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간 이유는?②] ‘대기업’이라는 사회적 평판보다 ‘나의 성장가능성’을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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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간 이유는?②] ‘대기업’이라는 사회적 평판보다 ‘나의 성장가능성’을 봤어요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8.08.27 14: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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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진한(가구업체 A사 개발팀)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허진한 씨는 전공을 살려 글로벌 종합 컨설팅 S사에서 개발자로 일했다. 회사는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컨설팅사였다. 그는 이곳에서 2년간 근무 후 더 이상 자신이 성장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해 퇴사를 결정했다. 다시 구직시장에 뛰어든 그는 약 8개월 가량 준비 끝에 중소기업에 재취업했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기업의 상시근로자 수는 6명에 불과하다. 그는 이전 직장인 대기업을 퇴사하고 난 뒤, 부모님의‘다시 이전 회사로 가면 안 되겠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복잡하고 느린 의사결정에 답답함 느껴
허진한 씨는 이전 회사에서 웹 페이지 개발을 담당했다. 그곳은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짧게는 몇 주, 길게는 1년이 걸렸다. 그는 대기업 내부의 복잡하고 느린 의사결정 체계가 자신과는 맞지 않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면 굉장히 많은 결재 과정을 거쳐야 했고, 때로는 중간에 일이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업계 특성상 시장의 반응을 적극 반영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죠.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경우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경영진이 이를 프로젝트에 즉각 반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전 회사는 그런 조직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일의 진행 속도가 워낙 느려 답답함도 느꼈고요.”

2년차 직장인을 흔히‘직장인 사춘기’라고 한다. 입사 2년 차에 접어들면 퇴사 욕구가 생기고 퇴사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 그 역시 입사 2년 차 때‘직장인 사춘기’가 왔고 이때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하지만 그는‘직장인 사춘기’보다는 회사의 문화가 자신과 너무 맞지 않았다고 했다.

“‘직장인 사춘기’라는 입사 2년차 때 앞으로의 커리어를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저의 성장 가능성, 대기업의 업무 시스템 등을 고려해 봤을 때 더 이상 남아있는 건 아니겠다 싶어 퇴사를 결심하게 됐죠. 그리고‘조직문화’도 저를 힘들게 했어요. 작은 기업의 경우 개개인의 업무가 많고 바빠도 서로‘파이팅’하면서 힘을 북돋아주잖아요. 그런데 이전 기업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기대할 수 없었죠. 또한 상하관계가 엄격한 보수적인 군대문화도 저를 힘들게 했고요.”

그는 조직문화가 좀 더 유연할 것 같은 IT 공룡기업 네이버와 카카오 등에도 관심을 두었지만 그곳 실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을 접었다고. 그렇다면 중소기업으로의 재취업에 있어 그가 최우선으로삼은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면접에서 어필했던 점은무엇이었을까.

“중소기업으로 재취업할 때 가장 먼저 고려했던 것은 ‘나의 성장 가능성’, 그리고 ‘재취업하는 곳에 제가 보고 배울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의 여부였어요. 현재의 직장이 이 두 가지를 갖추고 있어 고민 없이 선택했습니다. 면접에서는 현직장과 이전 직장의 사업 분야가 달랐기 때문에 크게 어필할 수 있었던 저만의 장점이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직장에서의 개발자 경험을 높이 사주시는 것 같았어요. 사업분야는 달라도 개발자로서의 역할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재직 중인 회사와의 면접에서 기억에 남는 질문은 없었지만, 다른 회사와의 면접에서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의 회사에 오기 전에 다른 회사에서 면접을 봤습니다. 면접관이‘회사는 성장하는 사람을 원하는데 지원자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를 설명해보라’고 하더군요. 생각지 못한 질문이라 순간 당황했죠.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지금까지 맡아온 업무를 말하고 제가 가진 역량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었다고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죠. 그리고 개발자들은 ‘github’라는 사이트에 자신의 과거 소스코드들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이곳을 보면 제가 성장하고 있음을 아실 수 있을 거라고 답했습니다.”


이직의 조건은 ‘연봉’ 아닌, ‘하고 싶은 일’
대기업을 떠나 중소기업에 둥지를 튼 지 2년이 돼가는 허진한 씨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에 업무는 물론 조직문화에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대기업은 개인에게 주어진 업무, 한정적인 업무만을 주로 하게 됩니다. 대신 한 분야를 깊게 알 수 있어 스페셜리스트를 지향한다면 대기업의 업무 프로세스가 맞을 수 있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 한 사람의 업무량이 많고 업무 범위도 굉장히 넓습니다. 업무가 힘들지만 일에서 오는 재미와 성취감이 높죠. 만약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한다면 중소기업에서의 업무가 잘 맞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직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있는 회사의 경우 자율출근제를 도입해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재택근무도 본인이 희망하면 언제든 할 수 있고요. 이전 회사였다면 결재를 몇 차례 걸쳐야 해 쉽게 결론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국내 경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중소기업이다. 그 많은 중소기업 속에는 ‘알짜’ 기업도 많다. 그는 ‘알짜’ 중소기업을 찾을 때 다음과 같은 기본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볼 것을 당부했다.

“‘알짜’ 중소기업이 되려면 우선 사원수 대비 회사의 매출이 일정 부분 갖춰져야 합니다. 매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고정적인 월급을 받기 어렵거든요. 매출을 본 다음에는 조직에 이른바 ‘꼰대’가 없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다 흐린다’는 이야기처럼 사람 한 명이 조직 내 문화를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에 지원하기 전에 이를 반드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가 재취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8개월. 퇴사를 하면서 플랜 B를 세워두지 않아 재취업에 다소 시간이 소요됐다. 그는 대기업에서 자신과 같이 개발자로 일한 사람이 중소기업의 개발 분야로 이직을 희망한다면 다음 사항을 염두에 둘 것을 당부했다.

“보통 대기업 출신의 개발자들은 스타트업으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업무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조직문화도 유연하기 때문일겁니다. 그런데 스타트업의 경우 ‘자유에 따른 책임’이 굉장히 큰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철저히 성과 위주로 개인을 평가하기 때문에 자신이 일하고 싶은 곳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는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이 분명 따르죠. 그리고 대기업에서 누리던 당연한 복지들이 중소기업에서는 당연하지 않습니다. 특히 연봉에서부터 큰 차이가 나고, 때로는 일이 더 많을 수도 있어요. 따라서 가고자 하는 기업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고, 어떤 근무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가 뚜렷했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하는 데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물론 대기업 퇴사로 서운해 하는 부모님의 얼굴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대기업 퇴사결정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제가 첫 직장을 대기업으로 희망한 이유는 사회적 평판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해보니 사회적 평판과 돈이 제 삶에 우선순위는 아니었어요. 사회적 평판보다 커리어를 높일 수 있는 ‘성장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했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은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금액은 연 소득 7만 5천 달러’라고 정의했어요. 그리고 어느 수준 이상의 연봉에 이르면 돈을 더 받는다고 해서 행복도가 증가하는 게 아니라고 했죠.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한 동안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라고요. ‘연봉’이 아닌, ‘업무’였어요. 돈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죠. 대기업 퇴사를 고려하시는 분들이라면 자신에게 맞는 근무 환경과 업무를 머릿속으로 정리한 후에 퇴사할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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