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여행, 그 길 위에서 평생 직업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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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여행, 그 길 위에서 평생 직업 찾아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7.07.26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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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 역사여행작가
▲ 어른들 단체사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꼬마 권기봉/권기봉 씨 제공

 월악산국립공원에서 가까운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아이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비좁은 전통시장에 가는 것을 꺼릴 법도 한데 시장에 가는 어머니를 항상 따라나섰다. 그에게 시장은 항상 알고 싶고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아니 그에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만물상과도 같았다. 그는 부모님의 동반 모임 또는 어머니의 계모임까지도 따라다녔다. 덕분에(?) 부모님 단체 사진에는 늘 귀여운 꼬꼬마 한 명이 자리 잡고 있다. 그가 바로 역사여행작가 권기봉 씨다.

 권기봉 씨는 여러 매체에서 여행작가라고 소개되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여행작가는 아니다. 여행작가라 하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모습과 이미지가 있는데 그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의 책과 강연 주제는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는 부분 혹은 현재 우리 사회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등한시 되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한 번쯤 다시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저에게 글과 방송, 강연과 답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에요. 제가 가진 문제의식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이 글 혹은 말인 거죠.”
 그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이전에 SBS 기자로 활동했다. 방송기자도 작가도 글을 쓴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는 자신의 글을 쓰고 싶었다. ‘사스마리’라고 불리는 다른 사회부기자와 마찬가지로 기자시절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공간과 시간, 끼니 챙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매일같이 새벽 6시에 출근해 밤 10시 넘어 퇴근하는 것은 이미 일상이 되어 버린지 오래. 퇴근할 때쯤이면 녹초가 되어있을 법도 한데 그는 집으로 향하는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한 줄 두 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오고 가는 버스에서 썼던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고, 마침내 2008년 1월 그의 첫 책「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가 출간됐다. 기자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다.
“주말에도 뉴스 보도는 해야 하니 격주로 회사에 나가곤 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쉬는 날이 있잖아요. 그럴 때 여행 혹은 답사를 갔어요. 호기심이 많아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죠. 그래서 기자도 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기자로 서 해야 하는 일보다는 제가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 권기봉 역사여행작가

내가 가진 문제의식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파
 자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대학시절에 그는 이곳 저곳을 많이 돌아다녔다.
“학교 다닐 때 문화답사, 역사답사를 다녔어요. 보통 유물 답사를 찾아가는 방식이었죠. 궁금했기 때문에 무조건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의문이 들었어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가 지금의 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멀게 느껴졌어요. 물리적인 거리감이 아닌 의미적으로요. 그래서 이 시대보다는 지금의 저와 지금의 우리 사회가 있게 된 직접적인 배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 배경이 근·현대사였고, 그래서 근·현대사의 공간과 인물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 이전의 건물과 유물은 보통 교외에 위치해 있다. 건물의 재료도 목조와 석조로 만들어진 것이 많아 근·현대의 건물과 놓고 보면, 육안으로도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정부에서도 근·현대사 이전의 것들은 상대적으로 좀 더 잘 관리하고 보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근·현대에 만들어진 것들은 보통 도심에 있어요. 소재 자체도 목재나 석재가 아니라 철근과 콘크리트가 주로 사용되었죠. 그런데 1960년대 이래 산업화시대가 도래하면서 사라져 가는 근·현대 역사들이 많아졌어요.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의 군사독재 시절 등등. 기억하기 싫은 역사가 많아 그런지 시간이 흘러갈수록 의도적으로 없애버리거나 방치하는 것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계속 사라져가는 이 상태를 방치한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는 그 의미를 탐구해볼 수 있지만, 앞으로 올 미래세대 혹은 후속세대는 그 마저도 볼 수 없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죠. 그래서 책을 쓰게 된 것이고요.”
 프리랜서 작가를 동경하지만, 선뜻 도전하는 이들은 많지않다. 불안정한 수입원, 어떻게 자신의 책을 내야할지 등 현실적인 문제와 작가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 회사를 바로 그만두는 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업 작가가 된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진다거나 더 많은 시간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때문이죠. 그리고 글 쓰는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든 작가가 되어 글을 쓰든 글을 쓰는 양은 크게 변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물론 글감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수는 있겠죠.”
 그는 프리랜서 작가가 되려고 하는 것이 현실 도피형은 아닌지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라고 충고했다.
“전업 작가가 아니라면 현재 주어진 자신의 처지에서 글을 써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하는 직업과 연계시킬 수도 있고요. 다양한 분야의 글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자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기자 정신을 가지고 현장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 토대로 글을 썼고요. 그리고 제가 이과를 전공했는데, 이과생이 실험보고서 쓰듯이 취재도 어느 순간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더라고요. 이처럼 자신이 이전에 해왔던 경험은 글을 쓰는 데 전혀 무관한 것들이 아닙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일’ 반드시 가져보기
 그에게 취업을 앞둔 취업준비생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좋은 대학, 토익점수, 대외활동 등으로 빼곡히 적힌 이력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남들이 하는 것을 했다고 한다.
“취업 공부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기보다는 남에게 선택받기 위해 하는 거죠. 그렇다보니 대부분 비슷한 공부를 하게 되고요. 그런데 남들이 다하는 토익 공부 즐기면서 하나요? 아마도 아닐 겁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즐기면서 4년 동안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입사할 때 면접관이 봐도‘얘는 뭐가 다르네?’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고요. 아직 우리나라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탐구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냥 살아지는(?) 경우가 많아요.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직장생활 하면서 결혼할 생각을 하고, 결혼하면 아이 낳을 생각하고, 아이 낳으면 교육 걱정을 합니다. 다 키우면 대학과 취업 고민을 대신하죠. 내가 누구인지는 모른채 마치 나이에 따른 숙제를 하듯 인생을 살아갑니다. 4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심화시키다 보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분명 도움 될 수 있을 겁니다. 4년이라는 시간이 힘들다면 최소 2년 만이라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라는 인간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에 대해 탐구해 보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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