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계속 생산적인 일을 하는 워킹맘의 모범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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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계속 생산적인 일을 하는 워킹맘의 모범이고 싶어요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19.12.2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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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카카오뱅크

카카오뱅크에 재직 중인 이나연 씨는 올해로 경력 20년 차의 직장인이다. 1999년 사회생활을 시작해 두 번의 이직을 거쳐 현재의 회사에 몸담고 있다.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고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평사원이다. 임원 대신 쌍둥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라는 더 멋진 타이틀을 마음에 품은 그는 1시간이 꼬박 걸리는 출근길도 힘들지 않단다. 앞으로 20년은 더 현업에서 일을 하며 든든한 조력자이자 워킹맘의 모범이 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높이 올라가지 않으면 어떤가. 승진을 하지 않아도 임원이 되지 않아도 된다. 아이를 키우며 삶의 무게 중심이 일에서 아이 중심으로 이동했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집에 컴퓨터가 고장 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은행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대학교 선배 언니가 ~’하고 등장해 고장 난 컴퓨터를 고쳐줬는데, 척척 고치는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이 던지요(웃음). 한 눈에 반했어요. ‘, 나도 저 선배처럼 컴퓨터를 배워서 은행 전산실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생긴 것 같습니다. 저는 수학을 전공했는데, 그 이후로 컴퓨터학과 관련 수업을 찾아 듣기 시작했죠. 결국 복수전공까지 하게 되었고요(웃음).

대학교 4학년 때는 컴퓨터 전공인 사람들의 필수 자격증인 정보처리기사와 당시 유행하던 MCSE 자격증을 준비했습니다. 구직을 위한 준비이기도 했지만 제 나름대로 성취감이 컸어요. 일종의 도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정해진 기간 안에 열심히 준비해서 자격증이라는 결과물을 얻는 게 좋았고, 그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멋진 커리어우먼을 꿈꾸다

선배 언니의 영향이 저에게는 워낙 컸던지라 졸업을 앞둔 저의 목표는 언니처럼 은행 전산실에서 일을 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구직활동을 하던 때는 IMF의 여파가 남아 있던 시기라 취업이 쉽지 않았어요. 은행은 물론 대부분 기업들의 신입사원 공채가 거의 없습니다.

수십 번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1999년 동부그룹 IT 계열사 프로그래머로 입사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제가 맡은 첫 번째 업무는 인사와 급여 업무에 필요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대기업의 전산실에서는 여자 직원이 많지 않았는데 제가 여자 사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여자 직원으로서 사명감도 느꼈던 것 같아요. 비록 여자 임원도 없고 선배도 찾기 힘들었지만 열심히 일해서 내 능력을 인정받고 승진도 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야지라는 꿈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입사하자마자 선배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자격증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승진이 어려울 수 있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어요. 디지털 기기처럼 프로그램도 기술의 변화, 시장의 트렌드에 따라 빠르게 변합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새로운 기술에 호기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능력이 필요하죠. 그때부터 저는 새로운 기술 자격증 취득을 하면서 프로그래머로서의 제 역량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입사 1년 차였던 2000년부터 2007년까지 8년 동안 OCP, SAP, FI, CO, ABAP 등 수십 가지 자격증 시험을 보았습니다. 매년 새로운 자격증을 하나씩 땄을 정도로 성실하게 임했죠(웃음). 입사 후 4년 간 취득한 자격증 개수가 10개 이상이니까요. 구직활동을 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자격증 공부를 한 것 같아요. 퇴근 후에도 틈틈이 공부했고 주말에도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에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회사 내에서는 제가 맡은 업무와 성과를 위한 노력 등에 최선을 다하고 회사 밖에서는 자기계발을 위해 공부를 했다면 너무 식상한(?), 바람직한 모범적인 직장인의 모습일까요? 하지만 저는 정말 그랬습니다. 친구들과 담 쌓고 연애도 안 하고 놀지도 않았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직장인이 자기계발을 위해서는 회사 밖에서의 개인 시간을 투자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개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물론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겁니다. 여행을 좋아한다면 여행을 다닐 수도 있겠죠.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제 일이 정말 좋았고, 그와 관련된 공부를 하는 걸 더 좋아했던 것뿐입니다. 저는 남편과 연애를 할 때도 오전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 데이트하고 그랬어요(웃음). 결혼 후에도 제 생활패턴을 그대로였고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말이죠.

여자가 결혼을 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기나요?

저는 회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실력도 성과도 좋았습니다. 여자 직원은 없었지만 여자라서 업무적으로 차별을 받은 일도 거의 없었어요. 그랬던 제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부당한 대우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된 남자 후배에게 제가 맡게 될 프로젝트의 포지션을 양보하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어요. 팀장님께 그 이유를 물었더니 너는 결혼 준비도 해야 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바쁠 테니까 업무 수행이 어려울 것 같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대학원을 다니는 것은 나의 성장을 위해 선택한 일이고 그 일로 이제까지 업무에 차질이 생겼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만약 그것이 정말 문제가 된다면 휴학을 하겠다. 그리고 결혼 준비를 하는 건 회사 업무와 전혀 무관한 일인데 그게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나?”하고 조목조목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제 얘기를 듣던 팀장님은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셨고, 그 포지션은 제가 맡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 후 6년 만에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저도 드디어 엄마가 된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쁘던지요. 하지만 감동도 잠시, 불안과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경력단절로 이어진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거의 공식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2년의 육아휴직을 받고는 덜컥 겁이 났어요. ‘내가 이렇게 오래 쉬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쌍둥이 아이를 보살피면서도 어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 나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결국 친정 엄마한테 아이를 맡기고 13개월 만에 복직 신청을 했습니다.

복직한 부서에서는 야근,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는 남자 못지않게 여자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남들이 하기 싫은 일도 적극적으로 도맡아 했습니다. 결과도 성과도 좋았습니다. 그때 제가 직급이 대리였는데, ‘과장처럼 일하는 대리라는 평가를 들으며 주변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함께 입사했던 남자 동기들보다 승진도 빨라 일찍 책임자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사실 복직 후에 남자 대리를 원했는데 애 엄마가 와서 인사부에 올라가 따지려던 걸 참았다는 폭언을 듣기도 했고, 중요한 회의에서 임원에게 주눅 들지 않고 제 주장을 말했더니 여자 책임자가 그렇게 너무 튀면 보기 좋지 않다는 말을 듣는 등 여자라서, 워킹맘이라서 받은 부당한 차별을 겪었기도 했지만, 그런 거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제 역량을 보여주는 데 골몰했습니다.

워킹맘이 되면서 알게 된 것들

회사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건 친정 엄마의 희생 덕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를 낳기 전, 육아도 회사 일처럼 조절 가능한 미션으로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 일이 많으면 야근을 하면 됩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잘 해내기 위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내가 부족한 점은 무엇인지 꽤 명확하게 알 수 있고요. 그 부족한 부분을 향상시키기 위해 퇴근 후 자기계발을 위한 공부를 하면 됩니다.

육아도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큰 착각이었죠. 갑자기 투정을 부리는 아이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고 버팁니다. 근무 중에는 유치원에서 아이가 다쳤다고 전화가 옵니다. 어떤 능력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아이 앞에서 저는 속수무책이었어요.

육아에는 정답도, 목표도 없는데, 이상하게 사회는 엄마에게는 특정한 역할과 임무를 기대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돌봐야하고, 엄마는 아이들의 밥도 챙겨줘야 하고, 놀아도 줘야 합니다. 회사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내가 엄마로서의 임무에 너무 소홀한 건 아닌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떨 땐 죄책감마저 들었죠. 아이가 다치거나 아플 때, 그리고 몸이 아프신 부모님을 챙겨야 할 때 특히 그랬습니다.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임원을 제외하고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는 40대 여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제가 고민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일과 육아 사이의 줄다리기를 하다 육아를 선택한 사례가 많은 것이겠죠. 저도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친정엄마의 전적인 육아 지원 도움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11시 퇴근하는 워킹맘의 육아를 친정 엄마가 오롯이 맡으셨죠. 결국 사단이 났습니다. 쌍둥이 남매를 키우며 건강이 나빠지신 겁니다. 그 이후로 남편과 육아 문제로 다투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퇴사를 해야겠구나, 때가 왔구나라고 생각했던 저를 선배들이 말렸습니다. 결국 퇴사 대신 10개월의 휴직을 내고 급박한 상황들을 정리했습니다.

워킹맘의 삶이 이렇게 힘들다고, 알아달라고 하소연하는 말이 아닙니다. 근무환경을 바꾸자거나 페미니즘을 논하자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그저 워킹맘의 삶이 왜 고달프고, 어떻게 고달픈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습니다.

제가 워킹맘이 되기 전을 돌이켜보면 참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 선배는 왜 저렇게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건지 이해를 못했고, 전화기가 울리면 부리나케 복도로 뛰어가거나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눈살을 찌푸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철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들의 상황과 심정을 백번이고 이해합니다. 워킹맘은 내 주변의 누구든지 워킹맘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 그들의 삶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 정도는 해보면 좋겠습니다.

친정 엄마가 아프시고 10개월 간 휴직을 하고 난 후부터 제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습니다. 제 삶의 무게 중심이 회사에서 가정으로, 일에서 육아로 아주 많이 이동했죠. 물론 일을 등한시 한다던가 소홀히 한다는 건 아닙니다.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맡기 위해 앞장선다거나,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하지 않을 뿐입니다. 한 마디로 일의 중심, 회사의 중심에 있기보다 한 발짝 물러나 서포트해 주는 역할을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업무를 이끌고, 거기에서 성취감을 느꼈던 제가 승진 포기자 대열에 합류했음을 느꼈을 때, 일 잘하는 직원에서 별 볼일 없는 직원이 된 것 같아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어요. 정말 서글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제가 꼭 회사의 중심이 서 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변부에서도 얼마든지 회사를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꼭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일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을 가진 지금은 출근길이 너무 즐겁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를 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제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요?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뭐냐고요? 가장 큰 이유는 생산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상품을 기획한다거나, 시스템을 개발한다거나 하는 등으로 어떤 회사나 사회를 위해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일을 할 때 저는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가장 기쁜 보람을 느껴요. 엄마의 역할로 얻는 기쁨과는 전혀 다른 감정입니다. 물론 엄마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엄마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이기 전에 라는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저에게 생산적인 일을 하며 사는 겁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말입니다.

오늘도 퇴근길에 전력질주를 합니다

직장인 20년 차. 회사 가지 말라고,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던 아이들도 어느 새 훌쩍 컸습니다. 엄마처럼 되고 싶다고 말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엄마처럼 좋은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쓴 아이들의 일기장을 보면서 정말 뿌듯합니다. 한편으로는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는 모르겠습니다만, 결혼하지 않은 여자 임원을 제외하면 저는 마흔 중반의 나이로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유일한 여자 직원입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직장 사람들이 내가 결혼하고 나이가 들면 나연 님 같은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걸 들었는데 기분이 꽤 괜찮더군요(웃음). 좀 더 오래 회사에 남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 목표는 확고합니다. 임원이 되지 않아도 나이든 여자도 실무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직장인이자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아이들도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교를 가서 제 손길이 필요하지 않을 때고요. 엄마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생산적인 일을 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오랜 기간 보여주고 싶습니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는 독서를 하며 저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집과 회사는 지하철로 1시간이 걸립니다. 이 길은 저에게 늘 초조한 단거리 레이스 같습니다. 퇴근길, 제가 타려는 역사에 가까워지면 저는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사무실에서 직원들 중 제일 먼저 퇴근 스타트를 끊고 집으로 출발해도 도착하면 8시를 넘기기 일쑤라 마음이 급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보내온 알림장, 준비물을 점검하고 책을 한 권 읽어주기만 해도 9시가 넘거든요.

하루 중에 온전히 엄마를 볼 수 있는 이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엄마와 놀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걸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자 5분이라도 일찍 도착하려고 저는 달립니다. 사무실에서 지하철 입구까지, 지하철 간 환승 구간에서, 지하철 입구에서 집까지 달립니다. 엄마를 기다릴 아이들을 위해, 아이를 돌봐주는 돌봄 이모님의 퇴근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이들을 봐주느라 진땀을 흘리고 계실 친정 엄마를 위해 오늘도 저는 퇴근 길, 전력질주를 합니다.

달리다 보면 저 같은 워킹맘이 보입니다. 정장 차림에 백팩을 매고, 구두가 아닌 단화를 신고 달리는 그들은 100m 달리기 경주를 하듯 각자 목표한 지점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지하철에서, 횡단보도에서 거침없이 달리는 모든 워킹맘들의 직장 생활을 응원합니다.

| 권민정 객원기자 withgmj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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