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추구하는 불교에서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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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를 추구하는 불교에서 이판사판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0.08.0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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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로 읽는 5분 한국사 / 이판사판(理判事判)

이판사판이야, 어디 하는 데까지 해보자.”

중간고사 전날, 각오를 다지면 이런 혼잣말을 한 적 있나요? 보통 사람들은 돌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닿으면 이런 마음이 들곤 합니다. 또 경기 종료 마지막 1분을 남기고 예선 탈락의 기로에서 골키퍼까지 골대를 비우고 공격에 나선다면 그 순간이 바로 이판사판이죠.

이렇듯 이판사판은 궁지에 몰렸지만 피할 수 없는 최악의 갈등 상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서 선 순간이죠.

이판사판은 불교에서 나온 말로 얼핏 생각하면 모순처럼 들립니다. 참선을 통한 마음의 평화를 중시하는 불교에서 어떻게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생각했을까요?

이판사판은 이판(理判)’사판(事判)’이라는 두 낱말을 합친 말입니다. 불교가 조선에서 명맥을 이어온 내력을 들여다보면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조선이 유교를 나라의 근본으로 삼으면서 불교는 엄청난 억압을 받았습니다. 승려들은 더 이상 수도인 한양에 들어오지 못하고 천민처럼 잡역에 동원되는 등 그동안의 특권을 모두 박탈당하고 말았죠. 불교 국가이자 왕을 보필하는 국사라는 직위까지 오른 승려가 있던 고려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이 뒤바뀐 셈이었습니다.

억압받으며 명맥만 이어가는 와중에도 경전을 읽고 참선하며 염불하는 등 수행에만 전념하는 스님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이판승입니다. 하지만 스님들도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고, 누군가는 사찰의 살림을 꾸려야 했습니다. 속된 말로 염불만 외면 밥이 나오나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를 담당한 사람들이 바로 사판승이랍니다. 이들 덕분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교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한반도에서 큰 문화적 요소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스님인데 누구는 따뜻한 방 안에서 들어앉아 불경이나 읽고, 누구는 방에 불을 때고 물을 긷는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아 절 살림을 꾸려야 했다니 만약 여러분이 당시의 사판승이었다면 이판사판 대들지 않았을까요?

불교가 한반도 문화에 끼친 커다란 영향력은 다른 단어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큰 혼란에 빠진 상태를 일컫는 아수라장아수라는 한자로 阿修羅라고 씁니다. 아무 뜻도 없는 한자어로, 단지 인도어의 소리를 한자로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굶을 뜻하는 야단법석도 불교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야단법석은 야외에 세운 단을 뜻하는 야단(野壇)’법석(法席)’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말 그대로 야외에 단을 세우고 자리를 만드는 큰 불교행사와 관련 있는 단어입니다.

제공: <단어로 읽는 5분 한국사>(김영훈 지음, 글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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