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시대> 연출한 김광호·김훈석 PD “취업난은 사회 전체의 문제, 청년들만의 문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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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시대> 연출한 김광호·김훈석 PD “취업난은 사회 전체의 문제, 청년들만의 문제 아냐”
  • 허지은 기자
  • 승인 2017.11.2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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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김훈석 EBS PD
<감정 시대>를 공동 연출한 김광호·김훈석 PD는 각각 23년차, 21년차 베테랑 PD다. 특히 <감정 시대>를 제작하기 전에 두 PD가 연출한 <가족 쇼크>(2014)는 2015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상 최우수상, 제27회 한국피디대상 교양정보부분 작품상, 2015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사회문화부문 우수상, 제42회 방송대상 사회공익부문 작품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가족 쇼크>와 <감정 시대>를 연출한 김광호·김훈석 PD에게서 프로그램 제작과 PD라는 직업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감정은 시대의 얼굴이다. 시대는 곧 사람의 기록이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 사이에는 감정이 있다. 이는 지난 2016년 12월 방송됐던 EBS 다큐 프라임 5부작 <감정 시대>(EBS)를 관통하는 대전제다.

 <감정 시대>는 이 시대의 감정을 통해 사회를 바라본 다큐
멘터리다. EBS에서 다수의 교양 문화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광호·김훈석 PD는 <감정 시대>를 통해 개인의 감정과 사회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우리가 공통적으로 크게 느끼는‘감정’을 통해 사회를 관찰했다. 최근에는 이 내용을 엮어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가족 쇼크>에서는 사회 현상으로서 가족의 단위를 보았
는데, 다음 작품에서는 사회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죠. 그러던 중 김훈석 PD가 ‘인간 본연의 감성’과 ‘이성’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했습니다. 합리적 의사결정의 근저에는 ‘감정’이 있는데, 흔히 이성적 판단만이 옳고 감정적 판단은 그렇지 않다는 통념이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했죠. 취재를 하며 그 내용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감정이라는 코드로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면 사회를 온전히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김광호 PD)

 <감정 시대>에서는 불안, 모멸감, 좌절감, 고립감, 상실감, 
죄책감 등의 감정을 다뤘다. 지쳐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담는 과정에서 시대의 감정들이 드러난 것.
 “다룰 감정을 정해놓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소재를 택하면 한국 사회를 잘 드러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보니 그와 연결된 감정들이 드러났던 것이죠. 재작년 말부터 작년 초까지 <감정 시대>를 기획했는데, 그 당시 대한민국 사회가 지쳐있고 우울한 시기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잘 드러내려고 노력했습니다.”(김훈석 PD)

 개인의 감정은 사회의 문제
▲ 김광호 PD
 김광호 PD가 연출한 <가족 쇼크> 1부 ‘을의 가족 - 불안의 
대물림’은 1997년 외환위기로 시작된 아버지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자녀세대의 불안으로 대물림되고 있다는 내용을 다뤘다. ‘청년층의 고용 불안’을 다룬 편으로,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부는 ‘불안’을 느끼는 이들이 왜 불안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복지제도의 미비와 사회적 관심의 부족을 원인으로 조명했죠. 그동안 사회는 불안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청년실업과 정년을 맞이한 중·장년층이 겪는 어려움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사회의 축소판인 가정이라는 단위에서 보면, 이들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자녀의 문제든 부모의 문제든 가정의 입장에서는 모두 ‘우리’의 문제이고요. 더 나아가 우리 공동체, 우리 사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개인과 개인 사이의 문제로 좁혀서 보면 그들 사이에는 대립구도가 형성돼 버립니다. 이 프레임을 1부를 통해 깨 보고 싶었습니다. 1부를 보고 사람들이 청년 실업과 중·장년층의 어려움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부모님이 흔들렸기에 자녀세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임을 느끼기를 바랐죠.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손잡고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습니다.”(김광호 PD)

 김광호·김훈석 PD는 <감정 시
대>를 통해 개인과 사회 사이에 ‘감정’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개인의 감정은 사회로 인해 생겨나고, 다시 개인의 감정은 사회의 모습을 결정한다. 따라서 <감정 시대>에서 다룬 청년과 중·장년층의 고민, 감정 노동, 자살 유가족의 고통, 세월호 생존자들의 어려움은 모두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사회의 이야기다.
 “<감정 시대>를 보시거나 혹은 책으로 읽으시면서 여기에 나와 있는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감정에는 공감하시게 될 것입니다. 자신 혹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방송에 나와 털어놓으신 분들도 그 감정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사회에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내용을 읽으시는 분들이 공감하는 데만 그치지 마시고, 그런 고민을 갖고 힘들어하고 있는 주위의사람들을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같이 마음을 나누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고민하면서요.”(김훈석 PD)

 “PD는 이야기꾼입니다”
 김훈석 PD가 밝힌 <감정 시대>의 제작기간은 무려 14개월이다. 1년이 넘는 시간이 50여 분 영상 다섯 개로 ‘응축’됐다.
 “제작을 하면서 수많은 기획이 생겨났다 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기획 기간이 제작진에게는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피 말리는 시기입니다. 매번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죠. 소재를 찾아도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나열했던 것을 압축하는 작업도 거쳐야 하고요.”(김광호 PD)

▲ 김훈석 PD
 세월호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룬 5부 ‘스무 살,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김훈석 PD는 세월호 리본 모양의 문신이 새겨진 생존자 친구의 팔을 비췄다. 이 한 장면에 생존자들의 아픔과 죄책감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들에게 ‘세월호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저는 PD가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이나 오디오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이죠. 그렇기에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은 일련의 이야기를 찾는 과정과 같습니다. 작업을 할 때, 먼저 2줄 정도의 이야기를 만듭니다. 그것이 기획의도가 되거나 시놉시스가 되죠. 그 후에는 자료조사를 통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모은 자료들을 맨 처음 생각한 2줄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편집하죠.”(김광호 PD)

 전체 제작의 방향을 결정할 2줄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끊임없는 회의와 고민이 이어진다. 창작의 고통이다. 그래서 PD들에게 조연출과 작가진, 촬영팀, 취재원 등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동료들은 참으로 든든한 존재다.
 “PD 혼자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협업이 무척 중요합니다. 기획을 할 때도 작가들과 함께 각자 느끼는 것을 이야기하다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릅니다. 자신이 느끼지 못한 부분을 상대가 캐치해주거나 보완해주기도 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도 하죠. 그러면 A로 시작한 이야기가 B가 되고 어느새 C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어렵고 힘든 작업이지만 제작진들과 함께할 때 힘을 정말 많이 받습니다.이외에도 책을 읽거나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기존 프로그램을 살펴보면서 다른 이들은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아볼 때도 많죠.”(김훈석 PD)
 
 최근엔 출연진 못지않게 인기
를 끄는 PD들이 나타나면서 PD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늘었다. 물론 이전에도 인기 직종이었지만 미디어의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PD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는 모습이다. PD가 갖춰야 할 역량에 대해 묻자, 김훈석 PD는 조심스럽게 경험과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특정 스펙보다는 경험을 다양하게 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경험이 적으면 좁은 세계에 갇히기 쉽거든요.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다보면 경험들끼리 충돌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주고,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모습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분들이 PD에 적합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호기심이 많아야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있고, 그것이 좋은 기획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김훈석 PD)

 경험을 통해 느낀 것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알게 된 것들은 아이디어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또한 방송 관련 경험으로 실전에 대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는 PD가 되기 전 이 직업에 대한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간접적으로 방송계를 겪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영상매체와 관련이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혹은 저와 관심사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의견을 교류하기도 했습니다.”(김훈석 PD)

 김광호 PD가 생각하는 PD의 자질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훈석 PD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PD는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젊은 세대들이 저희보다 실력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무척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관심 있는 분야를 깊이 연구하고, 관련 프로그램들을 참고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주제에 대해 독특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도 좋은 PD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역량입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을 작품에 녹여낼 때, 그 작품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죠.”(김광호 PD)

 취업 힘들지만 ‘나’를 잃지말길
 ‘취업 우울증’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는 시대다. 가장 아름다운 청춘을 경쟁에 소비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노력’하라는 말은 가장 잔인한 이야기가 됐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취업준비생 분들에게 제가 어떤 격려나 조언을 한다는 것은 참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신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감정 시대>를 통해서도 이야기했지만, 사실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대와 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죠. 그러니 자신이 부족해서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김광호 PD)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감정 시대>의 질문은 사회
의 요구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도 꼭 필요한 질문이다.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틀에 압박감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나이마다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더 큰 도약을 위해서 1년이든 2년이든 시간을 쓸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보다는 ‘내가 행복한가? 만족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말고 정말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김훈석 PD)

글·사진│허지은 기자 jeh@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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