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과 함께 ‘말미’를 써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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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과 함께 ‘말미’를 써 보는 건 어떨까?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7.04.2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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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씨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 역시 가수 김동률의 ‘출발’이란 노래가사처럼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를 가방 안에 넣고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긴 여정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휴가, 어디로 가세요?”라고 슬며시 묻곤 한다. 어제는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5월 초 황금연휴 때 LA와 샌프란시스코, 6월엔 일본, 10월엔 유럽에 갈 계획이라며, 필자에게 어디로 가는지를 물었다. 친구의 들뜬 모습에 필자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휴가를 계획하는 많은 사람들은 작년과 다른 곳, 다른 컨셉으로 보내고 싶다는 마음,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럴듯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기구 안의 공기를 불로 데워 둥실 떠오르는 열기구처럼, 휴가를 떠나는 순간까지 마음은 한없이 따끈하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다.

해마다 휴가철이면 ‘요즘 뜨는 휴가지는 어디?’라는 기사가 나온다. 휴가지도 유행이 존재한다. 1970년대엔 청춘 남녀라면 대천해수욕장, 1980년대엔 설악산, 1990년대엔 해외 여행, 2000년 대엔 제주도가 큰 인기 휴양지였다. 프랑스에서 휴가를 지칭하는 바캉스는 이름난 휴양지나 해수욕장을 찾아 떠들썩하게 즐기고 오는 의미로 통용된다. 프랑스는 연간 1개월의 유급휴가가 주어지기 때문에 여름철이면 파리 같은 대도시는 텅 빈다.
전 세계 26개국을 대상으로 유급휴가에 대해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슬프디 슬프게도 맨 꼴찌이다. 짧더라도 휴가를 통해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휴가 트렌드도 계속 변화하여 이제는 무조건 많이 보고 오는 스탬프 여행을 넘어 제대로 힐링하고 오는데 집중하거나, 멀리 떠나는 휴가로 인해 피로에 젖느니 차라리 홀가분하게 도심에서 즐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옛 선조들은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없던 시절, 옷섶을 풀어헤치는 데도 한계가 있고, 계곡에 계속 발을 담글 수도 없으니 조금이라도 더위를 식히는 물건이 절실했을 것이다. 삼베 옷과 부채, 삼베 홑이불을 씌운 죽부인을 가슴에 품은 채 다리 한 쪽을 척 걸치고 자면 솔솔 스며드는 바람에 세상 모르게 숙면을 취했을 것이다.
죽부인은 ‘죽부인전’에서 고려 말 학자 이색의 아버지 이곡이 부인을 대신하여 함께 잔다 하여 죽부인을 아들에게도 물리지 않았다는 재미난 기록도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지증왕 때 ‘해당 관서에 명해 얼음을 저장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빙고의 얼음은 관리에게, 동빙고의 얼음은 왕실에 분배되는데, 얼음을 받은 관리들은 이를 잘게 부수어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연산군은 얼음 쟁반에 포도를 올려 먹는 걸 즐겼다니 과일 빙수를 좋아하는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트렌디했던 모양이다. 휴가라는 단어가 사치스럽다고 느껴진다면 휴가의 순 우리말인 ‘말미’를 써 보는 건 어떨까? 내 몸과 마음의 안식을 위해 잠시 말미를 낸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휴가 간다고 할 때보다 한 층 부 담이 덜한 느낌이다. 부디 올해 많은 휴가엔 모두가 행복한 휴가, 알찬 말미를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맛있는 커피 한 잔과, 책 한권, 음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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