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내 인생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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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내 인생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이죠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0.01.30 10: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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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My Life / 서유라 트로트 가수

19991집 음반을 발매한 서유라 씨는 트로트 메들리로 꾸준하게 활동해 온 20년 차 트로트 가수다. 가수로 활동하며 그동안 취득한 자격증만 5개 이상, 지난해에는 4년제 대학교 학위도 땄다. 10년 만에 신곡을 준비해 3집 앨범 발매도 준비 중이다. “유명하지 않으면 어떤가.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가수 서유라 씨를 만나보자.

 

트로트 신동에서 평범한 사무직 여성으로

어렸을 때 노래를 잘 부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신동이란 소리도 들었고요. 하지만 가수의 길은 내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혼자 가기엔 너무 힘들고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남들처럼 안전한 직장에 취업해 일찍 시집가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유라 씨는 어릴 때부터 트로트 신동 소리를 듣고 자랐던 아이였다. 4살 때 설운도의 노래와 불효자는 웁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등이 애창곡이었을 정도. 마을 잔치가 열릴 때면 늘 마이크를 잡았고 어른들은 우리 마을에 트로트 영재가 나왔다며 좋아했다고.

52녀 중 늦둥이 막내였던 그녀는 가족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중학교 때까지 가수가 되겠다는 그녀의 꿈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넉넉하지 못한 경제 형편에 오빠와 언니들은 부모님을 대신해 경제 활동에 뛰어들었고, 그녀도 가수라는 어려운 길 대신 안전한 직장에 취업하고 결혼을 하는현실적인 길을 택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작은 회사에 사무직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부모님 몰래 작곡가를 쫓아다니며 노래를 배우러 다닐 만큼 남달랐던 를 억누르기란 쉽지 않았다. 일을 하다가도 쉬는 시간에 라디오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올 때면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들은 꿈을 포기한 그녀를 보며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사무직으로 일하길 2.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우연히 1998년 설날 특집 전국노래자랑이 열린다는 공지를 본 것. 명절 특집으로 대한민국 전국에서 지원자를 모집하고 생방송으로 경연을 펼치는 자리였다.

당시 그저 무대 위에서 한번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하나만으로 신청했어요. 본선 무대에 오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기에 친구, 동료, 가족 등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죠.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오디션에 뽑혀 최종 무대까지 올랐습니다. 거기에다 우수상까지 받았어요. 당시 주현미 씨의 짝사랑이란 곡을 불렀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1998년 당시 전국노래자랑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것도 설 특집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천 명의 경쟁자를 뒤로 하고 덜컥 우수상이란 큰 상을 거머쥔 후, 그녀는 본격적으로 트로트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트로트 가수에 올인했다.

전국노래자랑수상을 통해 가수로 데뷔

전국노래자랑에서 그의 재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이 앨범을 내보지 않겠냐며 연락을 해왔다. 마음이 맞는 이들과 함께 약 1년 간 준비기간을 거쳐 19991집 앨범을 발매했다. ‘사랑의 삐에로라는 타이틀로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앨범을 발매하며 교통방송, 라디오, 아이넷 등 다양한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나갔다. 주현미 모창 가수로도 이름을 알리며 메들리 앨범을 제작하기도 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메들리 곡으로 DVD앨범으로 내기도 했다. 2집 준비도 열심히 준비해 냈다.

요즘은 젊은 트로트 가수가 많이 등장하고 있고 인기도 높다. 하지만 당시에는 20대 젊은이가 트로트를 부르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 ‘트로트는 연륜이 있어야 한다라는 선입견이 강했기 때문. 그녀는 작은 체구에서 흘러넘치는 열정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단박에 무대 분위기를 휩쓸면서 이런 선입견을 깨나갔다.

당시 편견이 많았습니다. 트로트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즐겨 들으셨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히 뛰어들었습니다. 앞뒤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어요. 낮이든 밤이든, 무대가 크든 작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습니다. 노래는 제 인생 저의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녀가 가진 긍정 에너지는 단순히 가수라는 이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본업은 가수이지만 사실 그녀는 5개 이상 자격증을 보유하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는 숨은능력자다. 그 경력은 가수 이상이라고 할 만하다. 취득한 자격증 종류는 바리스타, 한국아로마테라피협회 인증 아로마 전문가, 피부관리 국가자격증, 한식요리사, 네일아트 자격증 등 다양하다. 이러한 자격증으로 실제로 천연화장품을 만들어 판매도 하고 피부관리사로 일도 했다.

배움을 향한 도전이 대단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무명 트로트 가수라는 직업에서 비롯되는 뼈아픈 현실이 있다.

무명 가수의 경우 현실적으로 고정 수입이 없고 불안한 직업입니다. 수입이 없을 때를 대비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 하나쯤은 배워둬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관심 있는 분야를 시작으로 하나하나씩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이 이렇게 여러 가지로 늘어났네요.”

최근에는 네일숍을 열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아담한 네일숍이다. 가수 출신이 운영하는 곳답게 고품질 사운드를 자랑하는 스피커 4개가 사방에 설치되어 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휘해 아름다운 손을 만들어주고 싶은 목적으로 열게 되었다는 이 공간은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던 그녀 자신에게 주는 여유이자, 일상의 작은 행복을 주는 아지트인 셈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더 나은 나의 삶을 바라보기

오랜 무명 생활 탓에 힘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생계를 위해 투잡, 쓰리잡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 자책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도전을 거듭했다.

무명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방황도 많이 했죠. 그런 힘든 과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낙관적인 성격이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감이 있었고요. 가수로 성공하지 않으면 다른 길로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제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라면 어떤 일이든 도전했고 잘 해냈습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다양한 사업을 했던 이유도 이런 생각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녀는 결국 모든 건 생각의 차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이것밖에 안 돼라고 생각하면 거기에서 더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녀의 철학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더 나은 나의 삶을 바라보기이다. 이러한 삶의 철학을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나갔다.

작년에는 4년제 대학 졸업장도 취득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것이 늘 아쉬웠던 그녀는 자신이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과감히 대학교 입학을 준비해 2015년 사이버 한국외국어대학교(4년제) 중국어학과에 입학했다.

물론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데다 일과 병행해야 했기 때문. 그녀는 내 인생에서 최고로 힘들었던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6년 간 업소의 전속가수로 일을 하며 주말, 명절을 포함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랐던 그녀는 잠을 아껴가며 공부해야 했다.

밤에는 노래를 부르고 낮에는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보다 더 힘든 건 시험이었어요. 사이버대학 특성상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밤 9시부터 11시까지 보는데 그 시간에 저는 일을 해야 했거든요. 온갖 음악 소리와 정신없는 대기실에 홀로 앉아 시험준비를 해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30분 만에 시험을 보고 무대에 올라야 하는 경우도 있었죠.”

상황이 힘들 때마다 그녀는 이를 더욱 악 물었다. 그리고 20192, 그토록 고대하던 졸업장을 받았다. 학사모를 쓰고 두 손에 졸업장을 받던 그 순간을 그녀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노력한 이유는 그녀의 꿈 때문이다.

저는 언젠가 중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가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무대 위에서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전달했다면,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제가 배운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가수와 교사가 하는 일은 다르지만 결국 사람들을 좀 더 행복하게 해주는 사회적 역할이라는 점은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강단으로 환경이 바뀌는 것뿐이죠.”

내년에는 대학원에도 진학할 계획이란다. 노래를 향한 열정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집 근처에 장만한 개인 녹음실 및 스튜디오에서 3집 앨범 준비에도 열심이다.

개인 스튜디오는 2년 전에 마련했다. 비싼 비용을 내고 시간에 쫓기듯 노래 연습과 앨범 준비를 하면서 스튜디오를 전전했던 그녀는, 작은 공간일지라도 언젠가는 녹음실을 갖춘 나만의 스튜디오를 열겠다고 다짐했다고. 그렇게 문을 연 스튜디오는 네일숍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그가 거주하는 곳과도 멀지 않은 곳이다.

이곳에서 그녀는 개인 레슨도 진행한다. 가수의 꿈을 가진 이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저렴한 가격으로 노래 레슨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성공한 트로트 가수

올해 봄에 발매될 3집 앨범은 마지막 제작 과정을 거치고 있다. 앨범 사진도 완성된 상태. 2집 발표 후 거의 10년 만의 개인 앨범 발매다.

이 소식을 가장 기뻐하는 건 가족이다. 가족들에게 그녀의 존재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잘 성장해준, 항상 자랑하고 싶은 막내 동생이다. 가족들이 가장 손꼽는 자랑은 그녀의 착실함이다.

13년 전 스스로의 힘으로 집도 장만했다. 얼마 전 대출도 모두 갚았다. 신용카드를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는 그녀는 무대 위의 화려한 가수라는 허황된(?) 꿈을 쫒지 않고 근검절약하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관객의 행복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다.

남대문에서 3만원 하는 드레스를 사 직접 리폼을 해서 무대 위에 오를 만큼 사치를 부리지도 않았다. 오로지 더 나은 성장을 위한 일에만 아낌없이 투자했다. 대학교 진학이 그렇고, 자격증 공부가 그렇다. 물론 대학교 졸업장을 땄다고 해서, 또는 어떤 도전을 한다고 해서 인생이 180도 변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꾸준히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행복은 스스로 설계해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금까지의 저를 되돌아보면, 20~30대에는 사회가 생각하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성공의 조건을 정해두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가수라면 방송에 나와서 유명해져야 해라는 조건 같은 것들이죠. 물론 유명해지면 좋죠. 하지만 삶에서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내 인생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인 것 같아요. 자기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언젠가부터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일이 정말 행복해요. 더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더 행복한 제 삶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 권민정 객원기자 withgmj1@naver.com

사진제공 | 서유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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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림 2020-01-30 15:58:19
서유라님 표정만 봐도 행복해 보이시네요!! 앞으로도 승승장구 하시길 바랄게요!! 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