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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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5.05.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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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요청 문의가 왔다. 행사나 콘서트의 음향시스템을 다루는 일이라고 했다.직원채용을 요청한 사람도 고용주가 아닌 중간 담당자였다. 방송과 음악 분야의 고용관계가 복잡한 피라미드의 구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러려니 했다. 대신 학생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부터 확인해 보았다.
“급여는 어떻게 되나요?”
하는 정도에 따라 시급 5,000원 내외란다. 귀를 의심했다. 2년 전인 2013년에도 최저임금은 4,860원. 그 때 이후로 직원 급여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았나보다. 시급은 낮은 편이지만 현장에서 일을 잘 배울 수 있다고 했다. 행사 일정이 정기적이지 않아 그나마 한 달에 열흘 정도는 휴무였다. 열정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고 더 중요한 것은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원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런 일에 우리 학생들을 연결시킬 수는 없었다. 올해의 최저 임금은 5,580원이니 그 시급으로 일을 시키다가는 옥살이를 할 수도 있다는 충고를 보태고 얘기를 마쳤다.

열정페이, 젊음과 열정이라는 명목의 노동착취
처음 ‘열정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지 못했다. “열정이 있으니 페이를 더 많이 준다는 건가?”라는 정말 바보 같은 - 사실은 정상적인 - 생각을 했다. 물론 틀렸다. ‘열정페이’는 일부 회사에서 열정을 빌미로 힘든일을 시키고도 적은 급여를 주는 것을 말한다. 작년 하반기부터 기사를 통해 듣게 된 일종의 신조어였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던 행태이다.
젊음과 열정을 미끼로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히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고 가르치던 관습이 남은 업계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이어 내려온 악습이다. 패션업계, 미용업계, 디자이너, 연극과 영화를 포함한 연기예술 분야, 음악과 공연 업계, 방송과 영화계의 스탭, 호텔과 리조트 업계, 잡지사의 어시스턴트, NGO를 비롯한 사회복지 분야, 애니메이션과 게임업계 등은 대표적으로 열정페이가 행해지는 분야이다. 심지어 공기업마저 무급으로 인턴을 채용하여 논란이 되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지성과 윤리의 중심이 되어야 할 곳임에도 열정페이만 받으며 지도교수의 업무(대부분 잡무)와 연구를 대신하고 있는 대학원생이 부지기수다.
‘열정페이’의 가장 흔한 형태는 인턴이나 견습직원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한 업무와 턱없이 모자라는 급여를 주는 ‘인턴형 열정페이’다. KBS의 ‘추적60분’에서 한 유명 패션디자이너가 한 달에 30만원도 안 되는 돈을 주고 인턴을 고용하여 일을 시킨 사례가 보도되었다. 급여도 문제였지만 업무를 배우는 대신 온갖 잡무와 야근만 일삼다가 인턴 기간 후에 해고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열정과 취업의지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사용자(사업주)는 ‘분노유발자’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를 따져보면 좀 더 복잡해진다. 대학에서 일정 기간의 현장실습으로 학점을 인정해주는 과정이거나 고용노동부 등 관련 기관이 주관하여 직장을 체험하는 연수 과정이라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앞서 말한 패션디자인 업체에서도 학점인정 과정의 실습생이 일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에서는 현장실습 과정을 필수로 진행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귀찮고 처리해야 할 서류가 많다는 이유로 이런 과정을 꺼리는 편이다. 이런 현실에서 좋은 취지의 과정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교육’ 대신 ‘노동’을 강요했다는 점이 더욱 괘씸하게 여겨진다.
학점인정 실습과정이나 직장체험 연수과정 등이 아니라 해도 채용하는 회사 자체에서 교육을 목적으로 무급인턴을 뽑는 경우가 있다.  '교육 위장형 열정페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대부분 공기업 등 청년들이 선망하는 회사가 그래왔다.무급인데도 항상 지원자가 넘쳐난다. 판단여하에 따라서 ‘노동’인지 ‘교육’인지를 구분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인턴지원자에게 이 판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는가가 중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무급인턴이 실제 채용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업계 1, 2위를 달리고 있던 소셜커머스 회사에서는 인턴기간 동안 정규직과 똑같이 영업을 맡기고 실제로 그들이 성공한 거래로 수익을 냈다. 인턴의 능력을 평가한다는 명목으로 사업에 활용하고는 내팽겨치는 치밀한 ‘계획형 열정페이’의 유형이다. 경쟁에 내몰린 인턴들은 많게는 하루 10시간이 넘도록 거래들을 성사시키는 일을 했지만 인턴기간 이후 단 한명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관행을 막을 제도적 장치는 아직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교육이 아닌 노동의 영역에 포함되는 일체의 근무는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에 따라 정당한 근로조건과 대가가 지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보란 듯이 법을 어기는 ‘뻔뻔한 열정페이’유형이 너무 많다. 서두에 예로 든 음향시스템 회사가 그렇다. 공연, 영화, 방송계에서는 ‘뻔뻔한 열정페이’가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영화산업 노조의 2014년 영화스태프 근로 환경 실태 조사에 따르면 막내 스탭의 평균 근무시간은 주당 71.8시간이었고 평균연봉은 556만원에 불과했다. 그래도 이들은 꿈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기에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이런 처우를 견디고 있다.

용기 있는 대처로 저당 잡힌 꿈을 되찾을 것
그렇다면 우리의 대처방안이 있을까? 우선 근로조건에 대해 명확히 알고 가능하다면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단기간의 근무라 해도 최저시급 이상은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급여에 대한 내용을 물으면 예의가 없다는 식의 시선.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바뀌지 않는 한 어렵더라도 이렇게 해야 한다.
학점인정 인턴제나 현장실습 과정처럼 처음부터 급여가 주어지지 않는 과정이라면 그 프로그램의 취지와 내용을 잘 알고 시작해야겠다. 기간과 근무시간, 과정 중 작성되어져야 서류, 협약 사항 등이 명확하다. 문제는 어떤 일을 하느냐이다. 사전에 협약된 교육과정이나 실습과정의 업무만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구분 자체가 어렵고 지켜지기도 힘들다. 단순 노동이나 잡무에 시달린다면 혹은 협약된 내용과 다른 처우라면 반드시 주관하는 기관이나 대학 당국에 얘기해서 도움을 얻어야 할 것이다.
‘청춘은 돈을 따지지 않는다’, ‘열정이 있으니 버텨보라’는 뻔뻔한 열정페이를 강요한다면 과감하게 버리고 나오는 방법이 가장 좋을 수도 있다.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여기서 못 버티면 어디가도똑같아’, ‘고생 끝에 낙이 오는거야’, ‘나도 처음엔 그랬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 휘둘리거나 자괴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전태일 열사가 다니던 미싱공장 사장도 똑같은 말을 했을지 모른다. 법조차 지키지 않는 회사에 소중한 꿈을 저당 잡히고 있을 이유는 없다.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못된 기업들이 사라진다면 이런 대처 자세를 나열하지 않아도 될 터. 처음 착각했던 대로, 열정페이란 말이 ‘열정이 있으니 페이를 더 많이 준다는 의미’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김종탁(
rolling-tak@hanmail.net)

 이렇다 할 스펙 없이 대학 졸업 후 지역 일간지의 사회부 기자로 뛰어들었으나 재정난으로 문을 닫아 한참을 백수로 보냈다. 대책 없이 안타까웠던 20대의 한을 지금 대학생들에게 풀어보고 싶다는 필자는, 계간 [시사교육매거진], 월간 [자유] 등에서 객원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동서울대학교 취업담당관으로 8년째 학생들을 만나며 취업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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