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은 행복한 일자리의 핵심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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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은 행복한 일자리의 핵심 키!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8.05.2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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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원 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희망제작소는 현 박원순 서울시장이 2006년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이다. 연구소는 정부나 기업의 출연금 없이 민간인들의 후원과 연구원들의 연구수익으로 운영된다. 황세원 선임연구원은 이곳에서 ‘좋은 일’이란 키워드로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언론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11년간의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지금은 하고 싶은 일, 즉 ‘좋은 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마음의 안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 황세원 선임연구원[사진=오세은 기자]

고정적인 월급이 로그아웃 되다
1997년에 터진 IMF 외환위기는 200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지금처럼 취업이 어려웠던 그때 황세원 선임연구원은 이른바 ‘언론고시’에 합격했다. 당시 부모님께서 취업을 축하한다며 ‘편집국장과 지혜로운 논설위원이 되길 바란다’는 손 편지를 전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랐다.

“기자가 된 이유는 사회 초년기 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어요. 기자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중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선배 기자들은 ‘기자’를 평생직업으로 삼았지만, 저는 처음부터 신문사가 평생직장은 아니라고 생각했죠(웃음). 제 입사동기나 후배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많이 가졌고요.”

고정적인 월급에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하는 일에도 크게 불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문화부에 있을 때, ‘단순히 지면을 채우는 영화 서평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단다.

“1년 반 동안 문화부에 있으면서 영화 서평을 썼어요. 그런데 영화는 영화 전문지가 있고 영화 평론가가 있어요.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콘텐츠와 일간지 기자가 쓰는 서평 중 어느 것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전자겠죠. 관람객 평점이 중요시되던 때 기자가 쓴 서평은 관람객들에게 큰 영향력이 없었어요. 그때부터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돼야겠다고 좀 더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신문사가 평생직장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일까 그는 계속 ‘다음’을 생각했다. 그러던 중 회사 사주의 편집권 침해가 심해졌고, 기자들은 파업에 나섰다. 그도 점점 사유화 되어가는 언론을 보면서 퇴사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홍보 일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하고, 새로운 곳으로 출근했다. 그에게 제의는 새로운 기회, 새로운 길로 다가왔다. 그는 사회적경제센터에서 1년 7개월간 사회적 경제의 모델을 소개하는 등 뉴스레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찾지 못했던,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의 답을 찾았다. 이후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 경제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좋은 일’의 기준은 무엇인가

▲ 황세원 선임연구원은 좋은 일자리에 대해 “좋은 일자리란 임금, 고용형태뿐 아니라 근로자의 주관적인 판단과 평가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것이어야 한다”며 “임금, 부가급여, 일의 성격, 일에 대한 자율성과 독립성 등이 갖춰져야 좋은 일자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사진=오세은 기자]

그가 사회적 경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점은 사회적 경제의 장점으로 ‘일자리 창출’이 강조되곤 하지만,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만들어낸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인지는 검증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기업이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고용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을 한 겁니다. 그런데 고용된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이 정말 좋은 일자리인지 혹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좋은 일’ 관련한 자료들이 몇 개 있지만 그 양이 적고, 설문지에 구체적인 질문이 포함되지 않은 채 나온 조사결과가 많아요. 조사할 때 물어보는 항목들이 좋은 일자리를 알 수 있는 척도로 보기는 어려워요.”

국제노동기구가 추진하는 ‘Decent Work(좋은 일자리)’는 고용, 노동기본권 보장, 사회보호 확대, 사회적 대화 증진을 전제로 하고 있다. Decent Work의 목표는 일자리와 미래 전망, 근무조건, 일과 생활 간의 균형 등을 말한다. 황세원 선임연구원은 “좋은 일자리란 임금, 고용형태뿐 아니라 근로자의 주관적인 판단과 평가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것이어야 한다”며, “임금, 부가급여, 일의 성격, 일에 대한 자율성과 독립성 등이 갖춰져야 좋은 일자리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도 양질의 일자리, 좋은 일자리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달 정부는 ‘청년 일자리 특단’의 대책으로 중소·중견기업이 근로자 1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할 경우1인당 연간 900만 원을 3년 동안 지원하기로 했다. 고학력 청년이 중소·중견기업 취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를 임금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에게 정부의 ‘청년 일자리 특단’ 정책에 대해 묻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3년 동안 대기업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좋은 일자리에 대한 초점이 ‘임금’에 맞춰져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좋은 일자리가 과연 ‘임금’만의 문제일까 의문이 들어요. 이미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의 임금 차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죠. 저는 중소기업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와 관련해 설문 조사를 할 때 단일 항목으로만 설문지를 구성하면 안 된다고 봐요. 조사 항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개인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함에도 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요. 이때 왜 이직하려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묻는 거죠. 예컨대 희망제작소에서는 2015년에 설문조사를 하면서 ‘좋은 일자리가 있다면 임금 수준이 어느 정도 변동될 때 옮기시겠습니까?’라고 질문했어요. 임금이 줄어 이직을 한다면 현재 임금의 몇%가 줄면 옮길 것인가. 90%, 70%, 50%… 이렇게 구체적으로 물어봤더니 응답자의 40% 가까이가 ‘줄어도 옮기겠다’고 답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조사항목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으나, 상식적으로 이직할 때는 월급이 올라야 옮기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습니다.”

그는 디테일한 조사를 해야 ‘임금’이 아닌 다른 이직 조건도 있음을 알 수 있다며 목소리 톤을 더 높였다.그렇다면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정부의 역할 중 하나가 메시지를 주는 거예요. 기업 안에서 원활한 소통이 되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힘쓰고, 일하는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 중 하나죠. 사람들은 점점 더 옳은 일을 하고싶어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좋은 일이면 지금보다 대기업을 희망하는 수가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조하는데 이는 ‘눈에 보이는 형태인 조직에 취업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요. 이는 근본적인 일자리 문제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한국사회’ 오히려 지금이 희망 있어
기업에서 많은 복지 혜택과 높은 연봉을 받는 이들은 중간관리자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하다. 황세원 선임연구원은 일에 대한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기업 다니는 중간관리자들이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다고 해요. 다양한 부서를 거쳐 차장, 부장 등 높은 직위에 올랐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보기 어려운 계급이 중간관리자들이에요. 요즘 안정적인 조직의 정규직일수록 희망퇴직 대상이 될 가능성도 높거든요. 이들 중간관리자들이 퇴사하면 치킨집과 편의점을 하는데 이유는 일에 대한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금 치킨집이나 편의점이 포화상태입니다. 창업을 해도 망하는 시대죠.”

그는 아이러니한 것이 또 있다고 말한다. 가장 안정적이고 보호된 조직 안에 들어간 사람도 불안해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모두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봐요. 개인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사회의 기본 토대가 전반적으로 올라가면 대기업, 공공기관으로 일자리가 쏠리지 않을 거예요. 기본 토대가 올라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기본소득이고요. 4대 보험의 범주를 넓히는 등 조직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면 공통적으로 불안해하는 이들이 줄어들거라고 봅니다.”

사회는 다양성과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는 각자가 만족하는 일을 찾을 가능성도 더 높아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산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그는 사회의 기본 토대가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높아지면 누구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기성세대에게 ‘일’은 삶의 전부였다. 그들에게 일이 없다는 것은 사실상 삶이 제로가 된다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를 겪은 세대를 보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일이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 황세원 선임연구원[사진=오세은 기자]

지난 3월, 황세원 연구원은 다른 저자 7명과 함께「자비 없네 잡이없어」라는 도서를 펴냈다. 이 도서에도 일자리를 바라보는 2030세대들의 시선들이 담겨 있다.

“2030세대는 살사댄스, 독서모임 등 개인이 하는 여러 활동이 직장만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본능적으로 행복한 삶을 찾아가고 있죠.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전세대와 많이 달라지고 있어요.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는 행복한 삶을 위해 나아가는 게 어려웠어요. 그런데 요즘 행복을 더 많이 추구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흐름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앞으로 행복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전문성을 찾아가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은 물론이고, 개인의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취업준비생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도 ‘일’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평생직장, 정규직 등의 키워드는 고용시장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거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나’를 대체할 수 없는 무기를 스스로 찾아야 하죠. 취업준비생도 직장인들도 나름 고충이 있겠지만 ‘내 일’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다음을 찾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 많은 대화를 나누시면 좋아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이 내 문제점을 찾아주기도 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기도 하니까요. 저도 11년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현재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그런 경험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고요. 저는 요즘 ‘좋은 일’ 연구를 통해 얻는 만족감이 매우 큽니다. 재미도 있고요. 좋아서 하는 일이 뭔지를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계속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기본 토대가 하루 빨리 단단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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