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서의 인문학 역량, 필요하긴 하지만 시험으로 가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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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에서의 인문학 역량, 필요하긴 하지만 시험으로 가능할지…
  • 이상미 기자
  • 승인 2015.04.28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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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about 인문학
채용시장의 인문학 도입에 대해 현장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채용시장의 흐름과 트렌드를 항상 주시하는 취업전문가와 채용 시장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취업 준비생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인문학적 소양,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것 아니야”
신상진 커리어멘토스 컨설턴트/이사


몇 년 전부터 시작된‘인문학’열풍이 이제 취업 시장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문과와 관련이 많아 보이는 인문학을 IT와 같은 기술업종에서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이러한 현상이 생겨났으며, 인사담당자와 구직자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기업들이 ‘인문학’이란 키워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1세기 비즈니스 패러다임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의 기술은 특정 산업이나 특정 고객층에만 영향을 주는 개별 기술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급속히 발전한 IT기술의 파급효과가 다양한 산업과 고객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컴퓨터, TV, 핸드폰, 자동차는 제조사 입장에서나 소비자 입장에서 사용목적이나 기능적으로 독
립적인 제품이었다. 하지만 이제 컴퓨터로 TV를 보는가 하면 TV가 인터넷과 연결되고, 스마트폰은 컴퓨터와 TV 역할을 대신한다. 또, 자동차도 단순한 동력 기계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와 통신, 인공지능을 탑재한 전자기기가 되어가고 있다.
이와 같이 기술이 융합되면서 이종 제품 간에 상호경쟁 관계가 발생하고, 한 제품의 활용성이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다양해짐에 따라 상품기획, 디자인, 사용 편의성이 예전보다 훨씬 중요한 차별요소가 된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기술은 디지털이지만 최종적인 사용자 입장에서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시각의 접근이 중요해졌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고와 행동특성의 본질은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은 아날로그 제품을 대체할지는 몰라도 아날로그적인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최대한 모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아날로그적인 시각과 사고가 인문학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비즈니스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인 고객을‘아날로그적 관점’으로 이해하여 디지털 기술과 연결 시켜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 확대될 수 밖에 없다. 고객의 제품 적응속도를 앞지르는 기술의 발전 속도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결국 무조건 최신기술을 적용했다고 해서 고객이 제품을 선택해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얼마나 빠르게 새 기술에 익숙해지고 새 기술의 효용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제품의 성공여부를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소양, 인간과 세상에 대한 탐구에서 길러져 우리가 한가지 간과해서 안되는 것은 이러한 인문학적 소양을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한 사람이 자연과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사고를 복합적으로 발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들은 성급하게 인문학적 소양과 자연과학적 소양을 동시에 가진 너무나 이상적인 인재상을 추구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얼마 전에 모 대기업에서 인문계열 학생들을 채용하여 기술교육을 시켜서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S/W개발자로 양성하겠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지은 적이 있다. 물론 SI업종과 같은 분야에서는 S/W 개발자로 문과생을 채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회사는 전자제조업체로 그동안 이공계열 관련 전공자만 채용을 했던 기업이다. 오랫동안 학생과 사회인의 커리어컨설팅을 해 온 필자는 자신의 전공이 컴퓨터 관련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적성에 맞지 않아 전공과 관련이 없는 직무로 진로를 희망하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 연구원이나 개발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이공계열 전공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성에 맞지 않아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친구들은 역으로 생각하면 이과적성 보다는 문과 관련 적성이 더 높을 가능성이 많다. 애초에 문과를 갔어야 할 학생들이 이과를 가서도 적응을 못하는데, 기술이 중요한 기업에서 구태의연하게 문과생을 뽑아서 개발자로 변신시키겠다면 기업이 원하는 ‘인문학적 소양’이 다
분한 개발자를 양성할 수 있을까? 개인의 흥미와 적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개발이란 직무에 있어 우선 순위는 이과적성에 있는 것이지 문과적성이 될 수는 없다.
인문학적 사고를 통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낸 사례를 꼽는다면 누구나 주저할 것 없이 스티브 잡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가 청년시절 리드대학(Reed College)에서 서체 수업을 받은 덕분에 맥킨토시의 혁신적인 UI(User Interface)가 개발되었고, 그 영향이 오늘날 ‘아이폰 신화’의 토대가 된 스토리는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리드 대학에서 서체 수업을 듣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이러니 하게도 ‘자퇴’
를 하였기 때문이다. 자퇴를 하였기에 정규 커리큘럼에 구애 받지 않고 자신의 흥미와 직관을 따라서 청강한 과목이 ‘서체 수업’이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시대가 요구하는 인문학적 소양이란 교육이나 지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에 대해 자유롭게 탐구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대가 요구한다고 하여 ‘인문학적 소양’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기업과 구직자의 몸부림이 과연 인문학적인 태도인 것인지 자문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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