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끌어준 작은 기억과 경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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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끌어준 작은 기억과 경험들!”
  • 권민정 기자
  • 승인 2016.11.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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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서 시작된 선택 - 이인재 아띠 인력거 창업주

이 인 재 아띠 인력거 창업주
햇빛이 따뜻했던 어느 주말 오후, 서울 북촌에 새롭게 자리 잡은 아띠 인력거의 보금자리에서 이인재 아띠 인력거 창업주를 만났다. 그는 이제 막 파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온 상태였다. 새로운 영감을 받으러 해외로 떠나기 전 아띠 인력거를 상징하는 ‘파란색’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과학자였던 꿈을 접고 금융회사 회사원으로, 다시 인력거 창업주가 되기까지 흥미진진한 그의 과거와 현재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날씨가 좋은 날이거나 퇴근길에 동료들과 인력거 라이딩 하기를 가장 좋아한다는 이인재 씨는 아띠 인력거를 창업한 창업주다. 그는 현재 사람들에게 인력거 서비스를 알리고 손님을 위해 인력거를 끄는 일을 하고 있다. 마음이 맞는 라이더들을 모집하고 창업한 회사를 잘 꾸려나가는 것 또한 그의 몫이다. 한국에서는 최초인 ‘인력거 창업’이라는 소재로 그는 많은 언론사의 집중조명을 받기도 했다. 그로 인해 미국 명문대를 나와 외국계 금융기업에 다녔던 이력도 자연스럽게 공개되었다.
 그는 대학교 때 자신의 꿈이 과학자였다고 했다. 과학자라는 꿈에서 금융사로 입사 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인력거 끄는 일을 하기까지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고등학생 때의 기억과 대학교 때 잠깐 스치듯 일했던 인력거 아르바이트의 경험이었다.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멀리까지 유학을 보내준 부모님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연봉이 높은 금융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입사로까지 이어져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회사에서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일이 재미있지도 않았다. 썩 나쁘지 않은 정도였다. 머릿속에는 자꾸만 인력거를 끌며 행복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직 20대 중반인데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하며 결국 1년 만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인력거 창업.
 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국에서 함께 인력거 창업을 하자고 계획을 세웠던 친구는 4개월 만에 인력거 창업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미국으로 다시 떠나버렸다. 그리고 4년이 흐른 지금, 서울 북촌에 인력거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마련된 넓고 쾌적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홈페이지에는 라이더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한창일 정도로 인력거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까지는 본 궤도에 오르지 못했지만 아띠 인력거는 나름대로의 비전과 올바른 방향성을 갖고 순항 중이다.

Q. 대학 시절로 돌아가 볼까요. 그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이 얘기를 하려면 고등학생 때의 얘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는 영어가 능숙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친구를 사귀는 일이 무척 힘들었어요. 하지만 필수로 들어야 했던 체육과목 덕분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재밌게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매일 2시간 씩 반드시 스포츠를 해야했거든요. 그 시간은 유일하게 말이 통하지 않아도 친구들과 소통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누군가와 같은 목표를 향해 땀을 흘리고 서로 응원해주는 일들이 제 기억 속에 좋게 남아있던 것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기억들이 저의 가치관이나 성향들에 좋은 자양분이 되었고 결국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력거를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대학교 때 잠깐 취업준비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려고 했었던 인력거 아르바이트의 경험이었고요.

Q. 미국에서 했던 인력거 아르바이트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보스턴에서 인력거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때 정말 신세계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교사, 보험사, 대학원생, 코미디언 등 정말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남는 시간을 할애해 인력거를 끌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큰 도시에서 인력거 하나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그것이 도시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죠.
 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건네면서 다닐 수 있는 점도 좋았어요. 인력거 한 대로 도시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활기차고 유쾌한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났거든요.

Q. 대학 시절로 돌아가 볼까요. 그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대학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제 꿈은 과학자였어요. 유전공학이나 물리학 이런 걸 배워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 쪽 수업은 하나도 들은 게 없어요. 자유로운 캠퍼스 생활을 마음껏 누리느라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거든요.(웃음)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오니 부모님이나 주변 친구들이 모두 취직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취업을 위해 학점을 딸 수 있는 수업을 들었습니다. 2년 안에 제가 잘 따라갈 수 있는 과목을 생각하다 역사학과를 골랐죠. 그리고 부전공 같은 걸로 월드음악이라는 과목도 많이 들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전통음악, 아프리카 음악 같은 걸 정말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나네요.
 그리고 졸업할 즈음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돈을 일단 많이 주는 금융사에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여기저기 서류를 넣었습니다. 그때는 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남들이 하는 대로 나도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거기에 열심히 유학 뒷바라지를 해주셨던 부모님께도 보답하는 의미로 연봉도 많고 괜찮은 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죠.

Q. 왜 창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나요?
 회사일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힘들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정말 재미가 없었습니다. 재미가 없다보니 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죠. 날씨가 좋은 날에 책상에만 앉아 있는 시간이 아까웠고 ‘여기에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20대가 가기 전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한번 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떠오른 건 회사를 다니고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때 떠올랐던 것이 인력거를 몰았던 일이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인력거 창업을 해보기로 결심한 거죠. 회사를 차리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만 인력거로 손님을 태우고 라이딩하는 일이 정말 좋았습니다.

Q. 창업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했나요?
 인력거를 구입하기 위해 중국 현지 조사까지 갔어요. 중국 저장성의 철강도시 용강을 찾아가 일단 인력거 6대를 주문했죠. 여수에서 엑스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 시험 삼아 인력거를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여수엑스포 조직위원회를 찾아가 인력거 사업에 대해 설명 드리고 관광객을 태워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긍정적으로 봐주시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사되지 않았어요. 창업을 시작하는 일부터 사람들을 모으고 알리는 일까지 모두 그때그때 배워가고 부딪쳐가며 한 단계씩 나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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