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기사는 숨어있는 맛집과 같은 직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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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기사는 숨어있는 맛집과 같은 직업이에요!”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8.03.23 13: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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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진 10인 사무소 대표
▲ 손효진 10인 사무소 대표[사진=오세은 기자]

세계기록유산이자 조선왕조 500년을 기록한「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역사·과학·사회·문화 전 분야가 기록된 기록물이다.「조선왕조실록」은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 기틀이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나침반 역할도 했다. 우리가 그 시대를 이해하고 알 수 있었던 건 있는 사실 그대로 바르게 쓴 사관(史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관은 있는 사실 그대로 바르게 쓴다라는 점에서 속기사와 닮아 있다. 하지만 속기사에 대한 직업 정보는 많지 않다. 문체부 정책브리핑에서 9년간 속기사로 지내고 개인 사무소를 연 손효진 씨에게 속기사에 대해 들어본다.

Q.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문체부 정책브리핑 속기사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말 개인 사무소인 ‘10인 사무소’를 열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체부에 있을 때 정부 각 부처에서 발표한 공식 정부기록물을 작성했습니다. 국정농단관련한 헌법재판소 녹취록, 북핵문제, 사드배치 한미 외교장관 고위급 회담, IMF 총재회담 속기 등을 담당했었죠.
 

▲ 손효진 씨의 저서

Q. ‘속기사’란 직업이 생소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속기사(速記士)란, 빠를‘속’에 기록할‘기’라는 한자 뜻풀이 그대로 어떤 사안에 들은 바를 있는 사실 그대로를 빠르고 신속하게 받아 적어 내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문체부에서 저의 업무는 대한민국 정부의 각 부처, 위원회 등 모든 소관사항을 기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상이변, 재난재해, 신종바이러스 유입, 일일정례브리핑, 긴급브리핑 등을 기록해 국내에서 일어나는 실시간 이슈들을 속기해 언론사, 신문사, 기자, 국민 모두에게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Q. 속기사가 되는 정도(正道)는 무엇인지요?
특별히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다만, 속기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2개의 자격증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시행하는 국가기술자격증 시험인 한글 속기 자격증입니다. 다른 하나는 한국AI속기사협회에서 시행하는 민간자격증 시험인 한글 속기 및 수사속기 자격증 입니다. 두 곳 모두 실기시험에 사용되는 수험용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이 설치된 기기가 속기용 키보드입니다. 이를 수험자가 갖고 있어야 시험 응시가 가능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시행하는 한글 속기의 실기시험에 사용되는 수험용 프로그램은 소리자바, CAS, KS표준속기겸용 키보드, 기타 속기 프로그램이며, 한국AI속기사협회 실기 시험에 사용되는 수험용 프로그램은 디지털영상속기장비이다. 올해 한국AI속기사협회에서 시행하는 한글 속기 제1회 실기시험일은 오는 4월 21일이며, 자세한 사항은 한국 AI속기사협회(www.kcost.org)에서 확인 가능하다.

▲ 손효진 씨가 사용하는 속기[사진=오세은 기자]

Q. ‘속기사’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으로 생각하시는지요?
속기사들 사이에서도 직업 존속 여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직업은 아니라고 봅니다. 속기사를 속기문자로 단순히 빠르고 정확하게 필기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경찰청에 근무하는 속기사가 조서작성 시 비언어적 표현과 말투 모두 녹취록에 기재합니다. 한 예로 장애인이나 아동처럼 자신의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 진술이 번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제스처나 표정이 있는데, 이런 점을 속기사들이 빠르게 포착해 기록합니다. 이를 범죄심리분석관들이 보고, 녹화된 영상과 대조해 심리분석을 합니다. 기계가 이런 점까지 다 흡수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 그는 “속기사라는 명칭이 기록물전문관리사 혹은 기록관리사로 변경됐으면 한다”며, “‘속기사’란 어감 때문에 속기사 직업이 사라질 직업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사진=오세은 기자]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정부, 국회, 법원, 공기업 등에 근무하는 속기사의 속기는 공공기록물이며, 역사로 남겨지는 것입니다. 기록물에 대한 일정 부분의 책임이 속기사에 있습니다. 이런 책임 규정이 명확히 구분되어지지 않는 한 로봇이 속기사를 대체하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속기사라는 명칭이 기록물전문관리사 혹은 기록관리사로 변경됐으면 합니다. 어감 때문에 속기사 직업이 사라질 직업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Q. 속기사에 대한 전망은 어떻다고 보시는지요?
속기록을 생산하는 기관의 속기사 채용형태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많고, 외부에 업무위탁 하는 곳이 많습니다. 현재 국내 채용 방식은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후 개인의 실력과 경험을 보고 정규직 전환을 고려하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저도 문체부 정책브리핑에서 9년간 비정규직으로 일했지만, 개인적으로 비정규직이 속기 일에 영향을 끼쳤냐고 묻는다면 큰 영향은 없었습니다. 다만, 여성 근로자이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다면 정규직을 바랄 수는 있습니다. 참고로 법원 속기사의 경우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이후 9급 공무원 전환이 가능합니다. 법원은 무시험으로 속기서기보 9급을 채용하며, 별도의 이론 시험은 없습니다. 단, 대한상공회의소의 국가자격증 취득자에 한해 면접이 시행되고, 이후 채용이 결정됩니다.
 

Q. 조선시대 사관들은 여러 외압을 받았습니다. 속기사도 그러한 경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외부 압력을 받아본 적 있습니다. 현장 브리핑에서 A라고 말해서 당시 그렇게 속기했는데 차후에 연락을 해와 B내용으로 바꿔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할 수 없다고 정확히 말씀드렸고, 바뀐 부분이 있다면 재 브리핑을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단어 하나 바꿔주는 게 힘든 일이냐’고 말하지만 이런 요구를 속기사는 수용하면 안 됩니다. 모든 시민들에게 공개되는 정부 기록물은 속기사의 명예입니다. 그것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속기사의 사명감으로 기록들을 철저히 지키는 투쟁의식도 속기사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을 탄생시키고 지킨 당대 사관들처럼요(웃음).
 

Q. 속기사에게 필요한 자질과 역량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신속 정확하게 속기하는 것은 속기사가 가져야 하는 기본 자질입니다. 그리고 방대한 양의 기록물을 동시다발적으로 기록하는 것 또한 필요합니다. 앞으로 디지털영상시대를 넘어선 스마트 시대에 활용되는 딥러닝, AI시대에 속기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국어 변환 활용, 국제회의 동시속기록 등에 대한 역량이 요구되어질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기사에게 필요한 자질은 외부 압력이나 이견에도 ‘사실 그대로의 정확한 기록물을 도출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록에 대한 책임자로서 사명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속기사가 포진된 곳은 그 분야가 어떤 분야이든지 간에 이 점은 속기사가 갖춰야할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속기사를 생소해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 속기사로 근 10년간 일했지만 주위에서도 속기사를 처음 듣고,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만큼 속기사는 숨어있는 맛집과도 같습니다. 안다면 선점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속기사라고 생각합니다.


글·사진┃오세은 기자 ose@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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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래 2018-06-15 00:53:05
너무멋있어요
저도아이들키워놓고제2의직업을가지려고하는데
자극이많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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