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특별한 도전, 이미지메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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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특별한 도전, 이미지메이킹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8.06.25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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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가 않다. 만약 미래를 예측한다면 걱정이나 불안 속에 살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미래를 알고 있다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투자하고 있다는 것에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위의 말에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삶을 잠깐 엿보길 바란다.

 

시각장애인 컨설턴트?
나는 20대 시기를 안정된 미래와 목표를 향해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건강악화로 신장 기능을 잃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두 눈마저 의료사고로 실명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세상과 내 자신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 때문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스물여덟에 상상조차 못했던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 나의 삶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어지럽고 힘겨웠다. 병원비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기독교방송에 출연하여 후원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방송을 듣던 청취자 한 분이 연락을 주셨는데, 이 분의 말씀이 내 삶을 또 한 번 바꾸었다.

“이덕배 씨 반가워요, 저는 안동에 사는 아무개고요 저도 덕배 씨와 같은 시각장애인입니다. 덕배 씨, 보이는 세상도 살아봤으니, 안 보이는 세상도 한 번 살아 봐요. 살만해요.”

그때는 헛웃음만 나왔는데 나는 지금도 이 말이 잊히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누구나 위기에 처하면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한 달, 일 년이 지나고 뒤를 돌아보니 세상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은 내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구도 두려움에 익숙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실명을 한 후 가장 힘든 건 세상 밖으로 첫발을 내딛는 것이었다.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전하는 일밖엔 없었다. 그래서 꿈을 꾸며 조금씩 펼쳐내기 시작했다.

7년을 투석을 하면서도 점자를 익히는 일과 보행 등 재활에 매달렸다. 야간투석을 하면서 낮에는 안마교육을 받았다. 점자를 배울 때는 이미 손의 감각이 둔해져서 비쥬 공예를 통해 감각을 익히기도 하였고, 남들 앞에 서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동화 구연 교육을 받아가며 자신감을 회복하려 애를 쓰기도 하였다. 흰 지팡이를 잡고 보행연습을 하는 도중, 계단에서 넘어져 두 번의 골절상을 입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투석 받는 분의 권유로 장기이식센터에 신장이식을 신청했는데, 믿기지 않게 12일 만에 뇌사자 기증자가 나타났고, 성공적인 수술로 나는 또 한 번의 새로운 삶 그 후로도 나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직업으로 삼고 있는 안마 기술과 교정술, 침술, 근육학 등 각종 기술을 배워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 직업은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서 나의 건강상태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하지만 그 힘든 죽음의 고비도 이겨냈는데 못할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시각장애인인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였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유투브에서 김경호 박사의 이미지 메이킹 강의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 메말랐던 내 가슴에 설렘이 찾아들었다. 강의를 접할수록 신선한 충격과 함께 ‘바로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찾아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다가왔다.

그때부터 나는 내적 이미지와 외적 이미지, 그리고 관계적인 이미지의 중요성과 적용 방법들에 대한 공부하였고, 배우는 내용 하나하나가 점점 더 내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옴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미지 컨설턴트와 이미지 메이킹 전문강사 1급 자격까지 취득하였고, 현재는 모 사이버 대학에서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보다는 고등학교 학생들과 군 장병들, 성인 평생학습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각장애인 이미지 컨설턴트 강사로 첫발을 뗀 것이다.

 

희망의 빛, 함께 보고파

내가 이 과정을 공부하기 전에 주변 시각장애인 동료들은 이미지 메이킹이란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그런 것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 보이기 때문에 더 좋은 인상과 더 좋은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 얼굴은 나의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김경호 교수의 주장처럼, 나보다 남들이 내 얼굴을 더 많이 본다는 사실을 유념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비장애인이나 장애인 모두가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고, 핸디캡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처음 이미지 메이킹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나처럼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들을 돕고, 그들의 직업 창출을 생각하고 도전을 하였지만, 이 배움을 통해 내 자신이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불어 새로운 도전을 받았다. 김경호이미지메이킹센터에는 이런 글귀가 붙어있다.

“나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변화가 생긴다면 내가 하는 일은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다!”

내가 이미지 메이킹을 배우기로 마음먹고 김경호 교수님과 전화 연결이 되었을 때, 어떻게 시각장애인으로서 이미지를 공부할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그리고 본인도 힘들 텐데 어떻게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을 위해 이런 결심을 했는지에 대해 매우 놀라워하셨다. 그러면서 이러한 계기를 통해 시작장애인들 뿐만 아니라, 장애가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큰 울림과 변화의 씨앗을 심어줄 것이라는 격려에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

이제 나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장애가 있으면 있을수록 더 필요한 것이 이미지 메이킹이다. 나처럼 앞이 안 보이는 동료들을 위해 맞춤형 이미지 메이킹을 연구개발해서 희망의 빛줄기를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앞이 안 보이는 나의 삶을 통해 의미 있는 꿈과 비전을 바라보길 소망한다. 늦깎이 대학생이지만 전공하고 있는 상담심리학을 전문적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석박사가 되어 힘겨운 사람들의 멘토가 되어 주고, 또 함께 더불어 사는 꿈도 꾸어본다. 꼭 그렇게 할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과 취업에 힘겨워하시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떤 도전이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때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큰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경험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도저히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에는‘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를 한 번 떠올려 주시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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