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색깔과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마음껏 그려 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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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색깔과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마음껏 그려 나가세요!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9.07.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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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웅 업드림코리아 대표

사회적 브랜드 딜럽의 대표자이자 크라우드펀딩 누적펀딩액 8억 달성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지웅 업드림코리아 대표. 그런 그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나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는 것이 아닌, ‘사회 취약 계층을 돕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착한 생리대 산들산들을 출시해 화제가 되었다.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도울 지 고민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그를 서울 마포구 함께일하는재단사옥에서 만나본다.

 

놀림 받던 Nothing Special, 국가대표가 되다

지금의 이지웅 대표는 당당하고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띌 만한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창시절의 그는 눈에 띄는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당시 가정환경도, 외모도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었기에 그는 늘 학생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그러던 그는 윈드서핑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제안으로 들어선 윈드서핑의 세계에 푹 빠졌던 것. 더욱이 국가대표 코치였던 윈드서핑샵 관리자가 이 대표를 지켜보다 그에게 운동선수까지 제안을 했다. 그는 코치의 제안을 받아들여 선수가 된다.

저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윈드서핑을 즐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너 같은 사람이 무슨 윈드서핑 선수를 한다고 그래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 지는 것이 싫어서 더 악착같이 연습했어요. 그리고 청소년 국가대표가 되어서 어머니와 가정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어요. 그만큼 절실했고 윈드서핑에 인생을 걸었죠. 정말 열심히 운동했어요.”

그는 한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전력을 다해 훈련을 받았다. 재정적 상황이 넉넉하지 않아 장비를 구비할 수 없을 때에는 지역 중소기업 대표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면서 처절하게 준비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훈련한 끝에 그는 선수 생활 3년만인 고등학교 2학년 때 청소년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세계선수권대회를 비롯해 많은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당시 내놓으라 하는 선수들과 함께 우수선수 장학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는 오로지 운동선수로써의 삶을 사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대학 진학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윈드서핑 선수의 꿈을 접고 공부를 하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그는 체육교육학과에 특기생으로 입학하고,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인생철학은 하루 하루를 후회 없게 사는 것이다. 그가 이 같은 철학을 가지게 된 계기는 오토바이를 타다가 큰 사고가 났던 시점으로 돌아간다. 오토바이 사고가 났을 당시 목격자들은 모두 그가 사망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 하지만 그는 극적으로 살아났고, 그 일을 계기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쉽게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더라고요. 만일 여러분이 한 달 뒤에 생을 마감한다고 가정하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그래서 저는 하루 하루를 후회하지 않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활하고 있죠.”

그런 그의 인생철학은 창업을 할 때에도 나타났다.

창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이 창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간절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아무리 멋있어 보이고, 크라우드펀딩에서 성공해서 승승장구하는 듯 보여도 그만큼 부담감이 굉장히 크거든요. 그런 부담감까지 다 안고 할 정도로 하고 싶은 것이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이것은 어떤 일을 하든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미쳐 있어야 하고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작정 떠난 세계 여행, 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그의 대학생활 이력을 듣던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알바 경력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봤던 알바 가짓수를 세어 보니 100가지가 넘더라고요. 직종도 다양했어요. 대학교 후문의 중국집에서 동아리방 사람들에게 짜장면까지 배달도 했었고, 퀵서비스, 대리운전 등 20~23살까지 대학생활 중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집안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그에게 은 크고 중요한 요소였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만 4천만 원.

“23살에 4천만 원이 모아지니 무서울 것이 없더라고요. 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사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문신도 하고, 학교 친구들 술값도 내 주고. 당시에는 그런 것들을 멋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돈을 썼어요.”

학생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액수이기에, 그는 당시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 돈을 가지고 사고 싶은 것들을 사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문신도 하며 멋있게 보이는 것들을 추구했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무작정 떠난 세계 여행에서 그는 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고, ‘멋있게 보였던 것들을 전부 그만두게 되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죽기 전에 많을 것을 해보고 싶어요. 그 중의 하나가 세계 여행이었죠. 그렇다고 거창한 것은 아니고 소소한 것들이었어요. 예를 들자면 피사의 사탑 앞에서 피자 먹기, 에펠탑 앞에서 바게트 먹기, 스위스 알프스 산에서 요들송 부르기 같은 것들 말이에요. 소소하지만 하고 싶었던 것들이어서 무작정 떠났죠.”

영어도 못 하고, 경유지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법도 몰랐던 그는 그렇게 23살에 무작정 해외로 떠났다. 하지만 그는 많은 어려움을 헤치며 실제 그가 쓴 책 표지의 모습처럼, 피사의 사탑 앞에서 피자를 먹으며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행을 하던 그는 또다시 여행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바로 인도에 체류하면서이다. 그는 인도의 생활상을 보면서 큰 충격과 분노가 일었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인도를 인분의 나라라고 표현했다.

쓰레기가 쌓여 있는 곳에는 꼭 돼지가 있었어요. 돼지가 쓰레기를 주워 먹으면서 살더라고요. 그런데 그 뒤쪽에 보니까 돼지들과 함께 오물을 주워 먹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순간 불쌍하다기보다는 그냥 화가 났어요. 빈민촌에 가보니 쓰레기를 주워 먹는 것뿐만 아니라 집이 없는 아이들이 매우 많았어요. 저는 그동안 담배, , 겉치장하는 것들이 멋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들을 하면서 살아왔어요. 하지만 그 모습들을 보고 나서 이 모든 것들을 끊었어요. 그 후 그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만 살게 되었죠.”

빈민촌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한 방안은 책을 써서 출간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낸 책이 두렵다 그래도 나는 간다이다. 책 수입금으로 인도나 캄보디아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고자 했다. 어느 정도 수입이 생겨 캄보디아에 2채의 집을 지어주었다. 이후 여러 콘서트와 강연회에 참가하여 번 수익금으로 또 아이들을 도왔다.

하지만 콘서트, 강연회나 책을 팔아 생기는 수입은 지속적이지 않다는 점이 이 대표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계속해서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소비문화를 통해 아이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창업한 브랜드가 딜럽이다.

그는 딜럽을 통해 캄보디아 아이들의 그림을 세련된 패턴으로 다시 디자인해 패션의류와 액세서리 등에 적용해, ‘착한 소비소비를 통한 기부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딜럽의 모든 제품명은 캄보디아 지역에서 딜럽을 통해 교육 지원을 받는 아이들의 이름이고, 제품 판매의 순이익의 최대 40%는 캄보디아 빈민가 아이들에게 양질의 미술교육과 집, 학교, 병원 등을 짓는 데 사용되고 있다.

자신의 가치 있는 삶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

그렇게 해외의 어려운 아이들을 지원하며 살던 그는 우연히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운동화 깔창을 대신 사용해야 했던 한 여중생의 기사를 읽게 된다. 그는 가히 충격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리대 가격이 부담스러워 곤혹스러워하는 저소득층 여학생 수가 10만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충격을 받았다고.

그는 다시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그는 취약계층 학생들을 위한 착한 생리대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기부 목적의 보급형 생리대를 제작하고자 했다. 하지만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도 생리대를 구매하는 데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순면 커버에 흡수율이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생리대가 바로 산들산들이다. 이 생리대를 사면 소비자가 구매한 만큼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생리대가 기부된다. 품질을 높이다 보면 제작 가격도 올라가는데, 고가의 생리대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구매하지 못하게 된다. 이지웅 대표는 이와 같은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두 개의 가격을 받고 기부하는 방식을 택했다. 막대한 금액과 시간을 들여 3년 만에 출시된 생리대 산들산들은 지금 와디즈에서 묶음 상품으로 할인해 판매되고 있다.

이지웅 대표는 청소년 국가대표도, 해외여행도, 창업도 불가능하다라는 이야기를 매 순간 들으면서 이겨내 왔다. 그런 이야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것을 찾고 도전하는 모습은 많은 청년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생각하는 용기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이에요. 두려움이 있어도 하는 것이 용기에요. 청년인 여러분은 잃을 것이 없어요. 마음껏 도전하세요. 그리고 남들 하는 것, 남들이 이야기하는 것만 듣고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하지 마세요. 타인의 의견은 조언일 뿐이지, 인생을 살아내는 것은 결국 여러분들이에요. 자신만의 색깔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세요. 여러분 모두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니까요.”

·사진 / 배유미 기자 job@hkrecruit.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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