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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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0.03.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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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만나는 멘토 / 박준영 변호사(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

 

2017년 개봉한 영화 <재심>2000년 실제 일어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각색한 영화다. 돈 없고 빽 없는 벼랑 끝 변호사와 10년을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던 청년. 이 두 사람이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변호사 이준영 역에 정우, 억울한 살인자 조현우 역에 강하늘이 맡아 뛰어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박준영 변호사다. 그는 영화의 소재가 된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비롯해 2007년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 1999년 삼례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등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법 피해자들을 무료 변론하여 재심 청구를 받고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친부 살해 혐의 무기수 김신혜 사건도 15년 만에 재심을 이끌어내 현재 재심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는 누구인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실존 인물인 박준영 변호사에게 쏠렸다.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정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의 성장 과정을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다. 어떤 계기로 재심 전문가가 되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각종 언론사와 매체가 대중을 대신해 그를 인터뷰 했다. 신문사, 방송사, 교양 프로그램 등 여러 매체는 그에게 모두가 궁금해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남들처럼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고시 시험을 준비했다’, ‘편하게 변호사를 하면서 경제 활동도 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대답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전남 완도 출신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변호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꿈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방황도 많이 했다. 어렵게 지방 소재의 한 대학에 진학하지만 1학년 1학기만 다니고 중퇴를 하고 군에 입대한다. 그곳에서 만난 선임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걸 보고는 따라서 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교 졸업장은 없지만 고시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다면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5년을 준비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다. 인생역전을 한 줄 알았지만 사회는 녹록치 않았다. 고졸 출신이라도 열심히 공부해 사법 시험에 합격한 자신의 노력과 가치를 알아주리라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서울에서 그를 받아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취직에 실패하고 수원으로 내려간 그는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그곳에서마저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 사선 사건 수임이 도저히 어려웠던 탓에 결국 그는 살길이 찾아 국선 변호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국선 변호를 하려는 변호사가 거의 없었던 덕분에 수원 지역 국선 변호를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사선 변호만큼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한 달에 수십 건씩 국선을 맡아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사건이 바로 수원 노숙인 살인 사건이었다. 그를 재심 전문 변호사로 이끈 인생 사건이었다. 소원 노숙인 살인 사건은 2007년 수원에서 한 여학생이 시신으로 발견되어 가출 청소년 5명과 노숙인 2명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자백한 사건이다. 일곱 명이 스스로 살인을 자백하고 경찰, 검찰 판정까지 확정된 사건이었다. 노숙인 2명은 이미 옥살이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사건의 재심을 그가 맡게 된 것은 가출청소년을 돌봤던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찾아왔기 때문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에 재심을 청구했고 재심이 받아들여지면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 간 형사 재판을 진행했다. 그리고 일곱 명은 모두 무죄 확정을 받았다. 국내에서 형사 사건으로는 최초로 재심을 통해 무죄 판정을 받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현실적인 변호사에서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되다

국선 변호를 하다 우연히 맡은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 재심. 그는 이 사건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사건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달려들었다고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회상했다. 정의감에 불탔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유명해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명해지면 더 많은 사건이 들어올 테고 힘들게 국선 변호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재심 무죄 판정을 받으면서 그는 그의 바람대로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었다. 직원도 고용하고 변호사도 고용할 만큼 말이다.

그러던 중 그는 탈북자 간첩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 등을 맡게 된다. 한 번 재심에 성공한 변호사로 이름이 알려지다 보니 비슷한 사건이 들어오고, 재심 변호를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어느 순간 돈벌이가 되는 사선 수임은 뒷전이고 소위 돈 안 되는 재심 변호에 집중하면서 직원도 떠나가고 사무실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정의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법 피해자 재심 변호를 하면서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긴 시간 들여다보면서 제 마음이 조금씩 바뀌더라고요. ‘이렇게 어려운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안정적이고 편안한 삶만 생각하지 않았나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돈이 안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때부터 재심에 뛰어들게 된 것 같습니다. 사건이, 사람이 이렇게 만들어주더군요. 때로는 꿈이 없어도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일단 시작하다보면 내 삶의 의미를 찾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수원 노숙 소녀 사건 재심이 그랬고 그 이후에 맡은 사건도 그랬습니다.”

 

바보 변호사박준영

재심 변호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재심 청구를 위한 준비만 최소 몇 년이다. 이 모든 과정에 박준영 변호사는 무료로 자신의 법률 지식과 능력을 쏟아 붓는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법 피해자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다. 지적 장애인, 가정 형편이 어려운 미성년자 등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변호사를 고용할 돈이 없다.

재심의 경우 이미 오래 전에 형이 확정된 재판의 오류를 밝히고 무죄를 입증하는 일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변호사를 지정해주는 일도 없다. 특히 형사 사건인 경우 그렇다. 3자가 또는 살인자 자신이 나는 살인자가 아니라고 무죄라고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그 호소를 받아들인 변호사가 검찰에 재심을 청구, 검찰이 그 재심을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재심이 시작된다. 유죄냐 무죄냐의 판정을 위한 형사 재판이라는 긴 싸움은 그 다음 단계다. 이 일에 온 몸을 던진 박준영 변호사.

돈이 되지 않는 재심 사건에 매달리다보니 생계가 곤란해질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지사. 결국 그는 공개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재심 변호를 이어가기 위해 당시 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와 함께 스토리펀딩을 통해 재심 사건을 사회에 알리고 국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3일 만에 1억 원이 모아졌고 3주만에 3억 원이 모여졌다. 사회에 아직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달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가 이어졌다. 그 결과는 삼례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재심도 3명 모두 무죄 판결을 얻어냈다. 정의의 승리였다. 그때부터 박준영 변호사에게 잘 따라 붙는 별명은 바보 변호사였다.

어느 인터뷰에서나 솔직하고 꾸밈없는 대답으로 한결같은 박준영 변호사는 뛰어난 능력이나 거창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만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자신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안락한 삶을 꿈꾸는 현실적인 변호사였고, 성공을 쫓아 열심히 일하는 특별할 것 없는 사회인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정의로운 변호사, 돈이 아니라, 편안한 삶이 아니라 정말 억울한 사법 피해자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렇게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 나와 별 다를 바 없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이라는 사실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 특별한 일을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박준영 변호사는 <우리들의 변호사>라는 책을 출판해 보다 자세하게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 <재심>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진짜배기 박준영 변호사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 권민정 객원기자 withgmj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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