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와 라이프, 양다리 걸치기
상태바
커리어와 라이프, 양다리 걸치기
  • 김종탁
  • 승인 2016.01.22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업멘탈 강화서

대한민국에서 일과 삶을 적절히 병행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가정이 있는 경우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정시에 퇴근하여 9시 뉴스가 나오기 전 온 가족이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자신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회사의 기업문화와 복지가 입사 기준의 중요한 척도가 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기업문화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커리어와 라이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시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일과 가정의 불협화음
취업준비생 L씨는 요즘 들어 부쩍 남자 친구에게 섭섭함을 느낀다. 함께 취업 준비를 하다가 얼마 전 대기업의 해외영업팀에 입사한 남자 친구는 신입사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야근이고 이틀은 회식이고 남은 하루는 야근 후 회식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유독 일이 많은 시즌이라고 말했지만 L씨가 보기에는 회사의 분위기 상 앞으로도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는 좀처럼 힘들어 보였다.
남자 친구는 원래 호기심이 많고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했다. L씨가 봐도 그 부분은 인정할 만 했고 회사에서도 아마 이 부분을 높이 산 것 같다. 그렇게 직장인이 된 남자 친구가 처음에는 대견했지만 요즘은 남자 친구에게서 자신을 비롯한 일 이외의 다른 것이 뒤로 밀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편하지는 않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둘은 도서관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가끔 도서관 지하식당을 벗어나 외식(?)이라도 할 때면 메뉴가 무엇이든 마냥 좋았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시간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해야 할 공부들은 뒤로 미뤄둔 채 함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산책을 나가기 일쑤였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미룰 수 있는 것은 둘이 만나기로 한 약속들이었다. 지난 금요일 모처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껏 가보지 않았던 건물의 높은 층에 자리한 야경이 보이는 레스토랑이었다. 하지만 식사 시간의 반을 이메일 확인과 전화통화로 보내는 남자친구를 보면서 도서관 앞에서 머리를 딱 붙이고 먹던 할머니 순대집이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직장인 Y씨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프로그램 기획과 홍보 업무를 맡고 있다. 올해로 직장생활 10년차, 어느 덧 서른 다섯이 되었다. 주변의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한 것을 보면 이제는 결혼에 대한 초조함이 드는데 오히려 친구들은 비혼(미혼이 아닌)을 추켜세우고 그녀를 부러워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한 여자가 일과 가정을 함께 꾸려나가는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많이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Y씨가 다니는 회사도 가정보다는 회사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일터를 주도하고 있으며 일을 끝내고도 제 시간에 퇴근하는 것을 부서장은 늘 못마땅해 한다. 직원 평가는 업무성과의 기준이 아니라 누군가의‘재량’에 따르기 때문에 윗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어렵게 회사생활을 지속하다가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그만 둘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다. 결국 Y씨도 육아와 경력단절여성이 라는 장벽 앞에 서게되는 것이다. 육아 휴직과 업무복귀는 법으로는 보장되어 있지만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이다. 사실 Y씨는 작년부터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가정적이고 가사 분담을 잘해줄 만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현실 앞에서 결혼이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정은 안식과 생명과 사랑의 시작이 되는 곳, 그래서 삶의 기쁨의 원천이 되는 곳이지 버텨나가야 할 그 무엇은 아니라고 여겼던 자신의 신념이 아련하고 멀게 느껴졌다.

24시간이 모자란 대한민국 노동자의 삶
‘저녁이 있는 삶’. 어느 정치가가 얘기한 이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서울대 졸업생이 9급 공무원의 길을 택하면서 그 이유가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라고 한다. 씁쓸한 이야기이다. 우선은‘저녁이 있는 삶’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노력하고 발버둥치며 얻어내야 한다는 점이 그렇고 서울대를 졸업하고 9급 공무원이 되는 것이 특이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그렇다. 저녁이 있는 삶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님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이뤄야 할 그림으로 남아 있다.
그 동안은 저녁이 없었다는 말인가. 어쩌면 그렇다. 한국 사람이 일중독이라는 말은 심심찮게 들어왔던 말이다. 평균 노동 시간이 하루 10시간을 넘어서며 OECD 국가들 가운데서 최상위권에 속한다. 반면 노동생산성은 34개국 가운데 28위로 매우 낮은 편이다. 행복감과 삶의 만족감을 느끼는정도는 최하위에 속한다. 북유럽은 저녁 7시나 8시에 저녁 뉴스가 시작하지만 한국 공영방송의 메인 뉴스시간은 여전히 9시이다. 저녁이 없는 삶을 대변하는 지표이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외국인들이 봤을 때 일중독으로 비춰질 정도로 우리가 일을 좋아하는가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 가정생활과 여가 시간을 다 빼앗겨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이다. 좋아서 하는 일도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개인의 삶을 되찾아 주어야 할 것이고 행여 일중독을 원하고 일의 성취에 가치를 두는 사람에게도 질 높은 휴식으로 더 큰 생산성을 주어야 할 것이다.
기업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야근과 성실이 동일어로 여겨지고 눈도장으로 인정받는 고질적인 병이 뿌리 뽑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회사에서 먼저 가정과 개인의 ‘저녁’을 챙겨주어야 한다. 불필요하게 오랫동안 회사에 머무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실제로 일부 회사에서는 야근을 하는 직원과 부서장의 인사평점을 깎는 식의 조치도 취하고 있다. 다행히 근무시간 선택제를 실행해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하는 회사도 많아지고 있다.
커리어를 선택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내 모든 시간을 갖다 바칠 필요는 없다. 커리어와 라이프에 양다리를 걸칠 자세만 버리지 않는다면 그 둘을 만족하게 즐길 때가 곧 오리라 기대해본다. 저녁이 있는 삶은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