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생을 유예(猶豫)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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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고 역사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생을 유예(猶豫)하지 마세요!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9.07.2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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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란 역사책방 대표

20185월 문을 연 독립서점 영추문 앞 역사책방은 넓고 쾌적한 공간, 모던한 분위기, 여기에 5천여 권 이상의 도서가 빼곡한 서가들과 다채로운 섹션으로 손님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예사롭지 않은 이곳의 주인장은 백영란 대표.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NHN을 거쳐 LG유플러스 입사 후 2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한 이력의 소유자다. 20대 때는 역사를 사랑했던 역사학도였다. 퇴사 후 다시 역사의 품으로 돌아온 그를 만났다. 재미있고 놀라운 사실로 무궁무진한 그의 인생역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서울 통의동 한 골목에 위치한 역사책방은 연중무휴로 주 7일 문이 열려 있다. 유리창 벽 너머로 거대한 책장과 공간 안쪽 깊숙한 곳까지 가득찬 책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이곳의 트레이트마크인 원형 책꽃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는 이는 백영란 대표다.

20185월 문을 연 이후 백 대표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퇴근하며 책방을 책임지고 있다. 이곳은 역사 없는 분야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모토로 역사를 주제로 한 모든 것을 다룬다. 한국사, 서양사는 물론 미술, 과학, 음악, 건축, 소설 등 도서의 종류는 다양하고 서가를 이루는 섹션은 풍부하다.

역사란 개인의 인생을 포함해 시간적 맥락을 가진 모든 분야의 이야기이니까요그의 설명을 들으면 장르 제한 없이 다양한 도서가 있는 모습이 이해가 간다. 그의 말대로 서점을 둘러보면 예술과 역사, 경제와 역사 등 두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든 역사는 일상의 역사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현재 보유 중인 책의 수는 약 5,000여권 정도. 어릴 때부터 다독가이자 대학교 때는 국사학과를 전공할 만큼 역사를 사랑했고 역사에 충실했던 백 대표의 연륜과, 이곳을 찾는 남다른 포스의 손님들의 의견이 섞인 결과다. “미술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오시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국내외 미술사와 관련한 책들로 미술사 섹션을 만들었어요. 여행과 역사는 함께 가는 것이라는 손님의 말씀에 여행 섹션도 구성했고요.”

역사책방에서는 강연도 열린다. 일주일에 1회 이상 열린 역사책방 강연은 2층 다락방이나 1층 카페에서 진행한다. 유시민 작가의 북 토크, 홍순민 교수의 한양도성과 궁궐 이야기 등 고전적인 역사 강연은 기본이고 이은형 교수의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일하는 방법, 경제학자가 들려주는 경제원리, 우병헌의 구글 스토리, 오종남 저자의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등 제한 없이 다양한 주제로 열리는 강연 또한 이곳의 모토에 충실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백영란 대표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다년간의 준비 끝에 꿈에 그리던 책방을 열었다. 위치 선정에만 1년이 넘게 걸렸고 도서 리스트를 구성하는 데도 1년이 걸렸다고. 회사를 다니면서 관리와 운영을 한 경험이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벌인 일이었다.

사실 책방으로 돈을 벌긴 힘들죠. 하지만 직장을 다닐 때부터 퇴사를 하면 책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기도 했고, 제가 좋아하는 역사를 주제로 하고 싶은 재미난 일들을 벌이고 싶었어요.” 얼마 전 역사책방은 1주년을 맞이했다. 백영란 대표는 일종의 로망으로 시작했지만 노동으로 버텨내고 있어요라며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Q.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어요. 문학전집, 한국사 이야기 시리즈, 한국위인전집 등 가리지 않았죠. 중학생 때부터는 용돈을 모아 책을 사서 읽는 게 제일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역사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일종의 민족주의 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친일파 문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의식하고 우리 민족의 정기를 다시 세워야겠다라는 나름의 불타는 의지가 있었죠(웃음). 그래서 한국사를 깊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Q. 대학생 시절의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졸업 후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일단 제가 20대 때 시대상황과 사회적 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있던 때였으니까요. 민주화를 위해 죽어가는 사람들,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높이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학교 선배들은 대학생이 된 것만으로도 죄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죠. ‘이렇게 대학생이 된 것 만도 특권이다. 지식인으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이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고민 끝에 일단 공부를 더 하자고 생각한 거죠.

Q. 서울대 국사학과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UCLA 경제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에서 6년 간 근무하셨고 이후 IT기업을 거치셨어요. LG유플러스에서는 2년 만에 상무로 승진하셨고요.

저는 늘 셜록홈즈보다는 루팡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박사학위를 받고 취업준비를 할 때도 머릿속으로 생각만하고 제 손으로 어떤 결과물을 생산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컸죠. 제가 굉장히 부족한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왜냐면 저는 현장에서 생산을 하면서 돈을 벌어봐야 진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생각으로 다니던 회사를 나와 NHN으로 이직을 했는데 불만족스러웠어요. 온라인 서비스를 잘 만드는 게 목표인 회사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매출이 목표인 LG유플러스로 갔고 제가 해야 하는 일도 그토록 원하던 돈을 버는 생산 현장이었으니 정말 열정적으로 일을 했죠.

Q. 생산 현장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안은 피 튀기는경쟁 사회잖아요. 실제로 경험한 그 사회는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목표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 땀을 흘린다는 건 정말 전혀 다른 세상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늦은 나이에 진짜 세상을 알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매출을 올리기 위한 여러 가지 고군분투, 넘치는 업무량은 물론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컸죠. 하지만 전 스트레스를 일종의 자극으로 생각합니다. 자극이 있어야 반응이 있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진화도 결국 그런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몰입과 열정이 필요한데 그걸 다르게 표현하면 스트레스인 거예요. 동전의 양면 같은 거죠. 그만큼 몰입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도 없을 테지만 그러면 자기 자신도 아무런 발전을 할 수 없겠죠.

Q. 회사에서 얻은 가장 값진 배움은 무엇인가요?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게 된 것이죠. 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밥그릇 싸움은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한다라는 말을 종종 해요. ‘왜 저 사람은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회의 자원은 제한적이고 그 안에서 먹이를 찾기 위한 경쟁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동물로 비교한다면, 모든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경쟁이 없을 수 없겠죠. 그런 상황을 불평하기보단 받아들여야 합니다.

Q. 취업을 위한 스펙 경쟁이라는 표현도 있어요. 이런 최근의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잘못된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신입사원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이 많은데, 면접과 관련해서만 말씀드리자면 스펙을 보지 않아요. 대신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요. 그동안 겪은 경험을 기반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뽑습니다. 예상 질문을 뽑고 미리 대답을 준비해온 지원자들이 정말 많은데 그런 지원자는 심사위원에게 아무런 감동을 줄 수 없어요.

타사와의 경쟁, 부서 안에서의 경쟁 등 목표 달성을 위해 다양한 관계와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회사입니다. 그렇기에 직원을 뽑을 때도 현장에서의 문제해결능력을 봐요. 공부를 잘하거나 스펙이 뛰어나거나 이런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아주 작은 경험이라도 그 상황에서 자신이 무얼 했고, 힘든 일은 어떻게 극복했고 등등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지원자는 높은 점수를 받죠. 그렇기 때문에 책상에 앉아만 있거나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집밖으로 나가서 뭐든지 몸으로 부딪쳐 봐야 합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그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요. 어떤 일이든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Q. 단순 노동 아르바이트라도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겠네요.

중요한 건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닙니다. 그 일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거죠.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일을 하는 태도가 달라요. 경제활동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결국 일은 나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단순 노동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마음가짐부터 다르겠죠.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성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발전하지 못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Q. 역사책방에 20대 청년들도 많이 방문하나요? 청년들이 역사책을 읽으면 알게 되는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점점 증가 추세예요. 강연을 들으러 오는 청년들도 종종 있고요. 저는 역사의 다른 의미는 역지사지라고 생각해요. 한 마디로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겁니다. 입장을 바꿔서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는 것이죠. 청년들이 역사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저 사람은 저렇구나, 그럼 나는 어떻지?’라고 생각해보는 과정은 자신을 한 단계 성숙하게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역사책은 훌륭한 대화의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책도 소설책과 같아요. 결국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다만 시간이 과거인 거죠.

Q.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픈 조언이 있으시다면?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일이 있어요. 더군다나 앞으로 평생직장은 없으니 오히려 현실적응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어떤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를 하고 반드시 대기업 입사만을 목표로 오랜 시간 취업준비를 하지 마세요. 일전에 아프리카라는 주제로 오지여행을 떠난 청년들이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길을 지나가던 모자가 들어와 강연을 들었어요. 마지막에 어머니가 한 말씀 하셨어요. 아들이 대학 전공이 마음에 안 든다고 편입을 준비하겠다고 한다면서, 아들에게 해줄 조언을 부탁하셨어요. 그때 답변이 아프리카를 가 봐도 괜찮다. 무엇이든 좋으니 일단 시작해라였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20대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30대가 되면 자신의 20대를 설명할 수 없어요. 그러니 인생을 지연시키지 않길 바랍니다.

·사진 | 권민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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