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마음의 눈이 되는 ‘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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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의 마음의 눈이 되는 ‘점역사’
  • 오세은 기자
  • 승인 2018.08.28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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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원 점역사

 어려서부터 언어를 좋아한 이정원 점역사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이후 중앙대 통번역대학원까지 나왔다. 통번역을 선택한 건 언어를 유달리 좋아한 것도 있지만, 이를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원 졸업 후 잘 나가는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그런데 어느 날, 좀 더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었다는 그는 전공 관련 일을 검색하다 현재 근무중인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중국어 전공자를 채용하는 ‘점역사’를 보고 주저없이 지원했다. 점역사로 일한 지 어느덧 8년째에 접어든 그는 “점역은 시각장애인들의 문자 생활 등을 돕는 일이고, 그 일에 나의 재능을 쓰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 점역사로 일한 지 어느덧 8년째에 접어든 이정원 점역사는 “점역은 시각장애인들의 문자 생활 등을 돕는 일이고, 그 일에 나의 재능을 쓰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사진=오세은 기자]

Q. 간략한 개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2011년부터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도서제작파트에서 근무 중인 이정원 점역사입니다. 현재 점역·교정사 자격증 1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Q. ‘점역사’란 직업이 생소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점역사는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이용해 점자 인쇄물을 읽을 수 있도록 일반 문자를 점자로 번역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번역을 했다고 해서 점자도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점역사가 점역(글자를 점자로 바꾸는 과정)을 하고 난 뒤에,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교열(검열)을 하는데, 이때 워드프로그램을 이용한 텍스트 편집이 이루어집니다.

이전에는 점자판과 점자타자기 등을 사용해 점자로 옮기는 작업을 했으나, 지금은 점역 분야도 정보통신 기술의 혜택으로 점역 프로그램을 돌려 점자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예컨대 줄글로 이뤄진 일반도서는 스캐너를 통해 컴퓨터 파일로 바꾼 뒤 점역 프로그램을 돌려 점자책으로 만들어 집니다.

 

Q. 점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요?
특별히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보통 점역사는 시각장애인 관련 기관에서 일하게 됩니다. 때문에 기관마다 점역사를 채용하는 조건이 상이합니다. 채용하는 기관의 공고를 숙지해 준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의 경우 점역사 채용 시 점역·교정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아도 일 할 수 있습니다. 자격증이 없는 경우 먼저 복지관에서 점자 도서를 만드는, 일련의 기본 교육을 마치고 난 뒤에 3급 시험(국어 과목)을 보기도 합니다.

 

▲ 점역하고 있는 이정원 점역사[사진=본인 제공]

Q. 근무환경이 궁금합니다.
주로 사무실 내에서 도서를 제작하기 때문에 외근이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장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입력 작업을 하기 때문에 눈의 피로와 어깨나 손목 등의 통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야근은 필요 시 하는데, 보통 시각장애인분들이 의뢰하는 도서가 많아질 경우입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대부분의 점역사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복지시설은 국가에서 예산을 보조해 주고 있고, 사회복지법인 등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임금이 높은 편은 아닙니다.

 

Q. ‘점역사’ 직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존재할 수 있는 직업이라 보시는지요?
예전에는 점자타자기 등을 사용해 한점한점점역했습니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타자로 찍었던 점자를 소프트웨어로 편집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술발전으로 시각장애인들도 양질의 언어 및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됐죠.

하지만 기술이 발전해도 점역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 존재한다고 봅니다. 점역사들은 일반도서를 점역하기에 앞서 도서를 이해하고 독해를 합니다. 이러한 일을 기계가 얼마큼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듭니다. 또 점역사는 단순히 점자 도서만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직접 만나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들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기계가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이고요. 앞으로 점역사는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습득 편리 도모를 위해 다양한 기술을 활용할 것 같습니다.

 

▲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점역사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사진=오세은 기자]

Q. 점역사에게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정확성, 꼼꼼함, 인내심을 요하는 직업이 점역사인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무엇보다 시각장애인을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점자 도서 제작만이 아닌, 시각장애인을 만나 그들이 어떤 책을 필요로 하는지 직접 듣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래 앉아서 일하기 때문에 외향적 성격이면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Q. 점역사에 대한 전망은 어떻다고 보시는지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를 제작하는 곳이 시각장애인 복지관, 점자도서관, 국립장애인도서관, 점자출판사 등입니다. 보통은 시각장애인 관련 업무가 있는 곳에서 점자 도서를 제작하죠. 때문에 수요가 많은 직종은 아닙니다.
 

Q. 향후 목표가 궁금합니다.
올해로 점역 일을 한 지 8년 차에 접어들었네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땐‘오래일할수있을까’란 생각도 했었죠. 사회복지관련 전공자가 아니었고, 제가 가진 능력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란 생각에서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 여러 모로 느끼고 배우는 바가 커 지금까지 점자 도서를 만들고 있습니다(웃음).

향후에는 제가 배운 점역 기술과 가진 재능을 갖고, 개발도상국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의 독서 증진을 위해 일하고 싶어요. 개발도상국의 경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이 굉장히 열악해요. 정부에서 지원조차 안 되는 곳이 많습니다. 우리는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도서가 있으면 이를 기관에 신청해 받아볼 수 있지만 개발도상국의 경우 매우 희박하죠.
 

 

이정원 점역사는 “한국의 점자 도서 제작은 시스템화 됐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법도 예전과 비교해 많이 생겨났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 해에 출판되는 일반도서 가운데 점역이 이뤄지는 비율은 5%가 안 된다”며 “시각장애인의 독서권과 학습권을 일반인 수준으로 보장하려면 점자 도서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각계의 관심과 지원을 부탁했다.

글·사진┃오세은 기자 ose@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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