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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속에서 지구마을을 향한 ‘마음의 이정표’를 찾았죠!Design my Life | 최희진 (주)어스맨 대표
최성희 기자  |  ish@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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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호] 승인 2018.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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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봇짐을 지고 전국 곳곳에 물건을 전달하던 보부상들은 단순한 상인의 역할뿐만 아니라 소식통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세상의 모든 교환행위에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지속가능한 삶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공정무역 브랜드 ㈜어스맨의 최희진 대표도 이러한 철학을 추구하고 있다. 스스로 ‘지구마을 보부상’을 표방하는 그를 만나 그의 삶과 공정무역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느 날, 퇴사를 결심하다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최희진 대표는 어느 날 학교 논술 선생님으로부터 ‘라다크로부터 배우다’를 부제로 한 책, ‘오래된 미래’를 추천받았다. 그는 책에서 라다크 지역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접하고는 모두가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사회가 있다는 사실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충격을 받은 것과 동시에 당시 내면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게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채 남들처럼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해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갔다.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경쟁이 없는 사회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미국 교환학생 시절에는 국제비즈니스 수업을 통해 단순히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게 아닌, 사회적 목적을 지닌 사회적 경제 영역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때까지는 막연히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상적인 꿈만 가지고 있었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기회는 많지 않았죠. 사회가 만들어 놓은 주어진 미션에 충실하며 그저 ‘최소한의 최선’으로 살아갔던 겁니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후 그는 진로 고민을 하지 못한 채 남들처럼 취업준비를 했다. 단순히 ‘배울 수 있는 회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면접스터디에 나갔고 공채전형에 지원했다. 그렇게 그는 종합상사에 취업했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3년 반 동안 남부럽지 않은 사회생활을 이어갔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는 일을 배우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늘 무언가 풀리지 않는 갈증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고민할 시간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돌이켜보면 막연히 불안하고 막막했죠. 어떻게 하면 나답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서른이 오기 전 나에게도 방황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를 결심했어요. 사회에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고 수식했던 것들을 벗어던지고 ‘내가 어떠한 일을 해야 즐겁고 잘 할지’에 대해 스스로 반문했던 거죠.”
 
그는 퇴사를 고민하던 순간 5~10년 후 지금 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확신이 드는 순간까지 충분히 기다렸고 퇴사하기로 마음먹은 뒤로 그는 그가 생각했던 일을 막힘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저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최희진’이라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진정으로 마주했어요. 즉, 내가 어떠한 일을 잘하고, 어떠한 일을 할 때 행복한지, 그리고 어떠한 것을 양보할 수 있고 양보할 수 없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제야 일종의 ‘뒤늦은 사춘기’를 겪은 겁니다.”
 
그의 부모님은 그의 퇴사 결정에 믿음을 보내주었다.  
 
“금요일에 마지막 출근 후 회사에서 환송회를 하고 주말에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께 회사를 그만뒀다고 통보했죠. 부모님은 이제껏 너의 길을 잘 걸어왔으니 앞으로도 너의 결정을 믿는다고 말씀하셨죠. 그리고는 이틀 뒤 ‘오래된 미래’의 배경이 된 마을, 인도 라다크로 향했습니다.”
 
 
‘오래된 미래’에서 공정무역을 만나다 
그는 인도 여행을 다녀온 후 국제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인도 여행 일정을 그리 길게 잡지 않았다. 
 
“국제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기분전환 차원에서 인도 여행을 떠났던 거예요. 여행으로 갔던 인도에서도 국제기구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고 늘 바쁘게 지냈던 거 같아요. 그곳에서 ‘오래된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를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인도에서도 쉼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을 듣고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독일인 히피 친구가 저에게 ’너는 살면서 아무것도 안 해 본 적이 있니?‘라는 질문을 던졌죠. 당시 저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고 숙소에 돌아와 밤새 생각에 잠겼습니다. 멈추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 불안한 기분이 들어서일까요? 학교를 가고 회사를 가고 어딘가에 소속되어서 계속 무언가 목적을 위해 멈추지 않고 살아왔던 게 사실이었죠.”
 
그는 스스로에게 좀 더 방황할 시간을 주기로 결심했다. 잠깐 다녀오려던 여행의 여정은 인도를 지나 태국과 라오스로 이어지며 8개월간 계속됐다. 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섬에 들어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을 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이 공정무역이 맞는지, 진정으로 내가 국제대학원을 가고 싶었던 건지, 단순히 울타리를 벗어나 나 홀로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를 끊임없이 고민했죠. 끝없이 파도치는 바다를 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저의 마음은 바다처럼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수렴됐습니다. 그렇게 공정무역에 발을 들이고자 결심을 굳혔죠. 내 이성과 감정, 몸이 그 길로 향하길 원하고 있다는 걸 확신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라오스의 공정무역 회사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하면서 현지 공정무역협회장 등 좋은 분들과 인연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수공예 제품의 거래를 성사시킨 곳은 라오스다. 라오스는 그가 공정무역 회사에서 인턴생활을 했기에 친근감이 많았다.
 
“라오스는 제2의 고향입니다. 감사하게도 좋은 파트너를 많이 만나게 됐죠. 현지 공정무역 회사 대표에게 당신이 생산지에서 생산자들과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면 이것을 제가 소비자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라오스의 수공예 제품을 유통하며 첫 거래를 시작했고 그 뒤로 라오스에서 소개를 받아 파키스탄 훈자 지역에까지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길다면 긴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2011년 현재의 어스맨을 1인 기업으로 등록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공정무역에 대한 절박한 마음이 저에게 하나의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다른 나라의 농부의 삶은 나의 삶과는 전혀 다른 방식일지도 모르지요. 지구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이들 모두가 그 자체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의도에서 공정무역에 뛰어들었어요. 무엇보다 이 일이 나에게 잘 맞고 의미가 있는 일인지 직접 용기있게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최 대표는 공정무역에 발을 들이게 된 그 당시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이 지나고 난 후 라오스에서 인턴 생활을 할 때 쓴 일기장을 뒤적여 보니 이렇게 적혀있더라고요. ‘정답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찾고 있던 퍼즐 한 조각을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퇴사를 하고 불현듯 떠난 여행, 그리고 공정무역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남들이 보기에 무모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마음속으로 생각해왔던 것들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며 행복감을 느꼈던 거죠.” 
 
 
‘즐거운 밥벌이’ 
어스맨의 사명은 말 그대로 흙(Earth)과 사람(Man)을 뜻한다. 어스맨은 흙과 사람이 만들어낸 다양한 제품을 무역하는 회사다. 
 
   
 
“나이키하면 운동화처럼 흔히들 브랜드를 떠올리면 제품이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사실 어스맨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와 다릅니다. 회사와 제품을 브랜드로 규정짓고 싶지 않았기에 회사명을 ‘어스맨’으로 지었고, 제품 뒤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보부상 캐릭터를 로고로 만들었어요.”
 
회사를 시작할 때 최 대표는 생산자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누구보다 컸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공정무역이라는 일에 뛰어들며 ‘즐거운 밥벌이’를 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 
 
“돌이켜보면 제가 생각했던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제품과 그 제품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제품을 사는 사람을 이어주는 어스맨을 통해 플랫폼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공정무역은 단순히 저개발 국가에 사는 가난한 농부를 도와준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제품을 통해 모두가 건강한 선순환 구조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죠.”
 
그렇게 1인 기업으로 시작한 어스맨은 2014년 주식회사로 법인을 전환하고 2016년 식품 영역까지 제품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식품 영역까지 거래를 넓히면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거듭났다.   
 
“거래 제품을 물색할 때 제품으로서 훌륭한지, 제품이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무엇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무역으로 지속가능한 삶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어스맨의 가치에 부합하는지를 봤어요. 사실 이를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을 찾아 거래를 넓히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인연이 닿아 절차가 다소 까다로운 식품 영역에까지 거래를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공정무역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며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적 가치라는 두 영역을 동시에 끌고 가야 하는 일이다. 그는 공정무역을 통해 이 두 영역, 즉 제품을 판매하고 제품의 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공정무역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하다면 단순합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면서 지속가능한 거래구조를 만들어 나갑니다. 생산자든 소비자든 그 중간의 과정을 최소화하고 소비자들이 수용 가능한 가격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직접 부딪쳐 가며 노력한 결과 2세대 공정무역 꿈나무로서 성장해 나가고 있죠.”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일에 임하고 있다는 그는 하루하루를 특유의 단단함과 유연함으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 한정된 자원으로 경쟁상황에 놓일 때가 많지만 그때마다 내면의 확신을 가지고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저도 실패가 걱정되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없더라도 ‘일단 시작해보자’는 용기는 있었죠. 모든 걸 붙잡을 수 없는 선택의 상황에 직면할 때에는 저는 머리와 가슴이 향하는 방향이 한 지점에 모일 때까지 기다립니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많이 주고 먼 훗날 지금 이 순간을 돌아봤을 때 후회되지 않을지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최 대표가 생각을 행동으로 우직하게 옮긴 결과, 어스맨은 3년 전 서울특별시로부터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아름다운커피나 두레생협처럼 큰 단체의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면에서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말 그대로 저 자신의 소신을 믿고 나갔습니다. 끊임없이 ‘최희진’이라는 사람과 맞닥뜨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지금도 최희진 대표는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마주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그의 인생철학이 그대로 담긴 공정무역을 펼치고 있다. 
 
“공정무역에 발을 들인 이후 ‘맨땅에 헤딩’을 해나가는 것과 같이 직접 부딪혀 나가며 제품을 발굴하고 거래를 뚫고 파트너를 찾는 일을 하고 있죠. 지금도 저는 백지에 그림을 그려나가고 지워나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백지는 말 그대로 그림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백지입니다. 거의 다 밑그림이 완성했다하더라도 모두 지우고 다시 백지로 돌아가야 할 때가 많았죠. 저는 그래서 백지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도전에 제약이 없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백지에 그림을 그려나가듯이 더 많은 지역의 제품을 발굴해 전 세계를 ‘지구마을’로 엮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도 그러했듯 누구나 한번쯤은 불안함에 휩싸여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모르는 순간을 경험할 거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이들에게 최 대표는 스스로에게 방황할 시간을 주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여행을 떠나보라는 조언을 건넸다. 
 
“지구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삶이 꼭 정답은 아닙니다. 꼭 이 길을 가야만 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의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멈추면 불안하고 뒤처지는 것 같지만 그 여행에서 자신만의 이정표를 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글·사진 | 최성희 기자 ish@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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