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회
상태바
내면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회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0.12.24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미지 코칭 / 황 성 신 교수(상담학 박사)

우리 사회는 무엇을 열망하게 하는가.

우리가 열망하는 것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조건들이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적어도 남보다 뛰어난 조건이 한 가지 정도는 있어야 한다. ‘누가 무엇을 하고 있다라는 말이 너는 여태 뭐 하고 있니?’라는 질책으로 들릴 때, 우리는 불안하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삶은 퇴보한 것이고, 성과없는 노력은 무의미하다라는 착시현상은 우리 마음의 쉼을 빼앗았다. 보이는 가치가 보이지 않는 가치를 대신하고 높게 평가되는 사회에서 우리 마음은 위축되어 생기를 잃었다. 우리가 왜 이리 바쁘게 쫓겨야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는 먼저 달리기를 시작했다.

 

내적 이미지인 본질을 지켜내야

나는 누구인가? 몸이 나인가? 생각이 나인가? 기분이 나인가? 소유가 나인가? 성공이 나인가?

우리 자신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내일의 내 모습을 꿈꾸며 달린다. 우리는 우리 문화가 암시하는 대로 높은 지위의 나, 솜씨가 뛰어난 나, 화려한 경력의 나, 실력을 겸비한 나, 든든한 인맥을 갖춘 나, 멋진 외모의 나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러한 것들은 모두 좋은 것들이다. 다만, 우리는 누구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타인을 의식하며 경쟁한다.

우리는 나를 개선하느라 열정을 쏟아부으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 같다. 몸이 부서지도록 쏟아부은 그 일(입시, 직장, 사업, 결혼 등)이 성과를 내었어도 우리 마음이 텅 비어 더 달리게 되는 것은 우리가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놓친 결과가 아닐까.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전에,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달려야 하는 법부터 배웠다. 오늘날 사회는 우리를 존재하는 자체로 가치를 부여하기보다 조건에 따라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은 고부가가치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질지 몰라도 그 존재가치를 우리는 가격으로 환산해낼 수 없다. 그의 존재가 값으로 평가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늘 그 자리를 지켜주는 우리 일상의 옆 사람들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 자들인데 우리가 그들의 조건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있다면, 우리는 소비문화에 너무 깊이 젖어 나 자신조차 상품화하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의 존재가치를 우리 시대의 문화사조에 의해 훼손당하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 그것은 우리가 열정을 다해 지켜내야 할 우리들의 본질을 지켜내는 일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나 바쁜 우리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분주한가?’ 되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개인의 이미지를 바람직하게 형성하고 가꾸어 가는 데 가장 우선적인 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미지 메이킹을 설계할 때는 외적 이미지인 현상보다 내적 이미지인 본질을 먼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고귀한 품성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성숙한 사회

OECD 국가에서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우리 사회의 상황은 암담하다. 참으로 눈부신 우리 사회의 외면과 달리 우리 사회의 내면은 짙은 어두움이 드리워져 있다. 정직한 습관, 이웃 간 오고 가던 따듯한 정, 부모에 대한 공경심, 형제 간의 우애. 이러한 미덕들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내적인 힘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우리 사회에는 물질이 관계보다 우선하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왔다. 가정에서 정성껏 마련한 음식보다 고급스러운 음식점의 접대가 자연스러워졌다. 유명한 맛집이 살려낸 엄마의 손맛과 고향의 정취는 우리 마음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진짜 우리 엄마의 손맛, 진짜 우리 고향의 정취를 대신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상품 ‘~닮은상품에 익숙해져 갔다. 먹는 것부터 시작하여, 입는 것, 사는 곳, 외모와 일상까지, 우리는 최고의 것들을 소비하는 고부가가치의 상품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배가 고프다. 엄마의 손맛 같은 맛집, 우리 고향 맛 같은 맛집, 이모네 같은 맛집, 왜 이렇게 닮은 것이 많은가. 엄마 손맛 같은 집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한 우리의 진짜 엄마는 이제 떨리는 손으로 간조차 맞지 않는 음식을 정성껏 사랑으로 준비하는데 우리에겐 그것은 엄마 맛이 아니다.

우리는 진짜 우리 엄마의 늙은 손맛은 외면한 채, 과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젊은 시절 엄마의 밥상을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는 철부지 어린아이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늙은 엄마 아빠는 요양원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한 조각 햇살에 의지한 채 그리움에 지쳐있는데 말이다.

이제 우리는 맛집을 찾아서,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서, 끊임없이 헤매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내 곁에 늘 함께 있지만, 아직도 낯선 그들이야 말고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그리움의 대상인지 모른다. ‘~같은’, ‘~닮은무엇인가를 따르려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면, 그 닮음의 대상이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를 견뎌주는 그들의 드러나지 않는 고귀한 품성이었으면 좋겠다.

가을날처럼 화려한 나뭇잎이 달려있어야만 나무이겠는가. 겨울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고 하여 나무가 아니겠는가. 그루터기만 남았다고 하여 그것 또한 나무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뿌리가 없는 나무는 나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무로서의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으로서의 고귀한 품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생명력을 잃은 뿌리 없는 나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 사회가 우리의 본질적 실체를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품성의 가치를 소중히 다룰 줄 아는 성숙한 사회였으면 좋겠다.

외적 조건들의 진정한 가치가 우리 내면의 올바른 품성을 담아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외적인 조건을 갖추느라 과도하게 경쟁하고 소비했던 시간을 찾아와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치열한 경쟁사회는 선의로 시작한 일들을 선의로 마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예기치 않은 상황 속에서 우리가 품은 선의는 위협받고 때로는 강한 저항을 견뎌내야 한다. 누군가를 향한 선의를 끝까지 지켜내는 일, 상황이 변하고 오해를 받아도 자신의 선의를 지켜나가는 일, 그 과정에서 우리의 사람다운 품성은 성숙하고 성장하게 될 것이다.

복잡하게 급변하는 현대 사회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우리의 품성이 휘어지기를 강요한다. 굳은 신념으로 올바른 마음을 지킨다는 것, 그것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황 성 신 교수(상담학 박사)

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

교육법인 한국이미지경영교육협회 자문위원

희원 상담원 대표

tohhss@daum.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