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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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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호] 승인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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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세현 이미지 컨설턴트
김경호이미지메이킹센터 이미지코치
교육법인 한국이미지경영교육협회 전임교수
한국이미지경영학회 정회원
callmejohns@naver.com

무아지경에 빠져본 적 있나요?
얼마 전 TV에서 짜릿한 당구 명승부전을 방송했다. 베트남에서 열렸던 호치민 3쿠션 월드컵 결승전이었는데 쿠드롱이나 브롬달 등 세계적인 선수를 제치고 올라온 베트남 선수끼리의 결승전이었다. 필자는 베트남 선수들끼리의 결승전이기에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어느 정도 작용하겠거니 하여 별 기대 없이 시청하였다. 경기는 응고딘 나이 선수가 초반부터 에버리지 6 이상을 치며 29:9로 20점 이상을 앞서가다가 33:34, 33:38, 39:38로 엎치락뒤치락 초 접전을 벌이더니 결국 39:40의 한 점 차로 트란 구에치엔 선수가 역전승하였다. 경기장에 있었더라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팽팽한 경기력에 두 선수 모두에게 찬사를 보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경기를 보는 내내 해설자의 해설이 인상적이었다. 두 선수가 ‘무아지경’이란 것이다. 당구공과 당구대만 보이고 관중의 환호 소리가 단지 ‘웅웅’소리로만 들리는 무아지경에 두 선수가 빠졌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점에 흥미를 느꼈다. 필자 역시 1989년부터 오랫동안 당구를 쳐 왔으나 단 한 번도 무아지경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주위의 당구 좀치는 고수에게 당구를 치면서 무아지경에 빠진 경험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두어 번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하였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는 고수고 필자는 하수였구나.

필자는 ‘어떻게 살 것이냐?’라는 명제에 오랜 기간 고민 중이다. 그 중에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이냐도 포함된다. 40대 후반인 필자의 주위에는 이른바 성공한 인물이 몇몇 있다. 경제적 자유를 가지며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2세도 잘 키워 놨고 가정이 편안한 무엇 하나 빠질 게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반 이상은 소위 행복하지 않다. 특히 직업에서 그렇다. 이렇게 달려온 인생이 남들이 보기엔 선망의 대상 일지언정 본인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며 가슴 뛰는 젊은 날의 열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는 주위의 진심 어린 권고로 편안하고 윤택한 삶을 보장한다는 직업을 택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전문직업과 풍부한 경륜을 가지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단다. 심지어 이제 와서 보니 그 선망의 직업조차 다른 직업을 택해야 했던 건 아닌지 후회된다고도 한다. 무엇이 이들을 행복하지 않게 하는 것일까?


자신만의 영역에서 무아지경으로 살아보자
필자가 대학에 진학할 당시에는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야 할 때 학교를 선택했다. 보다 나은 학교에 진학해야 먼저 다녀간 선배가 끌어주고 본인이나 가정의 체면도 선다는 것이다. 동양적인 인맥의 정서가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러했다. 지금은 문제가 되지만 무슨 ‘피아’라고 일컬어지는 그들만의 리그는 이런 부산물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며 마당발 타령하던 시대였다.

그러던 중 이제는 세상이 변했다. 그것은 비리로 표현되고 공정하지 못한 처사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가만히 보면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늘 먹을것 걱정하고 살았다. 대부분의 정서가 생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회적으로 에이브러햄 매슬로 박사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에 머물렀다. 그러다 보니 최소의 생계가 보장된 ‘그들만의 리그’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공부해라’,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져라’라는 말을 했던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우리 민족은 근면 성실함으로 몇 단계를 뛰어넘어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비로소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의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옳았지만 달라진 현재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행복하지 못한 그들은 이런 시대의 희생양이다. 한편 사회적 성공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행복을 꾸려가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늘 뭔가에 몰두하고 자기 분야에 대해 자신감이 넘치며 주위 사람마저 기분 좋게 하는 에너지를 전파한다. 때로는 지금의 그 모습을 만들기 위해 들였던 노고가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이미지 메이킹에서 말하는 ‘참자아’를 찾은 사람일 것이다. 필자는 그를 꿈을 꾸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다. 그들은 사회적 성공의 잣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에서 소위 무아지경으로 살아간다. 앞서 언급한 당구선수들처럼.

꿈을 꾸는 사람은 행복하다. 비록 시련이 닥치더라도 그들은 일어난다. 마치 살아갈 이유를 알아낸 존재로서 그들은 삶을 연명하지 않고 삶을 개척해 나간다. 행여 경제적 형편이 넉넉지 않아도 언젠가 이루어질 자신의 모습에 그들은 힘을 낸다. 삶을 즐기는 것이다.
 

 

즐기는 사람을 노력하는 사람이 못 따라간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의 꿈을 찾을 것인가? 필자가 아는 가장 명료한 방법은 ‘내가 무엇을 하면 무아지경에 이르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 순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다. 당연히 그동안 타인과의 공간 시간과는 무관한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누구나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면 그런 경험들을 찾아낼 수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잡생각이 들지 않으며 오직 그 일에 집중하고 골몰히 생각에 잠기며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찾아낸다. 당연히 어려움에 닥치지만 무아지경은 그 힘든 과정을 헤쳐 나아갈 에너지를 선사해준다. 그리하여 보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게 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난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다.

비록 그 일이 하찮은 일이라도 상관없다. 4차 산업이란 달라진 세상은 그 보잘 것 없는 탤런트에 반드시 보답을 한다. 직업은 다양해지고 산업은 분업화되며 사회적 욕구는 더욱 섬세함을 요구한다. 예전에 우리는 당구장에 출입하는 자체를 방황하는 모습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당당한 스포츠이며 훌륭한 직업이다. 막노동이나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도 기술 좋은 사람은 모두 전문직이다. 요즘 전문직의 대명사로 불리는 의사, 변호사, 약사의 약 30%가 폐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새 시절이 바뀌어 여간 잘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다. 이 직업들도 더 이상 안정된 직종이 아니며 일생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한때 우리는 평생을 보장해줄 직업을 찾았다. 또한 사회적 시선에도 흔들렸다. 보다 우러러볼 수 있는 직종이나 연봉 많은 직장을 선호했다. 자신의 탤런트보다 사회적 잣대에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었다. 그때는 그것이 옳았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즐기는 사람을 노력하는 사람이 못 따라간다. 노력 정도의 실력으로는 경쟁에 뒤처지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는 다르다. 내가 살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일, 그것은 나를 그 어려움에서 발전시켜주고 자아실현을 해주며 결국에는 아무도 따라 올 수 없는 나만의 세계를 가지게 한다. 누구나 자신의 탤런트로 살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진다. 그것을 찾고 못 찾고는 개개인의 선택이다. 그래서 인생은 선택이란 말도 나왔고, 성공도 행복도 선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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