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안녕 하지 못한 청춘’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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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안녕 하지 못한 청춘’들을 위해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0.01.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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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청년잡지 'BOSHU'

보슈’. 보다의 충청도 사투리다. 대전에 사는 청년 6명이 만드는 이 독립 잡지는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지방, 청년, 여성, 성소수자 등 주변에서 목격하는 차별과 폭력, 불평등에 주목한다. 가깝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지역 사람들을 마주하고 지역 여성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담는다. 자칫 예민할 수 있는 주제도 유쾌한 위트로 재치 있게 담아내는 보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2014년 봄 창간된 보슈는 지역 여성들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 방식은 설명하기가 아닌 보여주기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지평이 이렇게 다양하고 넓을 수도 있구나를 보여준다. 지방에서 택시 운전하는 여성,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여성 등 여성이 할 수 있는 다채로운 활동과 삶을 보여준다.

단지 그뿐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이를 통해 보슈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대전 여성들의 연대와 성장이다. 억압받고 차별 받은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자기만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대전 여성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보슈를 발행하고 있는 서한나 공동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어른들을 발굴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묵묵하게 일해 오신 분들을 봤을 때 느껴지는 감동이 있다. 그들을 우리 또래와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보슈는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독립잡지를 만들고 있는 만큼 지방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여성 이야기에게도 관심이 크다. “서울에서는 여성을 위한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지만 지역의 상황은 아무래도 조금 다르다. 대전에도 그런 분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걸 지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는 것이 서 대표의 설명이다. 지난 11여성의 몸을 주제로 발행된 보슈에서 대전여성장애인연대의 이인원 성폭력상담소장 인터뷰를 게재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실 보슈가 처음부터 여성주의적 관점이었던 건 아니다. 보슈는 대전 청년들이 느끼는 고민과 생각을 담기 위해 대전에 사는 20대 청년들이 모여서 탄생했다. 그 출발은 대전에서 안녕하지 못한 청춘들이었다. 2014년 마을 활동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자는 취지로 모였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대전 청년들이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자기만의 삶을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해보자고 모인 것. SNS에 친숙한 밀레니얼 세대를 대변하는 이들이 종이 잡지라는 아날로그 미디어를 택한 배경에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청년들에게 의미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20141호를 낸 후 보슈는 팀원이 교체되면서 지역 청년문제를 주제로 여러 논의들이 나왔다. 2016년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나서자. 우리도 목소리를 내자는 말이 나왔고 6호부터 지역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기 시작했다. 그 후 본격적으로 여성주의 관점으로 콘텐츠에 집중하기 시작해 지금의 보슈로 이어졌다.

계간지로 발행되는 보슈는 2030세대 대전 청년들이 만들어가고 있다. 권사랑·서한나 공동대표, 신성아 디자이너, 김다영 에디터, 박지현·여송하 포토그래퍼 이렇게 6명이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발행한 잡지가 총 11호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지역 여성의 이야기를 보슈만의 시선으로 재치 있고 깊이 있게 담아내 여성뿐 아니라 남성 독자까지 사로잡아 정기 구독자도 생겼을 정도다. 7호부터 무가지에서 유가지로 변경하면서 콘텐츠의 질에 집중한 덕분이다. 가격도 판형마다 다르게 책정한다. 그래서 10호는 16,000, 11호는 10,000원으로 다르다.

잡지 제작 비용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조달한다. 1호부터 3호까지는 대전시 사회적자본지원센터 지원으로 인쇄 비용을 충당했지만 4호부터는 스스로 독립하면서 선택한 방식이다. 잡지 판매 수익만으로는 제작이 어렵기 때문에 구성원 모두가 직접 발로 뛰면서 디자인, 홍보, 제작, 판매 등을 맡고 있다.

그렇게 탄생한 보슈에는 다양한 지역 여성 이야기가 실린다. 10<방어흔으로부터>는 여성인물특집호로 제작했다. 고등학교 안의 10대 페미니스트, 사회운동을 하는 20대 여성, 여성택시기사, 성소수자 여성 커플 화보 등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대전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2019년 발행한 11호는 여성의 몸란 주제로 음악, , 성폭력 문제, 여성인권 활동가 인터뷰 등을 다채롭게 다뤘다.

매호 다양한 콘텐츠로 발행되는 보슈의 주제는 치열한 기획회의를 거쳐 선정한다. 주제 선정 과정은 민주적이다. 익명으로 메모지에 키워드를 담는다. 팀원들이 키워드를 전부 제출하면 투표를 통해 한 주제를 선정한다. 이후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구성원들이 담고 싶은 내용, 방향성 등을 도출하고 구체적인 주제를 정한다.

'보슈' 팀원
'보슈' 팀원

 

지역과 여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

지역과 여성을 연결하는 매개가 되고 있는 보슈는 잡지 외 외부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프로젝트 팀 수요일에서 2년째 대전역 인근 성매매 집결지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는 행사를 기획했고, 대전 지역 페미니즘 소모임, 여성단체와 함께 지역 여성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과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2017‘FC우먼스플레잉이 대표적이다. 카이스트 여성주의 연구회 마고와 함께 창단한 여성축구팀이다. 서울에서 축구 원데이 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그 밖에도 페미 운동회를 열어 페미니스트 여성들을 한 데 모으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대전에는 조금씩 새로운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대전 페미니즘 소모임이 활발해지고 여성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생긴 것. 권사랑 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지방에서 여성주의 활동을 하는 개인, 모인, 단체가 서로 단절되지 않고 연결될 수 있도록 보슈가 그 역할을 하고 싶어요라고 밝히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서한나 편집장은 앞으로는 잡지 발행보다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의 가치를 실천하는 활동에 더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2호 보슈를 기다리는 이들이라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20201월 보슈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현재 보슈 팀원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독립서점, 대전 계룡문고, 대전 맞배집에서 만날 수 있는 보슈의 2020년 첫 단행본이 벌써 기대된다.

| 권민정 객원기자 withgmj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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