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도 휴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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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도 휴식이 필요하다!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8.09.2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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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체육대회로 정신없었던 학창시절. 이어달리기와 줄다리기 등 모두가 하나 되어 축제처럼 즐기고 응원했던 추억이 살아난다. 이 가을, 저녁을 즐기며 커피와 함께 추억에 빠져본다. 와인은 포도 생산과 수확, 압착과 발효, 여과와 병입까지 모든 과정을 생산자가 관리하고, 시장에 나온 것을 소비자가 사면 그때부터 품질관리는 소비자의 몫이다. 이어달리기의 패턴으로 보자면 품질관리를 생산자가 곧바로 소비자에게 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커피는 다르다. 이어달리기의 주자가 많다. 앞선 주자가 품질을 잘 보존하여 무사히 다음 주자에게 넘겼다 하더라도 마지막 주자가 넘어지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땀 흘려 생산한 커피라도 바리스타의 손에서 형편없이 망쳐질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단계는 바로 로스팅이다. 소비자들이 원두의 품질을 생각할 때도 로스팅 회사를 먼저 떠올린다. 로스팅 회사는 생두 구입 시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만, 그 중에서도 풍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 수확, 정제, 선별, 포장, 수출 시기와 방법, 그리고 가격까지 살펴 구입을 결정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윤리와 환경까지 고려하여 생산농가에서 어떤 농법을 사용하는지, 노동자들이 보상을 제대로 받는지도 따지는 추세이다.

이처럼 오늘날에는 다양한 연구를 통하여 원두 자체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한두 가지의 특정한 맛과 향을 이끌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원하는 맛과 향을 찾을 수 있지만, 어떤 곳은 별다른 노력도 없이 이런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는 학교에 출석만하고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올 A+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커피의 매력은 예측 불가능한 모호한 맛과 향에 있다. 그래서 로스터들은 인상파 화가와 같다. 얼핏 보기에는 사용하는 기교가 불완전하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완성된 작품 전체를 보면 그 불완전함이 빚어낸 풍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스팅 후 가장 맛있는 시점은 언제일까?
갓 볶은 원두는 생각보다 맛이 없다. 금방 볶은 원두가 맛있는 음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바로 휴식시간이다. 원두에게 휴식시간을 주는 목적은 원두 내부에 있는 가스, 즉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가 녹아든 커피는 맛이 없기 때문. 또 다른 목적은 로스팅이 끝난 후 몇 분, 몇 시간, 며칠 뒤까지도 이어지는 크고 작은 화학변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원두의 휴식과 가스 배출에 필요한 시간은 로스팅 방식과 보관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높은 온도에서 강하게 로스팅한 원두가 가스 배출이 더 쉽고 빠르다. 기체가 빨리 배출된다는 것은 다공성이 높다는 얘기로, 산화 또한 빨리 진행된다. 로스팅 후 약 일주일간 가스가 배출되는데, 이때 배출되는 가스의 비율과 범위는 향기와도 연결된다.

커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향을 잃으며 산화되고, 어느 시점을 넘어선 후에는 맛 없는 그냥 밋밋한 원두가 되어버린다.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서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기준을 제시하자면, 우선 갓 로스팅한 원두는 최소 12시간 정도 휴식시간이 지나야 최상의 맛을 낸다. 1~10일 사이는 드립용으로, 7~14일사이는 에스프레소용으로 추출해 마시기를 추천한다. 원두의 휴식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삶의 휴식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여름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면, 다시 재충전이 필요하다면, 나만의 휴식을 맛과 향이 좋은 원두로 내린 커피 한 잔과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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