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프로불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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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프로불편러’
  • 허지은 기자
  • 승인 2018.03.26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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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월간 잉여> 편집장/작가

‘말하지 않는 불행보다 말하는 불편을 택하겠다’고 외치는 이가 있다. 독립잡지 <월간 잉여>의 편집장이자「불만의 품격」, 「흙흙청춘」을 쓴 작가 최서윤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최근에는 JTBC <말하는대로>와 <차이나는 클라스>, On Style <열정 같은 소리> 등에 출연하여 거침없는 입담을 선보이기도 했다. 자칭 ‘꿀 알바 지망생’인 그의 장래희망은 ‘정의로운 욕쟁이 할머니’다.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며 주저 없이 불만을 제기하는 최서윤 작가를 만나 ‘품격 있는 불만’에 대해 들어보았다.

‘수저게임’을기억하는가? 2015년 ‘수저계급론’이 대두되면서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따온 보드게임이 바로 ‘수저게임’이다. 그리고 이를 세상에 내놓은 이가 바로 최서윤 작가다. 문제라고 생각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직업을 갖기 위해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그는 10여 군데 언론사 시험에 낙방한 뒤 직접 매체를 창간했다. 독립잡지 <월간 잉여>가 그것이다. 2012년 초부터 2015년 말까지 연재된 <월간 잉여>에는 이 시대를 살고있는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겼다.

“2012년 당시, 개인의 어떤 성취가 개인의 노력의 온전한 결과물인양 이야기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물에 마치 계급이나 행운의 요소는 없는 것처럼이야기되고,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라’라는논리가 사회에 만연했습니다. 청년들은 취업이 안 되고 삶이 힘든데 그게 다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열심히 살지 않았다며 자책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죠. 그런데 2015년에 수저계급론이 나올 정도로 많이들 사회에 대해서 계급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는 <월간 잉여>를 통해 담론화 하고 싶은 핵심적인 이야기 중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은 사회적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18권의 <월간 잉여>가 출판된 사이 사회가 변하고 있었습니다.”
 

‘품격 있는 불만’으로 더 나은 사회 되길
그의 관심사는 청년 문제를 넘어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갑을관계에서의 부당함 등 다양한 범위에 걸쳐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던 불편함이나, 불편하다고 해서 다 말하지는 않았던 부분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최 작가는 자신이 느낀 불편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문제의식을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저는 그 문제에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면 사회가 변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다보면 점차 사회 전체가 바뀔 테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이 문제제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말하거나 창작하여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최 작가는「불만의 품격」의 서문에서‘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될 불만‘으로 치부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 사회에‘품격 있는 불만’이 필요하기에, 어떻게 불만을 제기해야 하는가를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우리 사회의 한 사람 한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화가 나 있습니다. 그 화를 표출하는 방식에는 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을까를 같이 고민해서 좀 더 나은 결과를 이끌기 위해 화가 표출되는 게 아니죠.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들에게 표출될 때가 많습니다. 마치 신분제가 있는 것처럼 자신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갑질’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불행해서 폭력을 가하고. 피해자는 이로 인해 불행을 느끼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우리 사회는 불만을 표출하되, 적확한 대상에게 표출하고 제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추구해야 합니다.”


가난한 청년을 ‘타자화’하는 사회

일본의 청춘은‘사토리 세대’라 불린다.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를 의미하는 단어다. 일본의 장기불황으로 경제성장기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들은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아예 희망을 거두어버렸다. 현재 일본은 구인난에 처해있지만, 사토리 세대는 취업에 관심이 없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단어로 ‘N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높은 물가와 비싼 등록금, 취업난 등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연애, 결혼, 희망, 취미, 인간관계 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서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N포세대’라는 단어의 뉘앙스에 문제가 있다고지 적했다. ‘N포세대라는 명칭은 내가 원하는데 못한다는 뉘앙스가 있는데, 결혼 같은 경우는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이득인 것 같아서 ‘선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또한 ‘N포세대’라는 단어뿐 아니라 가난한 청년을 마치 포르노처럼 소비하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방송에서는 청년 문제를 다룰 때 단순히 청년의 힘듦만 보여줍니다. ‘우리 청년들이 이렇게 불쌍합니다’식의 태도를 보이죠. 그 너머의 청년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는 드뭅니다. 청년을 동료 시민으로서 이야기하기보다 철저히 타자화하는 이런 식의 묘사는 포르노를 소비하는 심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대상화’하는 사회
최근 SNS에서 ‘Me too’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촉매제가된 것은 모 검사가 추행 피해사실을 폭로한 사건이었다. 이 과정에서 최 작가는 성추행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시각과 이 사건에 반응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문제를 포착했다.

“그 검사 분의 성추행 폭로에 시혜적인 반응이 많아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이제까지 이런 미투 행동이 없었냐’하는 반응이 그것이었습니다. 이름만 안 붙여졌을 뿐, 없었던 게 아닙니다. 그들이 주목하지 않은 것이죠. 또한 이번 사건은 조직 내 성추행 문제였지만, 피해자가 검사였다는 데 사람들의 관심이 더 집중된 면도 있습니다. 전 여기서 신분제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야기를 들어도 될 사람,대접할만한 사람의 급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입니다. 성범죄 사건을 다룰 때 굳이 내용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예로, 어떤 만평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피해자를 선정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림의 구도는 위에서 아래를 향하고 있고, 피해자에게 여러 개의 손이 뻗쳐져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이러한 언론의 태도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유독여성에게 더 집중된다. 당장 최 작가부터도 외모 평가의 대상이 됐다. 한 블로거는 그를 두고 ‘수저게임을 만드신분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얼굴이 의외로 예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던진 이야기지만, 누군가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억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예의입니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억압이 될 수 있
기 때문이죠. 예쁘다는 칭찬을 듣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나는 예뻐서 가치가 있는 건가? 그렇다면 예쁘지 않으면 난 가치를 잃는 거야’라는 억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상화는 여성에게 더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월간 잉여>를 낼 때. 남자일 줄 알았는데 여자라는 게 의외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어요. 저를 ‘잉집장’이라 표현하고 거의 성별을 노출하지 않는 글을 썼었는데, 은연중에 저를 남자라 생각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을 고백하는 이야기로 느껴졌습니다. 좀 웃긴 게, 여성 연예인의 경우 연관검색어에 꼭 ‘몸매’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여성의 몸매를 검색했으면 연관검색어가 됐을까요? 더 웃긴 건, 심지어 그 단어가 제 연관검색어에도 뜬 적 있다는 겁니다. 얼마나 이 사회가 높은 빈도로 여성을 대상화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헬조선의 삶에 위로가 되는 친구

최 작가는 부동산 문제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부당하게 쫓겨나는 가게들을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한 가게는 보증금 3천만 원, 월세 300만 원이었는데, 건물주가 갑자기 보증금 1억 원, 월세는 1천 2백만 원으로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상 쫓아내려는 것이죠. 이런 일이 가능한 건 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 전체의 부는 늘고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만 가난해 지는 건 발생한 부를 너무 많이 빨아들이고 있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고 부동산 문제에서 이런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마치 봉건주의 시대로 회귀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처럼 살기 팍팍한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살아 나가야만 한다는 것은 인생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떠안은 숙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청년들의 삶이 어려운 것은 지나친 경쟁 분위기 때문이다. 청년 당사자인 최 작가는 청년들이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 좋은 친구와 함께 건강한 삶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청년이라는 시기가 모든 상대를 경쟁상대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때 일 것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청년들이 경쟁의 굴레 밖에서 정말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주위 사람을 경쟁의 상대로만 보면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어두운 감정에서 벗어나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그의 기쁜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친구를 둔다면 그 안에서 건강한 감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좋은사람을 볼 수 있는 눈을 갖추어야 할 테지요. 좋은 친구를 만날 기회는 우연히 찾아올 것입니다. 저는 <월간 잉여>를 만들면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청년들이 이렇게 좋은 친구와 함께 헬조선의 삶을 위로하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적인 모순과 착취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더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허지은 기자 jeh@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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