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을 사유하다
상태바
사람과 사랑을 사유하다
  • 최성희 기자
  • 승인 2018.11.26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esign my Life | 김혜연 사유주식회사 대표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누구나 카페를 방문하는 동안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생각에 잠기기 마련이다. ‘사람과 사랑을 생각해’를 모토로 2017년 5월 조성된 서울 한남동 카페 사유. 이 의미심장한 문구에는 김혜연 대표의 깊은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을 뜻하는 ‘사유(思惟)’, 그 속에 담긴 삶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김혜연 사유 대표를 만나 그의 ‘사유’를 들어봤다.
 
사유는 2014년 말부터 2년 반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친 후 탄생한 복합문화공간이다. 평소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걸 좋아했던 김혜연 대표는 좋아하는 갤러리에 방문해 멋진 작품 옆에서 커피를 마실 때면 행복함을 느꼈다. 이에 그는 많은 사람이 예술적인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사유를 구상했고, 계획을 실천으로 옮겼다. 
 
“예술작품이 있는 곳에서 커피를 마실 때 느끼는 기분을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저 자신도 어떠한 대상이든 그것을 사랑하는 힘을 키워 나가며 성장해 가는 사람입니다. 그를 통해 얻는 긍정적인 가치를 사유라는 ‘공간’에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죠.”
 
김 대표는 커피를 팔든, 옷을 팔든, 물건 이상의 보이지 않는 가치가 함께 오고가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공간 이름이 ‘사유’이듯, 대상을 사유하고 사랑하며 긍정적인 가치를 교환하고자 한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
 
“‘사람과 사랑을 생각해’라는 말에서 사람, 사랑, 생각 이 세 단어는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를 요약해서 담고 있습니다. 생각의 대상이 되는 사람과 사랑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과 대별되는 가치로 물질적인 것을 들 수 있죠. 요즘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사람이 배제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 다음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과 대별되는 것은 일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일에서도 행복이 오지만, 일에만 빠져 살면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거나 인간관계를 끊게 되는 경우가 흔하지요.”
 
이는 사람과 사랑이라는 대상이 우선순위에서 배제된 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데 대한 일종의 비판이다. 김 대표는 물질보다는 사람이, 일보다는 사랑의 가치가 조금이나마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과거의 저야말로 일에 빠져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사람과 사랑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모른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유아교육 사업을 운영하며 사업은 잘 됐지만 내면에서는 항상 불안하고 쫓기는 느낌이 있었죠.” 
 
정신없이 일에 매달리던 그는 어느 날 잘되던 사업을 접었다. 하던 일을 멈춘 그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일을 그만둔 뒤부터 2014년까지 12년간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저는 본래 한쪽 귀에 문제를 안고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을 믿는 일,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일, 저 자신을 방어하는 일과 같은 게 힘들었어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앞만 보고 살다가 불현듯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나니 그동안 등한시하고 살았던 마음이 버티지 못한 거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울증이 찾아온 지 5년 후에는 조울증이 뒤따라와 그를 괴롭혔다. 
 
“삶 자체가 힘들었어요.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제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기진 세월을 보냈어요. 시련을 마주하고 극복할 힘이 없었죠.” 
 
우울증과 조울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던 당시, 그는 인생의 멘토를 만나게 된다. 김 대표의 인생멘토는 바로 그룹 동물원의 멤버였던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2012년부터 김창기 선생님을 만나 전문적인 상담을 받기 시작했어요. 무기력하고 용기가 없던 제가 생각의 전환을 하고 부정적인 감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당시가 제 인생의 가치관 자체가 바뀌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어요.”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
김 대표는 부정적인 감정을 떨치고 어떠한 대상이든 그것을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던 그였지만, 스스로의 힘을 키우기 위해 그는 상담을 하는 순간 누구보다 열심히 상담에 집중했다고. 
 
“상담기간에는 삶의 본질적인 주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했어요. 거기에 저의 생각을 덧붙여 나가는 작업을 했어요. 어느 날 하루는 제가 선생님께 질문했어요. ‘선생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그 질문에 선생님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서 온다’고 대답하셨죠. 저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힘이라고 할 때에는 권력이라든가, 물질이라든가 하는 단어가 나올 줄 알았기 때문이죠. 그때부터 사랑이라는 가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는 2년이 넘는 상담기간 끝에 난치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경쟁에 치여 ‘나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죠. 저는 ‘내가 누구인지’, ‘시련에 대한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피나는 과정을 거쳐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그는 ‘사랑, 자존감, 화’와 같은 심리적인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깨달음 뒤에 그가 내다본 우리 사회는 심리적인 가치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무감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소리를 치고 화를 냅니다. 그리고 상대를 ‘너는 나쁘고 못 났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낙인찍기도 합니다. 그것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도 모른 채로 말입니다. 상담을 통해 제가 느낀 것은 화를 내는 행위는 비난이자 공격이며 신뢰를 잃는 행위입니다.”
 
치열한 투병을 끝낸 후, 대상을 사랑하는 능력을 키워 나가야겠다고 다짐한 그는 생각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사유’를 설립했고 공간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꾸몄다. 공간을 둘러보다 보니 주변에 음료 컵 홀더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컵 홀더에는 ‘사랑’이라는 글자 아래에 ‘따뜻함, 민감성, 관대함, 일관성’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흔히들 ‘사랑’이라는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속성이 무엇인지는 모르죠.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회적 문제가 생깁니다. 먼저 따뜻함이라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온기를 전해주는 것이죠. 민감성이라는 것은 대상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아파 보인다. 괜찮은가?’, ‘이러한 면이 달라졌다’, ‘좋아졌다’와 같은 말로 반응해 주는 겁니다. 관대함이란 타인의 허점을 포용하고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고, 일관성이란 화를 냈다가 사랑을 주었다가 하면서 혼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늘 사랑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김 대표는 사랑의 속성을 음료 홀더에까지 담아내며 일종의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사유 공간 곳곳을 꾸민 그림과 텍스트, 그리고 인테리어 요소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는 셈이다. 
 
 
‘성찰’하는 시간의 소중함
시련을 마주하고 극복한 그는 이제 명확한 가치관을 갖게 됐다. 
 
“저 역시 우울증을 앓는 상황에서는 생각을 지속하지 못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했죠. 그러다 사람, 사랑, 생각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면서 인생의 큰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성숙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생각을 실천하고, 삶의 순간에서 결정을 하고, 생각이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과 사랑, 그리고 생각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인생의 순간마다 이 가치들을 우선시하며 사유라는 공간을 통해 이를 실천해 나가고 있다. 
 
“먼저, 카페 공간을 찾는 모든 이들이 정신적인 가치를 사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사유에는 음식, 음료, 인테리어부터 미디어아트 작품까지, 사유를 돕는 장치들을 마련했어요. 앞으로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인식개선 캠페인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혹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신과 병원을 ‘혐오기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죠. 그래서 환자와 보호자가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를 표면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사유와 함께 일할 사람을 채용할 때에도 생각을 함께 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현재 사유에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가 함께 일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맞춰나가야 했죠. 처음에는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이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점차 서로 마음을 맞춰나갔죠. 사람을 채용할 때에는 다른 조건보다 그 인품을 먼저 봅니다. 다시 말해 ‘사람과 사랑을 생각해’라는 말에 담긴 가치관을 이해하고 이를 함께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봅니다.”
 
사유가 중요시하는 가치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면 고쳐 나가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현대인들은 남녀노소를 떠나 스마트폰에 빠져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현 세태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저 역시 스마트폰이 있지만, 저녁에 퇴근할 때나 주말에는 되도록 집에 가져가지 않으려고 해요.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미래의 인재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단편적인 정보에 빠져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조언했다. 
 
“저 역시도 때로는 생각의 여유가 없을 때가 있죠. 그런데 여유가 없는 때일수록 더더욱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기를 쓴다든지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본인의 내면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해 보세요. 생각은 스스로에 대해 잘 알게 해주고, 세상이 주는 시련에서 나를 지켜낼 수 있게 해주는 무기입니다. 또한, 생각을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어 주죠. ‘사유’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작은 기적’을 일으켜 보는 것은 어떨까요?” 
 
글·사진 | 최성희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