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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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
  • 이은지 기자
  • 승인 2020.10.0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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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my Life /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

전통시장의 수많은 검정 비닐봉투를 대체할 장바구니 대여 캠페인으로 시작한 알맹의 망원시장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망원시장에서 취급하지 않는 공산품을 리필할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알맹상점으로 확대되었고, 폐기물을 재사용하고 재활용하는 우리동네 자원순환알맹 커뮤니티 회수센터의 역할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NPO지원센터의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를 만나본다.

 

Q.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쓰레기를 덕질하는환경덕후고금숙입니다. 환경단체에서 근무하면서 유해화학물질 반대 운동을 해왔는데, 유해화학물질은 플라스틱에서 많이 나옵니다. 자연스레 플라스틱에 관심이 많아졌고, 쓰레기에 대한 관심도 커졌죠. 단체를 옮기면서 주3일 일하게 되었고, 동네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곳을 기반으로 대안을 만드는 활동과 유해화학물질을 반대하는 제도적 활동 등 N잡러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어떤 형태, 내용의 활동이든 계속해서 환경 활동을 해오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를호모쓰레기쿠스라고 표현합니다. 어디서든 쓰레기를 발견하면 그게 눈에 밟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에요(하하).

Q. ‘알맹이라는 이름이 참 직관적이면서도 기억에 남는데요, 구체적으로 알맹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처음 상점을 시작할 때플라워(플라스틱과의 전쟁)’ 등 이름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어요.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글의 느낌을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라는 의미를 담아알맹 망원시장 프로젝트로 결정되었죠.

Q. 알맹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 활동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는 비닐 사용에 대한 규제가 있어서 비닐 사용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사는 동네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망원시장은 검은 비닐봉지가 시장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비닐 사용량이 많아요. 그걸 보면서 대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장바구니를 모아서 장바구니를 대여하고 용기를 가져가는 사람들에게 지역화폐로 인센티브를 주는 캠페인을 20명과 시작했어요.

캠페인을 2년 동안 진행했는데, 처음엔 용기를 들고 가면 상인들이 귀찮아하셨어요. 진상 손님 취급을 받기도 했고요. 근데 사실 재료를 포장 없이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 건 전통시장밖에 없거든요. 가장 무궁무진하게 플라스틱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인데, 상인들이 싫어하니까 이런 생각을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용기를 받아줄만한 가게를 찾아다니면서 계속 설득하고 독려했어요.

이렇게 망원시장에서 용기를 사용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지금은 망원시장에서 2000원짜리 닭강정을 먹을 때도 용기를 내밀면 당연하게 용기에 담아주세요. 많은 분들이 끊임없이 용기를 사용하시고, 쓰레기 대란이 이슈가 되면서 나는 못해도 좋은 행동이지라고 생각해 주시는 상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시장 내 플라스틱 사용금지라는 제도적 장치 없이 만들어낸 변화인 거죠.

Q.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니, 망원시장에서 판매되는 먹거리가 아닌 일반 슈퍼에서 판매되는 샴푸나 세제 같은 공산품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그럼 우리가 이것들을 리필할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만든 게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이에요. 망원시장에서 도보로 7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죠. 망원시장에 갈 때 용기라든지 장바구니를 빌리고 싶으신 분들은 알맹상점에 오셔서 빌려 가실 수 있어요. 오시면 망원시장 지도도 드리고요. 마늘을 포장지에 싸놓지 않은 가게, 폐식용유 비누를 그대로 살 수 있는 가게, 두부를 그대로 담아주는 가게 등을 표시해 놓은 지도에요.

저희는 망원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농산물은 판매하지 않아요. 저희 원칙 첫 번째가망원시장에서 포장 없이 살 수 있는 것들은 판매하지 않는다이고, 두 번째는망원시장에서 취급하지 않는 공산품 리필을 한다에요. 세 번째는망원시장에서 판매하지 않는 템페(콩을 발효시켜 만든 고단백 음식)같은 비건 음식은 음식물이어도 공동구매 형식으로 판매한다입니다.

 

Q. 구체적으로 알맹상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요.

저희가 주로 하는 활동은 화장품, 세제 등을 벌크 형태로 들여와서 방문자들이 가져오신 용기, 혹은 판매하는 유리용기에 담아 가게 하는 것과 리필데이를 만들어서 망원시장에서 판매하지 않는 식재료를 공동구매해서 각자 용기에 담아 가게 하는 것, 그리고 장바구니, 용기를 대여해 드리는 것입니다.

벌크로 사와서 조금씩 다회용 용기에 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벌크를 들여오는 유통 과정에서도 각종 포장 쓰레기들이 발생하더라고요. 그래서 거래하는 기업들에 직접 전화로 개별 포장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리고 있어요.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에요. 알맹상점을 찾아주시는 고객들은 물건의 개별포장이 없다고 해서 배척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부터 개별 포장 공정을 제외하기 위한 최소 구매 수량을 협상하는 일까지, 거래 업체들과 하나하나의 과정들을 거쳐 유통 쓰레기를 최소화하면서 함께 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거래처를 뚫는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저희가 원하는 조건들에 맞게 거래처를 뚫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Q. 실제 사업을 진행하면서 처음과 바뀐 부분들이 있는지요?

원래 저희가 커뮤니티 회수센터를 할 때 폐기물 전체를 분류하여 회수하고 싶었어요. 일본을 보면 폐기물을 24개로 분류해서 회수를 하는데 저희도 그렇게 수거를 해서 동네에 폐기물을 회수하시는 분들께 연계를 하고 싶었어요. 새벽 일찍 리어카를 끌고 곳곳을 돌아다니시면서 회수를 하시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저희 상점에 이미 선별하여 분류되어 있는 폐기물을 드리는 거죠.

근데 그게 공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작은 것부터 회수를 시작하고 있어요. 우유팩이나 병뚜껑들을 받아서 우유팩으로는 화장지를, 병뚜껑으로는 치약짜개를, 커피가루로는 화분을 만들고 있어요. 회수센터로 병뚜껑이나 우유팩 같이 작아서 재활용이 어려운 폐기물을 모아서 가지고 오시면 도장을 찍어드리고, 도장을 모으면 저희 상점에 있는 물건을 리워드로 드리고 있는데 사실 이건 철저히 비영리적인 활동으로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장바구니 빌리러 오셨다가 회수센터에 폐기물도 놓고 가시고, 재활용 상품들도 구경하시고, 리필스테이션에서 리필도 하시는 등 알맹상점에 오시는 분들이 다양한 경험을 하시고, 언제든 오실 수 있는 참새 방앗간 역할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공간만 조금 더 넓어지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더 많은 종류의 폐기물을 모아서 1차 회수자와 연계하고 싶어요.

Q. 알맹의 사업, 활동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쓰레기 문제는 개인의 플라스틱 소비보다 산업체계가 더 큰 원인이에요. 전체 쓰레기 중 약 20%만 생활폐기물이거든요. 사실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건 아니죠. 하지만 폐기물 배출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고 목소리를 더하는 개인들이 많아질수록 제도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거죠. 유통 상의 쓰레기를 줄이고, 리필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알맹상점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가능하면 1차 회수자인 폐지를 수거하시는 분들께 회수할 때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든지, 사람들이 분리수거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어요. 이 콘텐츠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폐기물 분리 배출 방법을 알리고, 돈이 될 수 있는 폐기물들을 이분들에게 기부하는 방식으로 넘겨 드리는 것이 아직은 좀 먼 꿈이에요. 그리고 우유팩을 회수하는 광주의 카페라떼 클럽 등 지역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회수센터들의 인터뷰 사례집 제작을 하반기에 계획하고 있어요.

 

Q. 알맹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비전이 궁금합니다.

저희와 같은 상점을 운영하기 원하시는 개인들이 있는데, 지금 저희가 겪고 있는 경험들을 공유해서, 소위삽질하는 과정을 최소화하셨으면 좋겠다는 게 저희의 계획이자 꿈이에요. 그래서 그분들이 조금 더 수월하게 리필스테이션을 시작할 수 있게 되고,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는 것처럼 알맹만 살 수 있는 상점들이 곳곳에 생겨서 어디에 사는 누구든 자전거를 타고 방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희가 하는 활동에 공감해 주시고 동참해 주고자 하는 분들이 멀리 중랑구에서도 2짜리 통을 끙끙 밀고 알맹상점을 찾아주실 때마다 그런 생각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희 알맹의 활동에 관심 갖고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사진 / 이은지 기자 job@hkrecru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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