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미국 실리콘밸리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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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미국 실리콘밸리로 가다
  • 최성희 기자
  • 승인 2018.12.24 10: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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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my Life | 채민철 스코어데이터 시니어프론트엔드 엔지니어

해외취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오고가는 ‘개발자 해외취업’ 페이스북 그룹(www.facebook.com/groups/helpdev)을 운영하는 채민철 씨. 그는 2012년 미국 땅을 밟았고 이듬해 취업에 성공해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시니어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그의 본래 전공은 건축공학으로 미국 취업에 필수라는 미국 석사학위를 지닌 것도 아니다. <월간 리크루트>는 지난 10월 10일 ‘서울-실리콘밸리 IT 커리어 포럼’ 취업세미나에 연사로 참여한 그의 실리콘밸리 개척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0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서울-실리콘밸리 IT 커리어 포럼’ 취업세미나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채민철 씨 모습

채민철 씨는 2012년 나이 마흔에 한국을 떠났다. 그는 LG CNS에서 부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전문가로서 인정받았으며 팀을 리딩하는 위치에 있었다. 한정적인 예산 안에서 조성된 치열한 경쟁 상황에 그는 회의감을 느끼고 미국 취업을 결심하게 되었다. 2010년대 들어 정부 법률이 바뀌며 남성 육아휴직이 확산되었고, 2012년 그는 과감히 1년 육아휴직을 내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이듬해 가을 이직하는데 성공했다.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국경을 넘어 해외취업에 성공한 그는 현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IT 기업에서 면접 제안을 받기도 하고 리크루팅 행사에 초대를 받기도 한다. 그는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며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개발자가 일하기 좋은 환경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발자로 일하게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여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개발자가 되기까지

그는 어릴 적부터 공부에는 별반 관심이 없었다. 턱걸이(?)로 대학에 들어가서도 전공 공부보다는 다른 것에 눈을 돌렸다.

“저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영어시험에서 거의 낙제 점수를 받아 방과후에 남아 특별반 관리를 받은 적도 있어요. 인문계 고등학교도 겨우 들어갔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성적을 조금씩 올려 간신히 영남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본래 음악을 좋아해 가수가 되고 싶어 교내 가요제에 나가 상도 타고 자작곡으로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도 했어요. 물론 예선에서 탈락했지만요(웃음).”
건축공학과 출신이 군에 입대하면 대부분 공병대로 차출될 것이라는 선배들의 말을 듣고 그는 타자병이나 전산병 보직을 받기 위해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공병대로 차출되지 않기 위해 컴퓨터 공부에 매진했죠. 그 결과 운 좋게 워드병, 병과로는 정훈병으로 차출됐고 사단 전산병들과 함께 내무반 생활을 했습니다. 동기 중에는 프로그래밍을 하는 친구가 있어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죠. 복학하고 나니 인터넷이 등장했고 본격적으로 네트워크 공부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전공 공부보다는 컴퓨터 공부에 흥미를 느꼈죠.”

그는 복학 후 컴퓨터 공부를 위해 타 학과 IT 관련 수업을 수강했고 직장인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기도 했다. 나아가 건축기사 1급 자격증과 더불어 MCSE(Microsoft Certified System Engineer), 사무자동화기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순탄할 것 같은 그의 앞길에 어둠이 드리웠다. 그는 90학번으로 일명 ‘IMF세대’였던 것.
“건축과 IT가 융합된 ‘Intelligent Building System’ 분야 전공으로 유학을 떠나려 마음을 먹었었죠. 그런데 제가 졸업을 하던 1998년도에 IMF가 터지면서 유학에 대한 꿈을 포기해야 했어요. 취업을 하려고 보니 건설사들은 모두 문을 닫았죠. 평소 취미로 삼던 IT강사 아르바이트 경력을 살려 정부지원 직업전문학교 IT 교육 교사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IT 분야 교사가 된 그는 보다 전문적인 강의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쪽으로 커리어를 키웠다.

“잠시 대학 강사 신분으로 강의하기도 했죠. 대학 IT 강사의 불투명한 미래를 보고 상경해 2004년부터 해군의 지위지원시스템, 삼성전자 글로벌 관련 프로젝트 일을 하며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아내를 만나게 됐고 결혼을 하려면 좋은 직장, 정규직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토익 시험을 보고 취업활동을 시작했죠.”

그렇게 2006년 LG CNS에 입사한 그는 웹 개발자로 일하게 됐다. 입사 2년차를 넘긴 시기에 참여한 LG계열사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레거시 시스템 환경의 유지와 관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등장했다. 그는 UI(User Interface)를 웹 표준으로 만들고 이를 관리한다면 보다 수월할 것이라 생각해 프론트엔드 개발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는 ‘프론트엔드 개발자’ 직군에 대한 개념이 없던 때였고 개발자는 모두가 ‘Full Stack’개발자였죠. 그때 웹 표준 기술이 필요한 또 다른 프로젝트를 만났고 정보기술연구소에 들어가 전사용 자바스크립트 UI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내에서 부책임연구원이라는 직책으로 일하며 웹 UI 기술 분야 전문가로서 인정받았다. 그는 업무 외에도 직접 사내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운영하고 세미나도 여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낸 끝에 2011년에는 LG CNS 최우수 신지식인상을 받기도 했다.

LG CNS 최우수 신지식인상을 수상한 모습

 

미국 취업에 도전하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취업비자는 물론 해외 석사학위는 필수적이다.

“일반적인 전문직 취업비자인 H1 비자가 있어야 미국 내에서 ‘신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죠. 이 비자는 그 수가 제한되어 있어 기업에서 입사 제안을 받더라도 10명 중 7명은 이 비자를 받지 못해 미국을 떠나죠. 그런데 만약 석사과정을 밟는다면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비자인 CPT, 졸업 후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OPT를 제안받을 수 있죠. 경력이 없는 신입의 경우는 더더욱 좋은 대학의 학위가 필수입니다.”

채 엔지니어는 경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경력직 취업에 성공한 케이스다. 그도 어렵게 H1 비자를 받았다. 처음 입사한 곳인 Tide Mark사는 그의 H1 비자가 발급되는 기간인 7개월을 기다려줬다.

“어렵게 인터뷰를 봐서 합격을 하더라도 비자가 없어 탈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에서 반년 간 어학실력을 키운 후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죠. 100곳 넘는 곳에 서류지원을 했고 처음 전화 인터뷰를 할 때에는 영어가 들리지 않아 막막했었죠. 그런데 인터뷰를 보지 않으면 탈락하고 한국에 돌아가야 했으니 끊임없이 전화인터뷰에 도전하며 그 패턴을 익혔고 취업에 성공하게 되었죠. 제가 미국에서 처음 몸 담았던 회사는 당장 실무에 투입하기 위해 경력자 채용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긴 기간 소득 없이 지낼 저의 상황을 걱정해 주며 비자발급을 기다려 주었죠.”

그는 좋은 회사를 만났다고 이야기하며 미국 취업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비자를 받아 신분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발자 직군의 경우 이직이 잦아 한 회사에서 1~2년 정도면 이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가 이전 회사에서 7년간 일했다고 밝히자 동료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처음 제가 취업했던 Tide Mark사는 유럽에서 이민 와서 자수성가한 CEO가 운영하는 스타트업이었죠. 당시 150여 명의 직원들 대부분은 유럽 출신의 백인들이었고 한국 출신은 제가 유일했습니다.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회사였죠. 입사 후 한 달간을 업무를 파악하고 적응하기가 어려웠어요. 아무도 일을 가르쳐 주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각종 문서와 코드 분석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는 미국에 개발자가 취업하는 데 있어 이직 횟수는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입은 학력, 경력은 직무관련 경력을 기준으로 채용한다는 것.

“신입사원은 학력, 경력사원은 경력이 중요합니다.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신입의 경우 기본적인 지식과 학력을 보고 뽑으며, 경력자의 경우 회사에서 필요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서류에서 우선적으로 봅니다. 어떤 퀄리티 있는 경력을 쌓았는지 그리고 그 경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상당히 유리합니다. 특히 SW 개발자의 경우 전공·학력·근무 회사와 관계없이 증명 가능한 경력이 있다면 취업 시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는 미국 현지인들도 인터뷰 준비에 최소 3개월을 투자할 만큼 인터뷰 단계가 까다롭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보통 3단계로 진행되는데 마지막 단계는 일대일 심층·기술·인성 인터뷰로 보통 4시간 이상 진행된다. 면접에서 기본정보부터 경력의 세세한 사항까지 꼼꼼하게 체크하기 때문에 여기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공부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연말 파티에 참석한 채민철 씨

개발자 해외취업 페이스북 페이지

취업에 어려움 겪는 개발자들에 도움 주고자

그는 미국 취업에 도전할 당시의 막막함을 기억하고 있다. 취업비자는 어떻게 받는지, 인터뷰는 어떻게 보는지 등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녔지만 어렵게 얻은 답변은 부정적인 코멘트뿐이었다.

“미국 현지에서 미국 취업준비를 하는 모임에 나가도 대부분 미국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뿐이었죠. 국내 학사학위 출신인 제가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미국에 취업하고자 한다고 하니 ‘대단하다’, ‘용감하다’, ‘무모하다’ 등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나하나 어렵게 정보를 얻고 준비해 나갔던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고마워서 미국 취업 후 2013년 ‘개발자 해외취업’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해외에 취업한 또는 취업을 원하는 많은 이들이 이 그룹 페이지를 통해 실질적인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중이다.

“이 공간을 통해 제가 처음 미국 취업에 뛰어들 당시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었죠. 회원관리를 통해 좋은 분위기 속에서 많은 정보가 오고갈 수 있도록 노력해 온 끝에 지금은 거의 9천 명이 가입한 페이지로 성장했어요. 몇몇 회원 분들은 실제로 그룹 페이지를 통해 도움을 받아 취업을 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해 뿌듯할 때도 많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룹 페이지에 방문해 과거 글부터 쭉 읽어보길 권합니다. 현직에 있는 경험자분들로부터 생생한 조언도 얻을 수 있죠.” 

평범한 배경을 지녔지만 해외에서 개발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는 그에게 취업준비생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기본적으로 일단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정보를 수집하고, 그에 따른 필요한 공부를 하고,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도록 자기개발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일단 작은 회사에서 작은 일이라도 시작해 남들에게 인정받는 질이 높은 경력을 쌓고, 조금씩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표는 트렌드에 따라서 자주 변하는 것이 맞지만 커리어의 큰 줄기는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도 IT강사, 웹 개발자, 웹 아키텍트, 프론트 엔지니어 등을 거쳤지만 웹 개발이라는 큰 줄기는 유지해왔죠.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 셀럽들의 SNS를 팔로잉하면 유명한 사람들을 거의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세계적 컨퍼런스는 꼭 챙겨 보는 것도 좋습니다. 요즘은 유튜브에 컨퍼런스 내용이 항상 올라오는데 해당 전문 분야와 함께 트렌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이를 꼭 챙겨보고 익히시길 바랍니다.”
해외취업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입사 후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과 다른 직장문화라면 회의 시 지위고하를 떠나 의견이 자유롭게 교환된다는 점입니다. 신입직원이 이미 경력자가 경험한 내용을 이야기하더라도 이를 막지 않고 경청한 후 경력자의 경험을 차근히 설명하고 이해시킵니다. 또한, 회사의 성장은 개인의 성장과도 맥을 같이 한다는 점입니다. 비상장사는 주식 옵션을 4년간 매년 직원에게 나누어 줍니다. 회사가 성장하면 직원들도 큰 돈을 벌 수 있죠.”

미국에서 개발자 근무환경은 한국의 그것과 다르다. 회사보다는 가정이 우선되는 문화로 자녀의 학교 행사가 있다면 자택근무를 하거나 휴가를 내어 참여할 수 있다. 자녀의 등교를 위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거나 자녀가 등교하지 않는 날에는 회사에 함께 출근해 시간을 보내고 퇴근해도 된다. 이처럼 개발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일하기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그에게 앞으로의 포부를 물어봤다.

회사에 함께 출근한 채민철 씨의 자녀들 모습, 가끔 아이들이 학교를 쉬는 날에는 회사에 출근해서 옆에서 공부하고, 같이 점심 먹고, 같이 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제가 생각하는 프로는 프로 권투선수처럼 돈을 떠나서 일단 링 위에 올라가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주도적으로 일하고 제 업무를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 항상 노력합니다. 회사 안팎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이직하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생활을 계속 이어갈 예정입니다. 또한, 이렇게 쌓은 경험으로 한국 IT 생태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찾음과 동시에 해외취업 준비생들에게 저의 경험을 계속해서 나누어 주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가장 중요한 가족,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계속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최우선으로 가족을 생각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글 | 최성희 기자 ish@hkrecruit.co.kr
사진 | 채민철 씨(www.facebook.com/groups/helpd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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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정원 2018-12-27 10:47:38
인상적인 글이네요...무엇보다도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일관성있게 목표를 향햐 진취적인 활동에 감동받았습니다. 늘 건승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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