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포’탈출, 취업이 전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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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포’탈출, 취업이 전부인가?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5.04.2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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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에서 학기 초는 학생에게나 교직원에게나 가장 바쁜 시기이다. 올해는 유난히 더했다. 밤까지 학교에 남아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잦았고 낮이면 시시각각 처리해야 할 일들에 지쳐 있던 상황에 받은 전화였다.
“선생님, 저 OOOO 회사에 지원하려는데 이력서가 엑셀 양식 밖에 없는데 이걸로 올려도 될까요?”
가끔씩 메시지로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곤 했지만 몇 달 만에 온 전화의 첫마디 치고는 너무도 삭막하지 않은가? 게다가 엑셀 양식 밖에 없다니. 함께 고치고 다듬었던 자기소개서만 해도 족히 열 개는 넘을 것이고 내 기억으로는 아래한글 양식이 대부분이었다.
“예전에 써둔 것은 어쨌느냐.”
“있어요.”
“그럼 왜 없다고 하느냐.”
“노트북에 한글 프로그램이 없어서요.”
“다른 곳에서 해보면 되지 않겠느냐.”
“할 데가 없어요, 그럼 안 올릴게요.”
“아니다, 우선 있는 것만이라도 보내봐라.”
 
 엉뚱한 양식에 고집스런(?) 자기소개서가 올 것이 확실했지만 실랑이를 계속할 여유가 없었다. 우선은 마음을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J학생과의 상담은 매번 다른 학생들과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J학생은 졸업한 지 3년이 지났고 여러 번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때마다 자신의 힘든 상황을 자조하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다행히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연락이 온다. 대부분 지금처럼 퉁명스럽고 기가 죽은 목소리지만 재취업할 곳을 찾는다는 신호이기에 당장은 안심이 되곤 했다.

취업에 성공한 시점이 처음 포기를 결심한 시기
 ‘5포세대’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면 J학생이 자꾸 떠오른다. J학생이 처한 현실은 마음 한 켠에 항상 풀어야 할 숙제로 자리 잡고 있다. 안타까움과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현실은 지금 20대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를 모두 포기한 채 살아간다는 지금의 20대들에게 더 이상‘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위로는 통하지 않는다. 소설가 김영하 씨는“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는데 그것도 사치”라고 말했다. 쌓아야 할 스펙만으로도 허덕거리는데 언제 하고 싶은 일을 하냐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쌓아놓은‘5포세대’의 스펙 총량은 그 어느 세대보다 우월한 수준이다.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인데 삶의 만족도는 최저인 것이다.
 지난 2월에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2030세대 28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 중 포기한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1660명(57.6%)이 ‘있다’고 답했다. 포기하게 된 이유로는 ‘모아 놓은 돈이 없어서’,‘ 현재 수입이 없거나 너무 적어서’이다. 최악의 청년 취업난과 장기화되는 경제 불황이라는 차가운 현실 때문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처음 포기를 결심한 시기가 ‘첫 취업에 성공한 시점’이 29.9%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 시기가‘취업 준비 시점’(28.2%)이라는 것이다. 무언가 좀 이상하다. 스스로가 느끼는‘5포’의 이유는 ‘돈이 없어서’인데 취업을 하면 당연히 해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취업을 하는 순간부터 포기를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취업을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이다. 실제로 우리 학생들도 취업 이후에 다시 상담을 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확고한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남들이 하는 대로 흐름에 따라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취업 이후에도 진로에 대해 다시 원점에서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무작정 따라가는 취업을 포기할 것
 앞서 말한 J학생의 경우도 대학 취업담당자의 시각으로 지적할 문제는 많았다. 우선 처음부터 원하는 직무가 뚜렷하지 못했다. 학점은 3점 초반, 자격증도 없었다. 다행히 졸업 전에 대기업의 디스플레이 생산관리직으로 입사했지만 잦은 시간 외 근무와 팀원들과의 불화(J학생의 표현으로는 같은 여자에게 부리는 심한‘텃새’)로 직장을 나오게 되었다. 이후 취업한 곳은 중소기업의 총무사무직이었는데 직무 일관성이 없는 이직이었고 전문성을 갖추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으며 이력(이력서를 포함하여) 관리 또한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취업담당자로서의 지적이 아닌 친구나 멘토로서 해 줄 수 있는 말은 불안감에 대한 것이었다. 빨리 다른 곳에 취업을 해야 하고 조금 더 안정적인 곳에 취업을 해야만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다른 길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대학가면 예뻐진다’는 엄마의 말은 거짓말이지 않았는가. 그럼‘취업하면 좋아진다’는 말을 믿고 열심히 달려가는 우리들은 또 한 번 속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취업하면 좋아질 수도 있다. 단‘5포’를 해결하기 위해 무작정 달려드는 취업은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5포’의 압력을 더욱 실감할 수도 있다. 돈을 벌면 좋아질 것 같아서 혹은 지금의 상황보다는 나아질까 싶어서 하는 취업은 아니라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5포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것들은 포기해서도 안 되는 것들이다. 포기라는 말은 욕심을 버리고 완전히 내려놓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에 지금의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포기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그렇다면 포기를 부추기는 세상의 트랙을 한 발짝 벗어나서 여유롭게 걸어보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삶의 여유를 얻을 수 있는 자발적 비정규직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이름 난 대기업은 아니지만 작은 일부터 배울 수 있는 회사도 좋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좋아하는 일을 작당(?)해보는 것도 좋고 일찌감치 창업을 꿈꿔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지금 세상의 한 켠에서 열심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구한다고 얻어진다는 것이라면 마부 노릇이라도 하리라. 그러나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라 살리라.’
공자의 말이다. 어쩌면 이 말에 해답이 있을 수도 있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는 포기하면서, 무작정 따라가는 취업만은 포기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큰 문제가 아닐까. 차라리 취업을 포기할지언정 더 중요한 것은 뺏기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취업과 5포탈출에 모두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해 본다. 

                                                     김종탁


                                       동서울대학교 산학취업처 취업담당관(現)
                                                    ㈜모닝뉴스 사회부 취재기자
                                                    계간‘시사교육매거진’객원기자
                                                    월간‘자유’객원기자
                                                    ㈜다산 사보웹진 객원기자
                                                   (rolling-tak@hanmail.net)

 

연재 순서
1.‘ 5포’탈출, 취업이 전부인가?
2. 열정페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3. 눈높이를 낮추라고? 꼭 닮은 결혼과 취업
4. 직업심리검사 해본 적 있으세요?
5.‘ 묻지마 지원’이 어때서?
6. 잘 나갔던 이야기는 필요 없어요
7. 그 모든 것의 종결점은 연봉?
8. 대한민국 구인회사에 쓰는 편지
9.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10. 커리어와 라이프, 양다리 걸치기
11. 취업을 버린‘취업준비생’
12. 한 발 물러서서 보는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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