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찾기가 쉽지 않아도 자존감을 잃지 마세요
상태바
진로 찾기가 쉽지 않아도 자존감을 잃지 마세요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8.08.27 1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정민 MBC 라디오국 PD

 “당분간 서울의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면서 불볕더위가 지속될 전망입니다. 건강관리에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요 며칠 TV와 라디오에서 많이 듣는 날씨 예보. 밤 기온도 25도를 웃돌면서 전국이 열대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서울 강남으로 출근하는 직장인 김진아 씨도 열대야로 인해 밤잠을 설친 탓에 출근길 발길이 무겁다. 하지만 이내 무거운 발걸음은 콧노래로 가벼워진다. 이유는 MBC라디오 <굿모닝 FM>과 함께하기 때문. 이렇게 라디오를 통해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가볍게 해주고 있는 <굿모닝 FM 김제동입니다(이하 굿모닝 FM)> 연출자 하정민 PD를 서울 상암동 MBC 본사에서 만났다.

▲ 하정민 MBC 라디오국 PD[사진=오세은 기자]

수차례 ‘언론고시’ 탈락 끝에 진로 바꿔
올해 MBC 입사 10년 차에 접어든 하정민 PD는 대학 때 학보사 활동을 통해 ‘기자’를 희망했다. 공부가 뒷전일 만큼 신문 만드는 일에 푹 빠졌다. 신문사 인턴도 해 졸업 즈음에는 자연스레 기자를 희망했다. 그는 이른바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그토록 희망한 기자가 아닌, 라디오 PD가 됐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주요 언론사에도 여러 번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 이길이 내 길이 아닌가’ 싶었죠. 떨어진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더 이상 지원하지 않기로 했어요. 기자는 냉철하게 다른 사람을 비판도 해야 하는 직업인데, 이런 면이 저와는 잘 맞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리는 ‘기자’를 희망했지만 언시생일 때 자신의 성격과 맞지 않음을 확인했다. 이후 기자라는 직업을 접었다. 그렇게 진로에 대해 조금은 막막하던 어느 날, 지인의 추천으로 MBC 공채에 지원하게 됐다.

“원했던 기자의 꿈을 접고 나서는 조금 막막했어요. ‘앞으로 무얼 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었죠. 그때 지인이 방송사에서 라디오 PD를 채용하는데 한 번 지원해 보라고 하더군요. 그동안 준비해온 기자직 시험(시사상식, 작문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요. 지원서를 넣고, 큰 기대는 안 했어요. 그런데 운이 좋았는지 최종합격까지 했어요.”

▲ 하정민 PD는 MBC 공채 지원 3개월 전부터 자소서와 면접을 철저히 준비했다. 그는 MBC 라디오의 주요 프로그램을 다시 들으면서, 프로그램의 연출자 입장에서 기획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사진=오세은 기자]

2007년 MBC 라디오국에 입사한 하정민 피디는 당시 KBS와 SBS 등 타 방송사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언시생 사이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좋은 직장이 KBS, 우주에서 제일 좋은 직장이 MBC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하 PD는 MBC가 황금기일 때 입사했다. 그는 입사 당시 MBC는 학교 성적과 어학 점수를 거의 안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지금의 채용전형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솔직히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MBC는 어학점수와 학점을 크게 보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지원자의 독특한 개성을 높게 평가했죠. 입사 동기 중에는 토익점수와 학점 낮은 이들이 저를 포함해 꽤 있었습니다(하하).”

그는 자신의 합격 비결이 따로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자기소개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는 MBC 공채 지원 3개월 전부터 자소서와 면접을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MBC 라디오의 주요 프로그램을 다시 들으면서, 프로그램의 연출자 입장에서 기획서를 작성하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라디오와 관련된 논문을 찾아 읽어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라디오 PD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가면서 자소서를 작성했죠. 그런 다음 기술적, 전략적으로 접근했고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내 지원서를 보고 제 말에 설득될 수있을 정도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노력이 필요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는 자소서에 얽힌 사연이 있다면서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언론사 시험에서 떨어질 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특히 자소서를 쓰면서 ‘도대체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지? 나는 왜 계속 떨어질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존감도 많이 낮아진 상태였죠. 그래서 어느 날은 장점 100가지를 쓰려고 밤을 지새웠어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했던 방법이었죠. 뭐가 됐든 100개를 채우려고 했어요. 1번부터 10번까지는 술술 써지더라고요. 그런데 뒤로 가면서 적는 게 힘들어지고 끝에 가서는 ‘줄넘기 100개 할 수 있음’, ‘숨을 1분 이상 참을 수 있음’까지 쓰게 되더라고요(하하).”

그는 ‘나의 장점 100가지 쓰기’가 자소서에 직접 녹여낼 글감은 되지 않지만, 당시 낮아진 자존감을 높이는데 분명 도움이 됐다고.


라디오는 소소한 일상 나눌 수 있는 ‘친구’
지난해 9월 4일 MBC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총파업 기간에 하정민 PD도 라디오 부스를 떠나 있었다. 활짝 웃는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파업기간 동안 라디오에서는 의미 없는(?) 노래만 흘러나왔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총파업이 종료되었고 하정민 PD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 하정민 PD가 <굿모닝 FM 김제동입니다>가 진행되는 라디오 부스에서 콘솔을 잡고 있는 모습.[사진=오세은 기자]

굿모닝 FM은 하정민과 안동진 피디, 홍수정 작가를 포함한 작가 3명, 그리고 김제동 DJ 등 여섯 명이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여섯 명은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는 돈독한 관계로 라디오국에서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고.

“오전 9시에 생방을 마치고 구내식당에서 다 같이 늦은 아침을 먹어요. 그리고 곧바로 수다 타임을 갖습니다. 시시콜콜 아주 사소한 것까지, 굉장히 많이 그리고 오래 떱니다(하하). 방송이 끝나면 수다로 시작해 수다로 ‘안녕~’을 할 정도죠. 수다를 많이 떠는 이유는 수다를 떨다보면 그 안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홍수정 작가는 베테랑인 만큼 일처리도 빠르고, 아이디어가 샘솟는 분이세요(웃음).”

하 PD는 올해로 라디오 연출을 맡은 지 10년이 넘었다. 처음 PD가 되었을 때는 열정과 각오가 남달랐을 터. 그 동안 그에게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는지 물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라디오 PD를 하면서 변한 건 ‘나이’라는 숫자뿐입니다(하하). 라디오의 주인은 청취자에요. 10년 전 다짐했던 것들이 지금이라고 변한 건 딱히 없어요. 다만 초년병 시절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죠. 그때는 원고든 진행이든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틀에 얽매이다보니 스스로 마음 한 구석이 늘 초조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연출을 오랫동안 해오다 보니 진행자의 마음이 편해야 청취자들도 편하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실 이전에는‘라디오의 매력은 이거고, 이렇게 하는 거지’라고 저 나름대로 생각했던 게 있었어요. 그런데 점점 이런 틀에서 벗어나게 됐죠. 열정과 초심은 잃지 않되 그 중심엔 항상 청취자분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력이 쌓이면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생겼고, 또 진행에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10년 넘게 라디오와 동고동락하는 그에게 라디오는 어떤 존재일까.

“늘 우리 곁에 있는 ‘친구’ 같아요. 그냥 소소하게, 일상속에서 일어난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요. 그리고 제가 DJ를 섭외할 때 꼭 하는 말이 있어요. DJ와 청취자들의 관계는 TV프로그램 진행자와 시청자와의 관계와는 다르다고요. DJ를 하면 내 편인 ‘친구’가 생겨요. 내가 잘못해도 나를 감싸주는‘내 편’이요. 나를 응원해주는 청취자들이 생기는 게 참 놀라운 거 같아요. 그래서 라디오가 더욱 매력 있고요. 청취자분들의 고민 사연이 왔을 때, 다른 청취자가 해결책을 문자로 보내주십니다. 청취자들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이 일이 점점 더 좋아져요. 저는 밥 짓는 냄새처럼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게 라디오고 그게 라디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
라디오의 매력에 흠뻑 빠져 즐겁게 생활하는 하 PD의 하루가 궁금해져 그의 모습을 그려봤다. 

‘여름철이라 이른 시간임에도 해가 빨리 떠 부스 안에 아침 햇살이 가득하다. 네모난 부스에는 김제동 DJ, 하정민 PD, 작가들의 모습이 즐거우면서도 분주하다. 온에어를 알리는 빨간 불이 들어오기 30초 전.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온에어에 불이 들어오고 하정민 PD가 콘솔을 작동해 첫 곡을 튼다. 바깥에서는 부스 안이 훤히 보였고, 정면에 하정민 PD가 보인다. 하 PD의 좌측에 김제동 DJ가 앉아 있고, 맞은편에 게스트가 앉아 있다. 게스트 주변에 앉은 작가들이 대본을 읽고 있다. 유쾌한 웃음이 부스 안에 넘실거린다.’ 

어느 덧 라디오가 일상이 되어버린 하 PD에게 만약 라디오PD가 아닌,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리고 PD를 그만 둔 후에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물었다.

“당장에 PD 외에 심각하게 생각해 본 것은 없어요. 하지만 노후에는 문구류 몇 가지랑 그림책 위주로 된 조그마한 책방을 열고 싶어요. 공간은 동네 꼬마들이 놀러올 수 있는 정도면 좋겠네요(웃음). 제 취미가 문방구 쇼핑, 특히 수첩 모으기이거든요. 그렇게 문구류만 파는 조그만 서점을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도 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라디오 PD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조언 한 마디를 청하자 시종일관 유쾌했던 그의 어조가 낮게 깔렸다.

“라디오 PD의 직업 수요는 굉장히 적어요. 때문에 채용전형에서 떨어지더라도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해요. 지원자의 실력과 역량이 부족해서 떨어진 게 아니라, 그 해 회사의 인재상과 맞지 않아서, 그리고 채용인원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사실 ‘언론고시’에 많이 떨어져 막연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준비하면서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취업에 여러 번 실패하더라도 자존감을 잃지 마십시오. 자존감을 높이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 자존감을 유지한다면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푹푹 찌는 날이 계속되는 요즘입니다. 취업준비생분들, 그리고 직장인분들 모두를 어렵게 하는 날씨지만 그래도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모든 분들의 걸음걸이에 즐거움이 가득하도록 항상 굿모닝 FM이 함께 하겠습니다!”

글·사진│오세은 기자 ose@hkrecrui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