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인류의 역사를 이끈 이슬람교의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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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인류의 역사를 이끈 이슬람교의 음료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1.01.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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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교수의 커피이야기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사회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 출발선상에 섰다.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미래는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꿈을 꾸는 사람(인간)들이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人間)은 사람()과 사이()라는 글자의 합성어로, 인간의 본질은 사람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관계, 즉 네트워크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세계 인구의 0.3%밖에 안 되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차지하는 민족이 있다. 과학자 뉴튼과 아인슈타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세계 투자계의 큰손조지 소로스, 색채의 마술사 샤걀, 작곡가 쇼팽,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 앨런 그린스펀 등도 이 민족이다. 바로 유대인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초강대국이지만 이 미국을 움직이는 민족이 유대인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 내 유대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2%560만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미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유대인은 19세기 중반부터 월스트리트를 세계 금융업의 중심지로 키워냈고, 미국 전체 50대 기업 중 17개가 유대계 기업이다. 미국의 학계를 선도하는 아이비리그 교수진의 약 40%도 유대인이다.

와인이 기독교와 기독교 문화를 규정짓는 음료라면 커피는 이슬람교를 설명하고 특징짓는 음료다. 커피는 15세기 중반 콘스탄티노플에 소개되면서 1475년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그 무렵 커피를 독점 수입한 사람은 베네치아 유대인들이다. 당시 유대인만이 유일하게 이슬람 사회와 기독교 사회를 왕래하며 무역할 수 있었고, 커피 수요가 급증하자 예멘의 유대 상인들은 커피 독점 공급을 완벽하게 관리하기 위해 수출용 커피를 아라비아 반도 남단 모카항구에서만 수출토록 했다.

유대인들은 커피 반출을 엄격히 통제했고, 에티오피아 커피까지 모카로 가져와 수출해 커피가 모카 항구만을 통해 수출되면서 유럽 사람들은 커피를 자연스레 모카라 불렀다. 모카에는 3만 명 가량의 유대인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17세기 말까지 300년간이나 커피 무역을 독점했다.

커피를 대량 수입한 사람들 역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유대인들이다. 동인도회사 유대인들이 인도에 스파이를 보내 커피 원두와 묘목을 밀반출해 네덜란드 식물원에서 커피 묘목 재배에 성공한 후, 이 커피 묘목을 스리랑카 실론으로 가져가 대규모 재배를 시도했다. 하지만 해충 피해로 실패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1696년 커피 종자를 인도네시아 자바로 가져가 대규모 커피 농장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커피의 최초 대량 재배는 아시아에서 시작됐으며 그 후 유대인들은 커피 재배와 커피 교역을 모두 주도했다. 이슬람 신도에서 시작된 커피 소비는 아프리카 대륙과 중동 지방을 거쳐 유럽 대륙과 인도네시아, 아메리카, 아시아로 전해졌다. 유대인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고 한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하지만 역사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도 미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후회로 일생을 살지만 마지막 후회는 다 같다. ’후회에 시간 쓰지 말 걸하고 후회를 후회한다. 이제 후회는 기억 저 편에 두고 미래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자.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이라면 '희망은 찾는 자의 것'이다.

글 / 김수진 교수(백석예술대학교 커피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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