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갔던 이야기는 필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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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갔던 이야기는 필요 없어요!
  • 김종탁 동서울대 취업담당관
  • 승인 2015.09.07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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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멘탈강화서

김 과장이 있는 홍보팀에는 남녀 각각 1명의 인턴생이 배정됐다. 방학동안의 단기 인턴 과정임에도 꽤 많은 경쟁이 있었다. 김 과장은 이력서를 대충 넘겨보았다. 과연 우수 인재라 할만 했다. 여학생은 졸업을 하기도 전에 우수한 토익점수를 갖추고 있었고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까지 공부하고 있었다. 지난 방학에는 대기업의 해외봉사단에 참가한 이력도 있었다. 남학생은 한 학기 동안 캐나다에서 교환학생과정을 마쳤으며 4.0이 넘는 우수한 학점이었다. 마지막 여름 방학을 인턴으로나마 근무할 기회를 가져 기쁘다는 학생들을 보며 김 과장은 자신의 대학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순수함이 가득했던 김 과장의 대학생활
김 과장의 대학시절엔 방학이 시작되면 농활을 떠났다. ‘농촌봉사활동’의 줄임말이라고 짐작하지만 한 번도 무엇의 줄임말인지 얘기해본 적은 없었다. 농활은 그저 농활일 뿐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제법 많았으므로 갈 곳은 많았다.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할 일 없이 과방에서 서성거리던 친구들은 출발하는 날 목적지도 모른 채 함께 나서기도 했다. 따라 나서지 않는다고 해봐야 과방에 놓인 386컴퓨터로 테트리스 게임의 기록 갱신에 몰두할 뿐, 딱히 할 일이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봉사활동에는 공부방 봉사도 있었다. 야학 교실이 남아있던 때였다. 김 과장은 그 곳에서 선생님을 자처하며 활동했다. 정작 낮에는 강의실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다가 밤이 되면 선생님이랍시고 옷을 차려입고 야학교실로 향하곤 했다. 봉사활동이 아니면 동아리 활동이었다. 전공수업보다 동아리 활동을 더 중요시한 친구들이 많았다. 활동이라기보다 동아리방에 죽치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이들은 수업이나 학점을 신경 쓰지 않았음에도 누구보다 분주하고 또 진지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대학 풍경이다. 사회봉사와 동아리 활동이 대학생의 당연한 책무라는 인식도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별 생각 없이 선배들을 따라다녔고 그저 재미있어서 열심을 낸 것이 더 컸다.
졸업 후 무엇을 할지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취업과 진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았다. 미래를 많이 내다보며 살지 못했기에 오히려 자유로웠다.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시절이었고 동시에 축복받은 시간이었다. 틈만 나면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던 김 과장은 오늘은 좀 숙연해지려 한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하고도 졸업 때에는 무난히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스펙’이라 내세울 것도 없었지만 취업에는 큰 걱정이 없었다. 물론 그 때도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었다. 졸업하기 전 IMF 시기를 거쳐야 했고 비정규직이 늘어났으며 청년실업률이 문제라는 뉴스는 지금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요즘 그 때처럼 대학시절을 보냈다면 지금 회사로의 취업은 힘들었다는 점이다.
인턴들은 여전히 허리를 꼿꼿이 하고 앉아 있다. 첫 출근한 날을 긴장 반 두려움 반으로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지만 지금 자신이 이들과 경쟁했다면 어쩌면 합격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대학생들의 안타까운 현실
지금 대학생들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봉사활동과 사회경험을 하는 것은 그대로이지만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가 달라졌다. 아무래도 취업을 염두에 두다보니 농활이 기업의 서포터즈 활동으로 바뀌었고 공부방 봉사활동보다는 해외 현지봉사활동이 더 중요해졌다. 중요해졌다는 것은 자기소개서에서 비중이 커졌다는 말이다. 그렇다. 그 때와 다른 것은 모든 활동이 반드시 자기소개서에 쓸 수 있는 활동이라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길지 않은 방학 기간 동안 토익 강좌를 들어야 할지, 기업 서포터즈 활동을 나서야 할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지, 어학연수를 다녀와야 할지, 인턴과정으
로 근무를 해야 할지를 말이다. 여행을 할 때도 자기도 모르게 자기소개서에 쓰일 만한 스토리를 의식하게 된다는 학생도 만나 보았다. 졸업을 하고 자소서를 써봤기 때문에 이왕이면 그‘밑천’이 될 만한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주객이 전도되어 있는 이런 사정을 기존의 세대들은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동아리 활동을 하더라도 취미가 아니라 면접에 유리할 만한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필자가 아는 국어국문과 학생은 방송 작가 지망생이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클래식음악 동호회에 들어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유는 ‘작가적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말을 면접관들 앞에서 증명해 보이기 위함이란다. 하지만 과연 면접관들이 그 ‘증명’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일까? 진짜 자신이 좋아해서 동호회 활동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확실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간단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금, 학생들은 ‘말러 교향곡 9번’이 어떤 곡인지 단 몇 초만에도 들을 수 있고 설명 할 수 있다. ‘짐자무시’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물론 심지어 그 감상까지도 실제로 보지 않더라도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오래 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명확했다. 당시의 ‘매니아’들은 발품을 팔아 음악을 들었고 영화를 봤다. 음악감상실과 레코드 가게, 비디오방과 도서관과 서점을 직접 다녔다. 어렵게 얻은 레코드판이나 비디오테이프 등은 거룩한 그 무엇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허세를 부릴지언정 누구도 말리지 못할 족속들이었다. 역시 취업의 압박에서 좀 더 자유로웠던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사실 지금의 변해버린 환경 앞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필요가 없다. 별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낭만이 있었어...”
그럼에도 과거를 돌아보는 모든 세대들이 이렇게 운을 떼며 지난 날을 회상해 왔다. 지금의 20대는 대학을 입학하고부터 취업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 나름대로 그들만의 현실에 대응하며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날의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20년 뒤에 이들도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이다.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색다른 낭만이 있었어”로 시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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