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작업·미사 준비…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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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작업·미사 준비…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7.02.2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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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을 받는 것보다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생긴 것이 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은 온전히 제 재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제가 시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군이 있어 큰 영광을 얻을 수 있었기에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육군27사단 ○○근무대 군종병(천주교) 유수연(24) 병장은 새해 벽두부터 부대 장병들을 두 번 놀라게 했다. ‘애인’이라는 작품으로 올 초 조선일보 2017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당히 당선한 것은 유 병장이 선사한 첫 번째 놀라움.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현역 병사 신분으로 화려하게 등단한 시인 유 병장은 당선 상금 500만 원을 부대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혀 박수를 한몸에 받았다. 그는 상금을 사단 내‘이기자고등학교’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이기자 고등학교는 학업을 마치지 못한 병사들이 모여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곳이다.

유수연 병장 육군 제27사단
 군 생활 속에서 시심(詩心) 영글어
 남들은 입대도 미룬 채 시작(詩作)에 열중해도 얻지 못하는 당선의 영광을 유 병장은 어떻게 바쁜 군 생활 와중에 거머쥐었을까? 역설적이게도 그 비결은 ‘군 생활’에 있었다.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이끌려 안양예술고등학교를 거쳐 명지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했습니다.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시를 썼지요. 하지만 제 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시 쓰는 것도 즐겁지 않았죠. 너무 빨리만 달려온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아예 시를 못 쓰게 될 것 같았죠. 그래서2015년 6월 입대했습니다. 문학적 성과를 거둔 후로 입대를 미루는 것이 일반적인 문예창작과 분위기인 것을 감안하면 이른 입대였죠.”
 입대 후 유 병장은 시를 끊었다. 그저 느끼고 생각하며 고갈된 시적 감성이 자연스레 차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이때를 “시를 쓰기 위해 연필을 깎은 시기”라고 표현했다. 군종병 생활은 타성에 빠진 자신을 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예전에는 간식이나 바깥 구경을 위해 종교 활동을 하는 병사들이 많았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늦잠을 자거나 느긋하게 TV를 볼 수 있는 휴일 아침에 기꺼이 성당을 찾아 기도하는 병사들의 눈빛에서 간절한 사랑과 소망을 읽을 수 있죠. 누군가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 일하고, 그 시간을 함께한다는 생각에행복할 때가 참 많았습니다.”
 후임병 때는 임무에만 열중했다. 미사 준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군종병이었지만 모든 훈련에도 열외 없이 참가했다. 사단 군종참모 김성현(소령) 신부의 방침이었다. “전시에 총을 휴대할 수 없는 군종장교들을 엄호하려면 군종병은 사격에도 능해야 한다”며 “사격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성당에 들어올 생각도 말라”는 김 신부의 불호령에 사격에 열중해 특등사수가 되기도 했다.
 임무가 몸에 익을 때쯤, 근무지인 ‘이기자 성당’신축이 이뤄졌다. 무척이나 더웠던 지난여름, 신축된 성당 마당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잔디를 심고 블록을 깔고 못을 박으며 바쁘게 지내는 동안 그의 시심(詩心)은 시나브로 영글어갔다.

 조선일보 2017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
 상병이 돼서야 천천히, 조금씩 시를 쓰기 시작했다. 문장이나 생각이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썼다. 그리고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지난해 휴가를 나가보니 신춘문예 준비로 대학 동기들이 한창 바쁠 때였다. 그와 만날 시간도 없다는 동기들 옆에서 자신도 부대에서 썼던 시를 꺼냈다.
 “사단장님께서 늘 ‘간첩은 이등병이 잡는다’고 하셨습니다. 기초·초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거죠. 그 말씀을 기억하며 그동안 배웠던 시작(詩作)의 기술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써놓은 시에서 정말 필요한 말, 하고 싶은 말만 골라 적었습니다.”
 그는 동기들과 함께 작품을 제출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당선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학과 동기들의 장난 전화로 오해할 정도로 기대하지 않았던 당선이었다. 함께 출품했던 동기들은 모두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입대 전 두 차례나 도전했지만 낙방했던 신춘문예에 군복을 입고 당선된 그는 오는 3월 21일 전역 후 학업에 열중하며 본격적인 시인의 길을 걸을 계획이다. “늘 좋은 말씀을 해주신 김 신부님과 김레문도 수녀님, 함께하며 힘이 돼준 C4 생활관 동기들이있어 군 생활이 참 행복했다”는그는“제가 겪었던 힘든 시간이 하나의 기회였음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평신도 주일 때였습니다. 사단장님께서 평신도로서 신부님 대신 강론하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은 모든 걸 다 주려고 하신다. 다만 네가 그걸 견디지 못하고 깨질까봐 견딜 만한 시련을 주셔서 너를 좀 더 단단한 그릇으로 만든 후 모든 것을 주신다’는 말씀이셨죠. 그 말씀을 듣고 보니 훈련에, 작업, 미사 준비까지 하며 시를 쓰느라 힘들었지만 이 모든 과정이 무언가를 담을 수 있도록 저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시련으로 고통받는 이가 있다면 유 병장의 고백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제공 : 국방일보 김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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