아보면 주변에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더라고요.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과 진심을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 는 넉넉함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 다.
은미 저의 대학생활은 정말 지나치게 모범적이었 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린 마음에 서울권 대학을 못 간 게 콤 플렉스가 됐나 봐요. 그래서 학교이름이 아닌 다른 걸로는 절대 누구에게 도 뒤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다른 친구들이 신나게 놀 때도 토익점수를 높이고 제2외국어 공부를 했죠. 마지막 취업할 때 웃겠다는 심정으로 독하 게 준비해서 교환학생으로 중국에도 다녀왔고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 해서 영국에서 9개월 동안 장애인 센터에서 봉사활동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에는 못 들었던 수업을 보완하며 학점 관리를 했습니다. 완벽 하게 취업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4학년 2학기 때 당연히 취업이 될 거라고 확신했죠. 그런데 졸업하고도 8개월 동안 취업을 못 해서 가슴 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서류상의 조건은 충분했는지 몰라도 면접관 앞에 섰을 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과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뭘 보 여주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다시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제가 정말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아 거기에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싶어요.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자신이 어디를 향해 뛰고 있는지 모른다면 아무 소용없잖아 요. 그렇기 때문에 대학기간 동안 자기가 목숨 걸고 뛰어야 하는 곳이 어 딘지를 찾아내는 게 중요합니다.
사회 취업문이 어느 때보다 좁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취업에 성공 한 선배로서 한 마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민희 제 경 우에는 고시공부를 할 때는 그나마 꿈이 뚜렷했기 때문에 힘든 줄 몰랐는 데 공부를 그만두고 취업 준비를 하려니까 너무 막막해서 숨까지 막히더라 고요. 두 달 동안 말도 안 하고 방 안에서 컴퓨터로 취업 정보만 찾았는 데 밥도 못 먹고 상태가 말이 아니었죠. 그때 제 손을 잡아주고, 기댈 수 있는 벽이 되어준 존재가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대학 졸업과 함께 경제적 으로 독립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혹시 그렇지 못하더라도 부모님께 너무 죄송해 하기보다는 1~2년만 더 투자해 달라고 당당히 말씀을 드리고 자신 의 도전 분야에 대해 끝까지 자신감 있게 준비를 하십시오. 본인이 주눅 들어 있으면 면접 기회를 얻게 되더라도 면접관들이 금방 그런 약한 모습 을 눈치 채거든요. 언제, 어디서든 스스로를 지켜내십시오!
은미 취업이 안 돼 마음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울컥해요. 저는 토익점수 때문에 책도 씹어 먹은 여자예요!(하하) 그때 바닥까지 내 동댕이쳐져서 다시는 못 일어설 것처럼 막막한 패닉상태였는데 지나고 보 니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한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 시간을 통해 앞 으로 뭘 어떻게 해나갈지 많이 고민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게 다행이에요. 앞서 민희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구직자 여 러분이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원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고 하잖아요. 늘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 합니다.
영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분들에게 박수를 쳐주 고 싶네요! 솔직히 저희 때는 취업하는 게 이만큼 힘들지는 않았거든요. 다만 제가 후배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은 대학시절을 통해 인생에 필요한 딱 두 가지만 정립해서 사회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평생 자 기와 같이 갈 운동을 정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위기의 순간들이 많은데 그 순간을 그나마 힘 있게 극복할 수 있는 방편 중 하나가 운동이라고 생 각하거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어느 회사에 입사하느냐에 인생의 초점을 맞추기보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취업이 인생의 끝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이 두 가지를 깨우치고 대학 을 졸업한다면 사회생활에서 반은 성공할 수 있는 거라 믿습니다. 사실, 저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방황을 많이 한 경우였습니다. 대학 졸업하자 마자 은행에 입사하는 행운을 품에 안았지만 입사한 지 11개월 만에 적성 과 맞지 않아 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벤처 기업을 시작했지만 그것도 실 패했고요. 이러한 다양한 경험이 제 인생에 플러스가 될지는 몰라도 목표 에 도달하기까지 남들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허비하는 상황을 만들잖아 요. 당장 눈앞에 닥친 취업에만 급급하기보다 인생을 길게 보고 대학생활 을 할 수 있는 후배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꿈이 있는 사람과 없 는 사람의 직장생활은 천지차이인데요, 당당함에서부터 그 차이가 드러납 니다. 꿈이 없는 이는 현재 직장에서 제공하는 조건이 절대적이고 나에게 너무나 위대하잖아요. 하지만 꿈이 있으면 직장의 조건이 꿈을 위한 도구 이지 절대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할 수 있기 때문입 니다. 그러니까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평생 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 습니다..

[월간 리크루트 2009-0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