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내 마음대로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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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 마음대로 하겠어!”
  • 권민정 기자
  • 승인 2016.11.23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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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고민을 통한 도전, 그리고 성장 - 김민식 MBC PD

 

김 민 식 MBC PD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MBC 근처에 위치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집에서 자전거로 출근하는 그는 오는 길에 한강에서 열린 정원박람회를 보고 왔다며 직접 찍은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유쾌한 웃음을 지었다. 처음 보는 길을 걸을 때나 사람을 보면 반사적으로 화면의 앵글과 연출이 떠오른다는 김민식 PD는 영업사원을 거쳐 PD라는 직업을 갖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먹고 살려면 의대를 가야 한다는 강압적인 아버지 뜻을 못 이기고 문과로 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이과를 선택했을 때부터 그의 인생이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억지로 공부했기에 성적은 당연히 좋지 못했다. 의대는 아니었지만 어렵사리 자원공학과로 대학 진학을 할 수는 있었다. 부모님은 취업이 잘 되는 학과를 갔다고 좋아했지만 김민식 PD는 원치 않는 학과를 선택하면서 진로에 대한 긴 고민과 방황을 하게 된다.
 공대였지만 엔지니어 쪽으로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던 그가 선택한 길은 영업이었다. 영업사원으로 근무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끊임없이 앞으로의 자신의 직업에 대해 고민했다. 그의 고민에는 언제나 책이 함께 했다. 그는 하루 종일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독서를 했다. 미래 일자리에 대해, 앞으로의 세상이 변해갈 모습에 대해 그가 궁금해 하는 모든 것들이 책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독서를 통해 자신이 나아갈 길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영업사원으로 일했을 때 그는 최종적으로 자신의 미래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느 날 문득 한 눈에 들어오는 사무실 안에 자신의 미래가 다 보였던것.
 ‘5년 후면 대리가 앉아 있는 저 자리로 갔다가 10년 쯤 되면 창가 쪽 자리에 앉게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그는 전문직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퇴사를 결심한다. 지금이야 청년들의 퇴사가 흔한 선택으로 인식되지만, 90년대 후반만 해도 첫 직장에 들어가 퇴사를 한다는 것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꿈을 믿고 거침없이 나아갔다. 동시통역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영어와 책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걸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통역사가 되지 못했다. 나이 서른, 그가 선택한 길은 예능 PD 였다. 김민식 PD가 직접 쓴 책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오랜 세월 많이 방황했다. 내게 적성을 찾는 과정은 시계추의 진자운동처럼 양극단을 오가는 삶이었다. 두 극단을 오가는 사이에 내 직업은 영업사원이 되고 또 대학원생이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연히 내가 통번역을 하며 돈을 벌고, 취미 삼아 소설 번역을 하며 그렇게 살 줄 알았다.’
 <논스톱>, <내조의 여왕> 등 MBC PD로 예능에서 드라마까지 굵직굵직한 작품을 제작한 그도 서른이라는 나이에 PD가 되기 전 까지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일이 자신에게 맞는 일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현재 그는 자신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길을 걸을 때면 눈에 보이는 건물들을 보며 머릿속에 드라마 연출을 떠올린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어떤 카메라 앵글로 담아야 그 사람이 돋보일지 고민해본다. 그의 인생 자체는 이미 PD라는 직업과 함께 숨 쉬고 있다.

Q. 자신이 PD의 자질이 있다는 것은 언제 알게 되었나요?
 책을 읽고 영어 공부하는 걸 좋아하던 학생이기도 했고 춤을 추고 노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기도 했죠. 대학생 때는 춤에 빠져 살았습니다. 기타치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사실 저는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PD라는 직업에 대해 아예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선배는 PD가 맞을 것 같다’라고요. 자기 주변에 PD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데 PD란 저처럼 유쾌하고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그때 처음 그런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말로 들었지만 제 마음 한 켠에 그 말이 계속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MBC PD 공개채용이 공지되었을 때 나도 한번 해볼까하고 지원했고 그 이후로 정말 행복하게 일을 하고 있지요.

Q. 직업을 바꾸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작용한 요소들은 무엇이었나요? 전혀 다른 분야로 도전할 때 불안했을 것 같습니다.
 공대생에서 영업사원으로 그리고 번역가를 꿈꾸며 대학원 진학. 그리고 PD로 오기까지 제가 선택한 길은 모두 전혀 다른 직군이었죠. 제가 인생을 사는 모토 중 하나는 ‘공짜로 세상을 즐기자’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퇴사를 고민하고 다른 일에 도전하는 걸 걱정하는 이유는 안정적으로 나오는 월급이 끊기며 시작될 것 같은 경제적 불안감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그 월급에 연연하지 않으면, 즉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면 과감한 선택과 도전을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일을 할 때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어요. 저는 제 일을 찾기 위해서라도 돈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했죠. 영업사원을 그만두면서부터 저는 오로지 제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앞날 걱정으로 저의 선택에 반대하셨던 아버지의 의견도 저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Q. 이직을 결정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실망이 크셨을 것 같아요.
 만약 제가 20대 때 부모님과 살갑게 잘 지냈고, 그래서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게 싫었던 착한 아들이었다면 아마 영업사원을 그만두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영업사원을 계속 하고 있었겠죠. 그런데 저는 당시 아버지와 사이가 정말 나빴습니다. 왜냐면 제가 원치 않은 공대를 진학해서 공부하느라 애를 먹었던 것도, 영업사원 일을 하게 되면서 제 인생이 꼬여버린 것도 어떻게 보면 아버지 책임이 컸거든요.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하겠어!’ 약간 이런 마음이 컸죠. 그 이후로는 정말 그렇게 살았고요.

Q. 직업을 결정할 때는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현명한 선택 아닐까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20대 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면 범위가 너무 좁잖아요. 고작 스물 몇 살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되겠어요. 제가 처음으로 통역사를 꿈꾸며 선택했던 일도 바로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통역사였지만 당장에 그걸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통역사가 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것이었죠.

Q.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자신이 생각했던 목표가 이뤄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현실은 대부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한테 이렇게 많이 물어봅니다. ‘어떻게 기회를 잡으셨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기회란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많은 학생들이 ‘나는 이런 조건에 이런 일을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기회가 과연 언제 찾아올까요? 찾아오기는 하는 걸까요? 일단 현재 주어진 상황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료들로 어떻게든 시작해 나가야 합니다.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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