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와 사랑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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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와 사랑에 빠지다
  • 이상미 기자
  • 승인 2020.12.0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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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My Life / 신혜정 반도네온 연주자

2017년 탱고 연주자들을 위한 비영리단체 <무스땅고>를 만들고, 2018년에 탱고 트리오 <이보스>라는 그룹으로 정식 데뷔하였으며, 최근까지 탱고 오케스트라 <띠에라>에서 활동했던 신혜정 씨. 반도네온을 연주하며 자신만의 탱고를 배우고 있는 그녀의 삶은 온통 탱고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탱고와 사랑에 빠진 그녀의 탱고 이야기를 들어본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혜정 씨는 음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 20대 중반의 어느 날, 우연히 탱고 음악과 함께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를 만났다. 그날부터 밤을 새워가며 반도네온에 대해 조사하고 알아보던 그녀는 국내에서는 반도네온을 배우거나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국내에선 반도네온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 방법이 없었어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씨도 당시에 아르헨티나에서 유학을 했거든요. 이리저리 알아보며 몇 날을 끙끙거렸지만 해답이 안 나왔어요. 당시엔 해외에 나갈 여력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래서 마음을 접고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죠. 그러다 30대 초반에 다시 탱고를 만났고 그땐 정말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직감했습니다.”

 

30대 초에 다시 탱고를 만나다

큰 결심으로 직장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탱고에 빠져 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반도네온 연주를 하고 있었다는 혜정 씨.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아르헨티나,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반도네오니스트 선생님들로부터 반도네온을 배웠다. 작년에는 아르헨티나에서 두 달간 머물며 반도네온 거장들의 연주를 닥치는 대로 찾아다니며 듣기도 했다.

반도네온은 탱고 연주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악기예요. 하지만 반도네온과 탱고는 각각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죠. 반도네온은 원래 독일에서 탄생한 서민적인 악기입니다. 피아노 같은 고가의 악기를 갖기 힘든 서민들이 주로 반도네온으로 독일 민속 음악들을 연주하곤 했어요. 무게가 6~7kg 정도로 비교적 가벼워서 휴대하기도 좋고, 악보를 볼 줄 몰라도 연주할 수 있었던 악기에요. 그러다가 1800년대 후반에 우연히 이 악기가 배를 타고 아르헨티나로 건너갔고, 파워풀하면서도 애수어린 반도네온의 음색이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과 잘 맞으면서 반도네온은 1900년대부터 탱고 악단의 대표 악기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반도네온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운데에 주름통이 있고, 기본적으로는 왼쪽에 33, 오른쪽에 38개의 버튼이 달려 있다. 이 버튼들을 양 손가락으로 누르고 주름통을 열고 닫으면서 연주한다. 아코디온과 비슷해 간혹 아코디온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두 악기는 생김새도 소리도 많이 다르다.

연주하러 다니다 보면 악기를 어디서 살 수 있으며, 가격은 얼마인지 많이 물어보세요. 생소하기 때문일 거예요. 요즘은 반도네온을 구하는 게 예전만큼 어렵지는 않아요. 저의 경우는, 한국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독일에서 반도네온과 아코디온 제작 마이스터 과정을 밟고 있는 오희주라는 분을 통해 2018년에 독일의 반도네온 공장에서 새 반도네온을 구입했어요. 간혹 새 악기 말고 제작된 지 100년 가까이 된 오리지널 반도네온을 찾는 분들도 계신데 좋은 컨디션의 악기를 고르는 게 사실상 쉽지는 않아요. 물론 아르헨티나, 한국에서도 운이 좋으면 오리지널 악기를 구할 수는 있지만, 악기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소리만 들어서는 쓸 만한 악기인지 알기가 어렵죠.”

 

탱고 춤과 음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연주자들이 늘고 있는 만큼 한국에서도 반도네온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아직 사립학원 외에 탱고나 반도네온을 정식으로 가르치는 학교나 음악원은 없지만 <한국반도네온아카데미>라는 곳에 있는 반도네온 연주자들이 서울, 대전, 광주 등에서 레슨을 하고 있다.

반도네온을 배우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이제는 길이 많이 열려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인레슨을 받는 방법도 있고, 악기 구입이 고민이 된다면 대여하는 방법도 있거든요. , 처음 배우실 때는 인내심을 가지셔야 해요. 양손의 총 72개 버튼을 눈으로 보고 누르는 게 아니라 손의 감각만으로 정확히 버튼을 찾아야 하는 데다가, 바람통을 열고 닫을 때 버튼의 음정이 달라지고 버튼 배열마저 불규칙해서 처음에 운지를 익히는 데 시간이 꽤 걸리거든요. 그래서 시작하고 얼마 안 돼 포기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하지만 반도네온이 내는 소리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인내의 시간을 감내할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 악기라는 걸 여러분도 느끼실 거에요.”

탱고 이야기를 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란다는 혜정 씨. 그녀는 반도레온 연주자이자 탱고 춤을 추는 댄서이기도 하다. 사실 탱고는 춤과 음악 둘 모두를 의미하기 때문에 탱고를 한다는 건 탱고 을 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음악을 연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탱고는 춤과 음악을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관계에요. 마치 탱고와 반도네온처럼요. 탱고 음악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고, 밀롱가(탱고를 추는 장소)에는 탱고 음악이 있어요.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탱고가 전성기를 달리던 1920~1940년대에는 밀롱가마다 탱고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가 끊이지 않았죠.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까지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밀롱가에서는 거의 매일 탱고 오케스트라의 라이브를 접할 수 있었어요.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춤을 추기보다 듣기 위한 탱고 음악을 하는 연주자들도 많아졌고, 전통 탱고 음악이 아닌 음악에 탱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생겨났는데, 이렇게 각자도생하기도 하지만 탱고 춤과 음악은 서로 태생적으로 함께였고 여전히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죠.”

탱고를 추고 반도네온으로 탱고도 연주하는 혜정 씨는 사실 반도네온보다 춤을 먼저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의 전통 민속춤인 탱고는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고 안은 상태에서 추는 즉흥 춤으로, 무용수들이 공중에서 회전을 하거나 다리를 번쩍 드는 화려한 춤과는 성격이 다르다. 탱고 춤에도 분명한 규칙이 존재하지만, 각자의 내밀한 경험들이 그 안에 녹아들면서 수백 수천 가지의 색깔로 다시 태어난다.

모두가 각자 자기만의 탱고가 있다고 생각해요. 파트너와 몸으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음악이 들려주는 드라마를 함께 해석하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것을 완성하는 것, 그게 저의 탱고예요. 듣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지 않나요? 탱고 춤의 매력에 빠져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춤을 배우러 전 세계를 돌아다녔고 지금도 여전히 파트너와 함께 탱고의 세계를 탐험 중이에요. 코로나19로 전 세계 탱고 커뮤니티가 얼어붙어서 정말 마음이 아프지만, 다행히 온라인으로 아르헨티나 선생님들에게 꾸준히 탱고 수업을 받고 있어요. 위대한 탱고 마에스트로들로부터 어릴 때부터 탱고를 전수받고, 그 유산을 잘 지키는 데 평생을 쏟고 있는 귀한 분들이죠. 수업 때는 탱고 동작만 배우는 게 아니라 수업의 반이 탱고 오케스트라와 탱고 가수들, 음악가들에 대한 것들이에요. 매주 탱고 음악인과 음악들을 듣고 조사하는 과제를 해야 해서 주말이 다가오면 마음이 바빠지지만, 그 과정에서 탱고 음악과 탱고 춤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돼요.”

오리지널 탱고 음악, 제대로 공부하고파

탱고에 푹 빠진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일까. 바로 2018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의 라 아카데미아 데 땅고 클럽(la academia del tango club)’이 주최한 워크숍에서의 공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혜정 씨와 동료 탱고 연주자 2명이 참여했고, 호주에 도착해서 2주 동안 하루에 9시간씩 워크숍에 참가했다.

워크숍이 진행되던 어느 날 오래된 교회를 빌려 밀롱가를 열던 사람들이 마침 저희에게 라이브 연주를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덕분에 아르헨티나, 멜버른 연주자들과 함께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는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함께한 연주자들은 처음엔 그저 타국의 낯선 사람들일 뿐이었는데, 무대 위에서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고 온전히 이해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서로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서라기보다, 탱고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들을 음악으로 서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탱고를 통해 세계인들과 하나가 되어 희열을 느낀 그녀는 작년 부산 공연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작년에 부산의 <데땅고>라는 밀롱가에서 첫 탱고 오케스트라 공연했을 때, 그 자리에 게스트로 함께했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르헨티나 댄서 커플도 기억에 남아요. 아무래도 다른 나라의 민속 음악을 연주하다 보니 우리가 연주하는 음악을 그분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는데, ‘이런 오케스트라가 한국에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언젠가 꼭 같이 공연하고 싶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죠.”

한국이든 해외든 그 사회가 예술가들에게 혹독한 환경이라면 연주자로 산다는 건 쉽지 않다. 많은 연주자들이 레슨이나 강의를 병행하고 있고, 완전히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도 많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한국, 아르헨티나 할 것 없이 모든 탱고 관련 예술인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 현실. 이러한 힘겨운 상황에 혜정 씨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춤을 추고 연주를 하고 탱고 음악을 공부하면 할수록 저는 근원의, 원형에 가까운 것들에 더 관심이 가요. 그래서 뭔가와 사랑에 빠지면 점점 더 깊은 곳을 향하게 되나 봐요. 세련된 현대 탱고 음악들도 참 좋지만, 100년 전에 탱고인들의 마음을 뛰게 했던, 투박하면서도 멋스러운 오리지널 탱고 음악을 제대로 더 공부하고 싶어요. 춤도 그렇고요. 저와 마음이 맞고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 내년을 준비하고 있는데, 새롭게 팀을 꾸려서 아르헨티나 탱고 뮤지션이자 탱고 오케스트라 디렉터 분들을 음악감독으로 모시고 제대로 탱고를 파보려고 해요. 운영 방식이나 주요 레퍼토리 등 중요한 논의들은 이미 마쳤고, 새해가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전에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팀을 이룬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이것도 코로나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길이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앞으로 어디선가 반도네온 소리와 탱고 음악이 들려온다면 꼭 잠시 멈춰서 귀 기울여 들어주세요. 탱고 음악을 듣고 감동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상미 기자 job@hkrecruit.co.kr

사진 제공 / 신혜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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