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가치’를 만들어 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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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가치’를 만들어 가는 일
  • 최성희 기자
  • 승인 2019.02.25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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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My Life | 송명근 올리브유니온㈜ 대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표방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웨어러블 스마트기기를 생산하는 올리브유니온㈜은 청년창업가 송명근 대표가 2016년 6월 세운 기업이다. <월간 리크루트>는 2017년 7월호에서 그를 만나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슬로건을 견지하며 회사와 함께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그의 삶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고 있는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봤다.

송명근 올리브유니온㈜ 대표의 이력은 좀 특이하다. 그는 소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진학한다는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녔다. 그는 중·고등학교 재학 당시 영어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 교과서 위주의 영어 공부를 하며 자신감이 있었던 그였지만 미국 유학에서는 그가 이제껏 공부했던 것들이 통하지 않았다.

“중학교에서 입시교육을 받으며 그게 옳다고 생각했고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죠. 그러다 고교 재학 중 ‘점수만들기’에만 집중하는 우리나라 입시교육이 답답하게 느껴졌고, 또 현지에서 외국어 공부를 하고픈 마음에 미국 고등학교로 유학길에 올랐어요. 처음 미국을 갔을 때, 처음들은 질문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선생님의 질문은 ’What is your favorite color?’였어요. 저는 ’Yes’라고 대답했습니다. 교과서 위주로 영어 공부를 하며 항상 90점 이상의 성적을 받아왔지만 막상 미국 현지에서 단 한마디도 유창하게 하지 못했던 게 충격으로 다가왔죠. 이를 계기로 2년의 유학기간 동안 회화와 학업에 있어 부족한 점을 보충하려고 집중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정답은 여러 갈래!
미국 고등학교에서의 경험은 한국식 입시교육에 물들어 있던 송 대표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가 확연히 다른 그 곳에서 느낀 바가 컸어요. 미국 청소년들은 10대에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마칩니다. 각자가 흥미를 느끼는 수업을 선택해 시간표를 짤 수 있고 직접 무언가를 해보는 실습도 많았습니다. 자유롭게 방과후활동이나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 진학에 그러한 활동들이 인정되었죠. 이와 같이 미국은 우리나라와 비교해 볼 때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보다 넓었어요. 학생 누구나 자신의 선택권을 가지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삶의 방향을 계획할 수 있죠. 이는 학업의 능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무조건 명문대에 가야한다거나 공부를 잘해야 한다거나와 같이 정해진 길을 따르지 않아요. 똑똑하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 나름의 판단을 내리고 대학에 가지 않고 일을 먼저 경험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는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강조한 것은 ‘정답은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송 대표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정답은 여러 갈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라면 자기 나름의 선택을 하더라도 거기에 대한 주변의 시선을 견뎌야 합니다. 만약 어느 학생이 어느 날 공부를 하지 않고 랩을 하겠다고 나섰다고 가정하면 주변에서는 ‘좋은 성적에 어느 대학, 무슨 과에 가서 잘 살 수 있을텐데 굳이 랩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며 부정적인 시선을 보냅니다. 사회 전반에 틀에 박힌 사고가 편견으로 자리잡고 있는 거죠.”

반면, 송 대표의 부모님은 늘 그의 선택을 존중해 줬다.

“저희 부모님은 언제나 제가 결정하고 판단한 일에 대해 ‘한번 해봐’라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예를 들면 제가 중학교 때 주변에 만화를 좋아하는 친구의 영향을 받아 만화 그리기 학원에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었죠. 그렇게 엉뚱한 선택을 하더라도 부모님께서는 ‘한번 다녀봐’라고 말씀하시며 저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원해 주셨어요. 무언가를 시도해 보고 그게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면 경험을 해보게 하는 것이죠.”

그의 성향을 잘 알았던 부모님은 삼성디자인교육원 사디 입학을 권유했다. 사디에 입학한 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2년의 유학에서 돌아온 후 한국에서 졸업을 맞이하게 됐어요. 그때 한 학년이 430명 정도였는데 외국어고등학교라 그런지 서울대 50명, 연세대 150명, 고려대 150명, 지방대 의대 등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했어요. 그 해가 입시 성과가 좋은 때라 그런지 학교에서 플래카드를 내 걸기도 했죠. 저도 만약 그러한 길에 합류했다면 저 역시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을 테죠. 그맘때는 ‘학교 타이틀’이 각자의 자신감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나이라 저 역시 사디를 선택하면서 불안감이 있던 건 사실입니다.”

치열했던 사디에서의 생활
20살 청년이었던 그는 과감히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사디 산업디자인과에 입학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는 오히려 더 열심히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현업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이 강사로 초빙되어 수업을 가르치니 어린 나이의 저는 새로운 것을 흡수하기에 바빴습니다. 사디는 3년제로 운영됐는데 다양한 배경을 지닌 동급생들과 치열하게 경쟁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냐하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집에도 안 가고 교육원에서 숙식을 하기 시작했죠. 그러한 생활이 반복되자 풍치에 걸리는가 하면 영양실조까지 걸렸어요. 자고 일어나면 입에 피가 고여서 선지처럼 올라올 정도였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병원에 가니 의사선생님이 영양실조라고 하셨죠. 그때 들었던 생각이 ‘오래달리기를 하려면 건강관리도 해야 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디에 다닐 때 가장 큰 추억은 ‘입안의 선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웃음).”

건강을 잃을 정도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그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컨셉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최선을 다한 덕분에 2008년 수상을 할 수 있었죠. 그 순간이 저에게는 터닝포인트였습니다. 당시 출품했던 작품은 열쇠 프로젝트로 열쇠를 잠글 때 반 칸 더 ‘또각’ 돌아가는 매커니즘으로 잠겼는지 안 잠겼는지를 보여주는 디자인이었죠. 당시 주변인들은 ‘누가 그걸 쓸 수 있겠느냐’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 노력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사디에서 실무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실무자 못지않은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사디에 다니며 삼성전자의 실무에 계신 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태블릿 PC가 나오기 직전일 때라 무선사업부에서 교육용 태블릿 PC를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일을 경험했죠. 학생 인턴 형식으로 실습을 하며 제품의 구상부터 생산 실현 단계까지 현업의 전반을 일찍 경험한 셈이죠. 당시 배웠던 캐드는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디에 다니며 어린 나이에 ‘머리가 커져 버렸던’ 것이 탈이었죠(웃음).”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하다
현업을 일찍 경험한 것이 탈이 되었다는 그의 말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 편입할 당시 사디에서의 2년 과정을 모두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2년간 사디에서 실무를 익히고 삼성전자에서도 일을 했다보니 막상 미국 대학에 편입한 이후에는 배우는 내용들이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라 저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보다 더 발전적인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자 건축과로 전과를 결정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산업디자인과 건축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연계성을 지닌다.

“학업에 대한 욕심이 생겨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이 두 개의 학문은 별개로 생각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연계점이 많습니다. 설계를 한다는 점, 캐드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실제로 디자인이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성을 위해 고안된다는 점에서도 연관성이 있죠. 늘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는 저의 지향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제가 지향했던 것은 ‘사람’ 그 자체였으니까요. 이러한 저의 성향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로 이어지게 되었죠.”

엔지니어가 아닌 그가 어떻게 보청기 사업에 뛰어들게 된 걸까. 그는 미국 대학에서 공부할 때 그를 돌봐주었던 친척분이 보청기 때문에 고생하던 것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분은 한달 간 검사를 받은 뒤 600만 원이나 들여서 보청기를 샀는데, 쓰기 불편하셔서 사용을 하루 만에 포기하셨습니다. 보청기 자체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큰 데다가 갑작스러운 소리 변화에 거부감이 생겨 적응단계로 넘어가지 못하시고는 안 들리는 대로 살겠다고 체념하셨던 거죠. 이처럼 보청기는 비싸고 불편하며 모양도 예쁘지 않습니다. 앞이 흐릿하면 안경을 쓰지만, 귀가 잘 안 들리면 들리는 척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력이 나쁜 것과 청력이 나쁜 것은 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할까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제가 도움을 받은 만큼 가족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생각이 곧 창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작업 중인 송명근 대표

그는 국방의 의무를 지기 위해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군 생활을 하며 창업에 대한 구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사디에 다니고 미국에 편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며 쉼 없이 달리다가 2013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동안의 저보다는 군인이 되어 머리를 비울 기회가 생긴 거죠. 군대 안에서는 생각보다 정보를 받아들일 채널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군에 신문 구독을 요청해서 신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창업 지원 사업을 만들었고 신문에 그러한 정보들이 많더라고요. 그걸 보니 한국이 생각보다 창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을 느꼈죠. 휴가 나올 때마다 아시는 분들을 찾아가서 의견을 구하기도 했고, 전역하고 1년 뒤 바로 창업을 실행했습니다.”

창업도 분야가 많지만 왜 사회적 가치를 좇는 일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인 일이 수익이 나지 않을 거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에서 만든 제품이라고 하면 품질이 좋지 않을 거라는 시선도 있죠. 그런데 저는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지닌 일이라면 더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브랜드인 TOMS가 전 세계적으로 한창 인기였었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브랜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인 기업, 모두를 위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기술로 만든 제품이 과연 실제로 생산되어 판매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실험해 보고자 했다.

“처음에는 1인 창조기업을 지원하는 센터에서 책상 하나를 놓고 시작했어요. 상품성에 대한 고민으로 2016년 11월 미국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인디고고에서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내가 상상을 하고 실현시킨 제품이 팔릴까’라는 생각에서 검증을 시도했습니다. 바다 건너의 젊은 창업자가 만든 제품에 사람들이 신뢰를 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고요. 게다가 저렴하다고 하면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는 경향도 있으니까요. ‘이게 팔릴까’라는 호기심에서 시도한 끝에 약 한달 만에 펀딩 목표액을 거뜬히 초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제품력을 검증받은 올리브유니온은 2018년 5월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우수창업팀 대상, 11월에는 창업콘서트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그 진가를 발휘했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내비쳤다.

“과거 기술은 부를 상징했습니다. 부잣집에 가야지만 컬러 TV를 볼 수 있었고, 물 건너온 휴대용 카세트가 있어야만 길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술은 양극화를 심화시켰죠. 반면 현대의 기술은 누구나 기술과 정보를 사용하고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이 기술로 불평등한 세상을 어떻게 더 평등하게 만들 수 있을지,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어떠한 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올리브유니온의 슬로건을 계속해서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올리브유니온 구성원을 채용할 때에도 학벌이나 스펙보다는 사회적 미션을 공유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고려한다고.

올리브유니온의 디자인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표방한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지식보다 지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바깥세상에 가능을 열어두고 외부 전문가와 지식을 활용해 발상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지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에 집중하면서 어떤 전문가가 필요한지, 어떤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길이 보여야 할 것입니다. 저를 비롯한 올리브유니온 구성원은 안경처럼 보청기가 자연스러워지는 세상을 만들어 갈 겁니다. 안경이 패션 아이템인 것처럼, 예쁜 보청기도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습니다. 가격과 불편한 시선 때문에 듣지 못하는 데도 참고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그는 예비 창업자들에 대한 조언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직접 전 과정을 경험하고 부딪쳐 가면서 자체기술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얻은 독자적인 기술력이 스타트업 종사자분들의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 한 대학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학생들에게 해준 이야기는 젊은 시기에 창업하라는 거였습니다. 실패를 해도 그에 대한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죠. 꼭 거창하고 멋있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맞다고 판단하는 일이 있다면 이를 시도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대학에 다닐 때 창업을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다른 스펙을 쌓는 것보다 창업을 해보면서 얻는 것들이 많습니다. 돈 버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회사가 유지되고 큰 회사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꼭 사업가가 되지 않더라도 창업을 해보고 실패를 해보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진면모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창업에 뜻이 있다면 지금 바로 행동으로 옮겨 과감히 도전해 보세요!”

글 | 최성희 기자 ish@hkrecruit.co.kr
사진 | 올리브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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