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만난 처음 보는 제 모습에 저도 놀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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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만난 처음 보는 제 모습에 저도 놀랐죠”
  • 허지은 기자
  • 승인 2018.02.26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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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여행가/기획자

 58개국을 여행한 그는 올해 28살의 청년이다. 최근 그의 자기소개 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학교 전공수업을 듣다 만든 영상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자동차로 유럽을 일주했던 것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을 누빈 그의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져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끈 것이다. 해당 동영상의 유튜브 조회수는 1만 2천 회를 기록했다. 여행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유명 영어교사, 영어 교재 저자, 기획자 등 다양한 활동을 한 그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월 8일, 신촌 ‘트래블라운지’에서 박지현 씨를 만났다. 여행자들을 위한 여행카페인 ‘트래블라운지’에서 그는 업무 총관리자로 근무했다. ‘호스텔월드’와 함께 여행자들을 위한 강연 등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MC로도 일했다. 또한 영어교사로 일하며 여행영어를 배울 수 있는 책「여행자의 다이어리」를 펴내기도 했다. 과거형인 이유는 그가 이러한 모든 활동을 정리하고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국에서의 영상촬영을 마지막으로 일을 마치고 곧 포르투갈로 떠난다며 계획을 밝힌 그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저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늘 고민돼요. 그나마 ‘기획자’라 말하는 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네요. ‘트래블라운지’와 제휴를 맺은 다국적 숙박업 기업인 ‘호스텔월드’와 함께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하고 직접 진행했습니다. 얼마 전엔 대구의 한 웨딩홀을 통으로 빌려서 여행자들을 위한 행사를 진행했고, 가장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강연을 열어 122명을 초대해 지금까지 제가 쌓아온 노하우를 전했어요. 이외에도 성인들, 때로는 기업체 부장님들에서 임원들까지 다양한 분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교환학생을 하러 곧 포르투갈로 떠나요. 차 팔고 적금도 깼습니다. 가서 공부하면서 셰어 하우스를 운영하려고요.”

 

 여행, 가장 큰 자산이 되다
 다양한 경력을 쌓았지만, 단 한 번도 그가 먼저 이력서를 낸적은 없다. 그의 SNS를 보고 먼저 제의가 왔다. 그의 SNS는 포트폴리오가 됐다. 여행 중의 일과 각종 일상을 SNS에 남겼는데, 이를 보고 많은 이들이 함께 일하기를 원했다. 2016년 1월 즈음부터 약 2년간, 최대 하루 세 시간밖에 못 잤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집중적으로 일했던 시기, 그의 연 수익은 대기업에 막 입사한 친구들의 세 배에 달했다.

 “저는 그 흔한 토익점수도 없어요. 대학은 아직 졸업을 못 한 상태라 학력도 대학 재학생에 그쳐 있고, 가지고 있는 자격증은 영어교사 자격증뿐이에요. 영어를 따로 공부한 적은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여행을 다니다보니 자연스레 익혔죠. SNS가 자연스럽게 제 포트폴리오가 됐고요.”

 브랜딩 홍보 영상을 기획하고 모델로도 활약했다. 회사에 기획안을 제출해 예산을 받으면 팀을 꾸리는 것부터 촬영현장 진행 등 결과물이 나오는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그와 함께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여행자들이다. 스펙을 갖춘 이들보다 여행자들이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획 쪽 업무는 능력을 문서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력서 상의 스펙이 능력을 검증할 수 없죠. 저희가 하는 일이 여행에 관련된 것이다 보니, 여행을 많이 다녀온 사람들이 감이 더 좋습니다. 여행가들의 콘텐츠는 파급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업체에서 SNS에서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의 순위를 매기는 AI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한국의 인플루언서 10위까지 중 무려 반 이상이 여행자들입니다. 여행 콘텐츠와 이들의 경험담이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지녔는지 보여주는 예시죠.”

 여행자들을 위한 영어 교재「여행자의 다이어리」는 자신의 여행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출판사에서 그의 여행영어 수업을 보고 책 출간을 제의했다. 부담을 느꼈지만 1년간 준비해 책을 썼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여행자들의 특성을 고려해 전자책으로도 발간했고, 여행 에피소드도 담았다.

 “여행자들은 책을 잘 안 들고 다닙니다. 짐이 될 수 있어서죠. 그래서 전자책으로 발간해 휴대전화에 넣고 다니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행영어 책이니까 여행 에피소드를 함께 실어 차별화를 꾀했고요. 전자책이라 팟캐스트를 첨부할 수 있어서 급히 녹음도 진행했어요. 말을 재치있게 하는 여행자들을 게스트로 초청해 이야기한 내용을 전자책에 더했죠. 누가 듣겠나 싶었는데 팟캐스트 구독자가 천 명이 넘었습니다.”


 여행에서 ‘나의 파편’을 찾다
 그는 현재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올해는 포르투갈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하며 남은 학기를 마칠 예정이다. 이곳에서 그는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 서핑, 스쿠버다이빙, 살사댄스 등을 배울 생각이다. 이미 영어에 능숙한 그가 또 언어를 배우려 하는 이유는 여행지에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언어를 배우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사실 남미여행을 처음 갔을 때 한 마디도 못 했어요. 영어가 안 통하더라고요. 그래도 스페인어권에서 7개월을 지냈더니 일상 대화는 가능해졌습니다. 그래도 아직 읽고 쓰는 건 못합니다. 이번에 제대로 공부해보려고요. 언어를 배워 그곳의 사람들과 깊이 있게 소통하고 싶습니다.”

 박지현 씨의 여행에서, ‘사람’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특히 처음 만난 낯선 이와 고민을 털어 놓으며 친해지는 과정은 그에게 큰 위로와 에너지를 제공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그 나라의 사람들은 어떻게 놀고, 생각하고, 살아가는지 알게 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나라마다 특성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호스텔에 묵습니다. 관광지는 거의 다니지 않아요. 그곳에서는 여행객을 돈으로 보기 때문이죠. 대신, 사람 대 사람의 교류가 가능한 일반 지역을 다니며 현지인들을 만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 가까운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처음 만난 이들에게는 편하게 털어놓게 돼요. 그들도 제 고민을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그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지내면서 자신도 미처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 말했다. 매 여행지마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파편’이라 표현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제 주변인들은 저에 대해 알고 있고, 그래서 어떤 말을 했을 때 제가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할 수 있죠. 그럼 저는 그 기대를 깨지 않기 위해 주위의 요구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선입견이 없는 낯선 곳에서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다보면 정말 낯선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미친듯 잘 노는 활달한 사람이었다가 어떤 때는 아주 차분한 사람이 되기도 하죠. 어떤 이들과 어울리느냐에 따라 제 모습이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저는 이러한 각각의 제 모습이 모두 실제 제 안에 숨겨져 있었던 성격들이라 생각해요. 여행지에서 ‘자신의 파편’을 찾아오는 것이죠. 그리고 그 파편을 모두 찾으면‘온전한 나’가 되는 겁니다. 그 결과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그게 원래의 자신입니다. 저 역시 아직 제 모습을 다 찾지 못했어요. 앞으로 제 성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죠.”

 

 여행은 최고의 교육이자 꿈의 원동력
 그의 궁극적인 꿈은 사회적 기업을 세워 아프리카나 인도의 낙후된 지역에서 무역 사업을 하는 것이다. 한국의 우수한 교육 시스템과 콘텐츠를 수출하여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지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역사회를 살리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여행에서의 경험이 미친 영향이다.

 “여러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보니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는 경우가 있더군요. 엄마들이 물건을 만들고 아이들은 길에서 물건을 팝니다. 이 아이들이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성장해서도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을 도우면서 그 지역의 경제도 살릴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을 세우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이런 여행지를 다니며 그는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깨달았지만, 당분간은 여행을 지속할 생각이다. 포르투갈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정식으로 입사해 함께 일하자며 취업제의를 보내온 곳이 많았지만 이를 뒤로하고 유럽 여행길에 오를 계획이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20여 년 전, 그의 부모님은 아무런 정보 없이 자동차 한 대로 자녀들과 함께 유럽을 일주했다. 집을 사기 위해 모았던 돈을 여행에 전부 쏟아 부었던 것은 ‘최고의 교육은 여행’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그러한 부모님의 교육에 지금까지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 덕분에 자신도 여행을 하며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년 뒤에 떠날 유럽 여행은 그 당시 방문했던 지역을 24년 만에 다시 찾는 여정이다.

 “학설에 의하면, 사람은 모든 정보를 무의식에 저장한다고 합니다. 다만 그것이 의식으로 끄집어내지지 않아서 기억하지 못할 뿐인 것이죠. 이 여행에서 제게 임상실험을 해 보려고 합니다.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여행했던 곳을 다시 찾아 그 장소에서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보려는 것이죠. 그리고 동시에 아버지는 당시를 회상하는 여정을 하십니다. 이 내용을 정리해 함께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출판 계약까지 이미 마친 상태입니다.”

 이 여행을 통해 또 다른 주제의 글도 작성하기로 했다. 부모들을 위한 글이다. 가제는‘다섯 살이 됐을 때 손잡고 떠나라’다.

 “심리학적으로 5세에서 7세 사이는‘구강기’로, 언어 습득 능력이 가장 뛰어난 시기입니다. 저는 이 시기 유럽여행을 하며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때 딱 5살이 되는 조카와 함께 여행을 하며 얼마나 언어를 빠르게 습득하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부모님들이 쓰는 돈이 몇 백만 원을 넘기도 한다는데, 그 돈을 여행하는 데 써 보시라는 이야기를 담는 것이죠. 그리고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 좋은 루트도 추천해드리고요.”

 많은 이들이 그의 자기소개 영상을 보거나 강연을 듣고 SNS로 연락을 보내온다고 한다. 그 수는 무려수천건에 달한다. 이 중 ‘자신이 인생을 헛산 것 같다’는 내용도 꽤 된다.

 “메시지를 보고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한 이미지에 자신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취업을 못 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 해서 고개 떨굴 필요도 없어요. 20대는 원래 그런 시기입니다. 수없이 많은 좌절을 겪는 때죠. 저 역시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모습 뒤 숨겨진 좌절의 기억이 많습니다. 구제 옷을 사 리폼해서 팔기도 했고, 우산을 사다가 비오는 날 홍대나 신도림에서 판 적도 있습니다. 정말 안 해본 것 없이 일을 해봤고 무수히 실패했어요. 그래도 재미있었으니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실패했다고 느낀 순간, 정말 실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순간, 내 편은 나뿐입니다. 만약 이렇게 마음을 먹고 노력했는데도 길이 안 보인다면 환경을 바꿔보세요. 이 때 필요한 것이 혼자 떠나는 여행입니다. 20대 때 한두 달 정도 여행 간다고 큰 지장 생기지 않습니다. 한번 쯤 가고 싶었던 곳으로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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