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농부, 정직하고 바른 먹거리를 제공합니다
상태바
밀양농부, 정직하고 바른 먹거리를 제공합니다
  • 이은지 기자
  • 승인 2021.02.25 15: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Design My Life / 권영빈 청년농부

누군가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을 자신의 선택을 증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몇 년 간의 직장생활 끝에 농부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이르다면 이른 나이이지만, ‘청년농부가 아닌 그저 땅을 일구는 농부로 비춰지길 원한다는 농부 권영빈 씨. 그는 자신이 농사짓는 땅 앞에 누구보다 진지하고, 건강한 열매만큼이나 진솔하다. 오직 농부와 땅만이 알고 있는 인내와 정성, 이에 건강한 작물로 보상받는 농사. 인터뷰 내내 그의 말 속에서는 농사라는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겠다는 다짐과 단숨의 결과가 아닌 정성과 인내를 통한 진짜 결실을 보여주고 싶다는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 ‘정직하고 바른 먹거리 제공이 비전이라는 농부 권영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경상남도 밀양에서 고추와 샤인머스캣 농사를 짓고 소 축사도 운영하고 있는 농부 권영빈입니다. KT, 농협 등에서 일하다 밀양 농부가 된 지 이제 1년하고 6개월 정도가 지났네요. 직장생활을 하긴 했지만,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셔서 농사를 자연스럽게 접했죠. 결국엔 나도 농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항상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어렸을 때는 농번기에 농사일을 돕는 게 너무 힘들고 싫어서 농부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아버지께서도 이렇게 일찍 농부를 직업으로 삼길 바라진 않으셨고요. 근데 일반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인정받아야 하는 상황에 압박을 느끼기도 하고, 회사가 달려가는 비전이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인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 여러 고민 끝에 결국 농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하하).

 

Q.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계절별로도 주된 할 일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2년 전, 개그맨 이진호 씨가 불러 유행했던 농번기랩을 아시나요? ‘아침 6시에 일어나 개밥 줘! 소밥 줘!’라는 가사로 시작해요. 이진호 씨가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정말 공감했어요. 노랫말처럼 저도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개밥 주고, 소밥을 주는 게 고정된 일과거든요(하하). 소밥을 주면서 소의 상태를 살피고 축사를 깨끗이 하는 일을 합니다. 200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한 마리 한마리 살피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요. 가꾸는 작물 특성상 1월은 조금 여유로운 시기라 축사에 더 비중을 두고 신경을 쓰고 있어요.

이제 조금씩 고추 재배와 관련된 업무가 시작되는 시즌인데요, 초여름까지 고추를 키워요. 고추는 작물 중에서 재배기간이 긴 편에 속하기도 하고, 병해충에도 약한 편이라 사실 재배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작물 중 하나에요.

3월부터는 샤인머스캣 순이 나기 시작합니다. 9~10월 추석 전쯤 재배하는데, 샤인머스캣을 가꿀 때 특히 당도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샤인머스캣 붐이 불면서 일부 농부들이 당도를 지키지 않아 샤인머스캣을 찾는 분들이 본래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해요. 정말 달고 맛있는 과일인데, 제대로 그 맛을 느끼지 못하시는 것 같아 아쉽죠. 그래서 엄격한 기준의 당도 검사를 통과한 개체들만 선보이고자 해요. 농사일을 하면서 내 작물들에 사랑과 정성을 쏟는 딱 그만큼 정직하게 맛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어요. 해가 거듭될수록 아버지께서 농부로서 참 정직하게 어려운 길을 걸어오셨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Q. 여러 고민들을 거쳐 농부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들이 이 길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나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어렸을 때에는 농사를 싫어했어요. ‘나는 농사를 짓지는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 저곳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직업을 거치다 보니, 농부만큼 괜찮은 직업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루하지도 않고, 누군가의 제재를 받지도 않고요. 농사를 짓고 나서부터는 힘이 들기는 하지만 내 인생이 보람찬 하루들로 꽉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사실 직장을 다니면서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했었어요. 고민하던 시점에 동생이 산티아고에 다녀왔는데, 형도 꼭 가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더라고요. 조금은 우발적으로 산티아고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죠. 일정을 다 세우고 회사에서 나와서 퇴직금과 실업급여라는 현실적 계산을 바탕으로 여행에 몰두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3개월간 축협을 준비했어요. 준비하는 기간에 밀양에서 부모님 농사일을 도왔는데, 그 때 농사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직을 하면 주중에는 회사에 나가고 주말에는 농사일을 해야겠다고 포부 있게 계획을 세웠죠(하하). 근데 막상 닥치니 절대 둘을 병행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한 가지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제 선택은 농사였습니다.

선택한 이유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더 이상은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직장에서 하는 일 자체,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로 너무나 혼란스러웠어요. 보기엔 그냥 평범했죠. 누구나가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래야지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근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평범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는 혼란만 남아있더라고요. 그래서 농사를 선택했고, 후회는 없어요. 정말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거든요(웃음).

농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가장 크게 깨달은 바는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보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 더 쉽다는 거예요. 늦기 전에 그만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더 늦었으면 하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너무 어려워져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 더 쉽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 같아요.

Q. ‘농부가 되길 잘 했다싶은 일상의 순간들을 꼽자면?
고추를 심고 고추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요. 정말 소소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먹을 수 있도록 작물을 재배하는 일은 정말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제가 이 작물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도 느끼고요. 사실 그 감사 뒤에 나눈 사람들로부터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인 것 같아요.
그리고 유독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축사에 쌍둥이 송아지가 태어났는데, 한 마리가 매우 약해서 어미소 젖을 빨 힘도 없었어요. 제가 직접 젖병을 물리고 돌보면서 자연스럽게 교감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건강히 자라고 있는데 건강한 모습을 볼 때마다 생명을 살렸구나!‘라는 뿌듯함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소는 저에게 좀 특별해요. 걔도 절 아는지 유독 다가오고 장난을 칩니다. 원래 소는 겁이 많아서 사람을 피하거든요. 근데 걔는 일부러 저에게 박치기를 하면서 친근감을 표시해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한 번 더 살피게 되더라고요.

농사로 일의 자율성이 생기면서 얻게 된 몇 가지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도 있어요. 저희 동네에 저수지가 몇 개 있는데 햇살을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면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요. 그리고 비닐하우스 안에 작은 티테이블이 있는데 거기에 라디오를 하나 뒀어요. 거기서 자라는 고추를 보면서 커피도 한 잔 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에요.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세상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같고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힘들거나 어려웠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순간 하나를 꼽기 어려울 만큼 매 순간 힘들어요(웃음). 아직 완벽하게 숙지해서 체화되었다는 느낌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차츰 농부로서 저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굳이 하나를 꼽자면 아버지와 부딪히는 게 가장 힘들어요. 이미 시행착오를 다 겪어보시고, 쉬운 길을 말씀해 주시는데 저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보는 거죠. 지금은 일단 내가 잘 모르겠는 것은 아버지의 방법을 따르는 방향으로 일하고 있어요. 때로 제가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일단 해보고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허심탄회하게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어요. 항상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은데 그것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매번 아버지와 대화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아버지께 배워야 할 점이 정말 많구나 싶고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니, 저도 후에 제 아들이 농부의 길을 선택한다면 아버지처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들이니까 더 바르게 하라고 혼내고, 더 부지런하라고 귀찮게 하고. 잘 됐으면 하는 마음과 애정에서 나오는 행동들이잖아요(웃음).

 

Q. 이 시대를 살아가는 농부로서 나만의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앞선 이야기와 결을 좀 같이 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일단 나의 식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해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일을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거든요. 농부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결국 농사일을 해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부딪히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평가나 방법보다 직접 부딪혀서 얻게 된 나의 신념과 자유를 가지고 밀고 나가자는 태도로 일하고 있어요.

농부로서의 권영빈은 작물에 사랑과 정성을 지금보다 더 쏟아야겠다는 생각이 커요. 그래서 그 작물에서 비춰지는 농부의 모습이 성실진짜일 수 있도록 계속 나아갈 거예요. 그래서 누구든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농부가 되고 싶어요. 성실과 신뢰를 전달하는 방법에 즐거움과 유쾌함을 더해서 제 작물을 선사하고자 해요. 나아가 이 마음을 그대로 담아서 정직하고 성실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농부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저를 표현하고 싶어요.

Q. ‘청년농부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고 싶은데요.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청년농부라고 불리는 걸 원치는 않아요. 청년농부라는 타이틀을 빌미삼아 사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기도 해서요. 단지, 농부로서 인정받고 싶습니다. 정직하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드실 수 있는지 안내도 해드리고 싶어요. 이제 재배를 앞두고 있는 샤인머스캣의 경우에도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장비를 마련해서 정확한 당도 수치를 도달한 작물들만 판매하고자 해요.

 

Q. 마지막으로, 농부로서의 목표와 인생의 목표를 소개해 주세요.
농부로서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정직하고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으면 굉장히 작은 부분들까지 신경써야 해요. 그래서 놓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이 생기는데요, 이 부분들도 타협하지 않고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매일 해야 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엔 건강을 좀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직하고 바른 먹거리를 오랫동안 제공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장기적인 인생의 목표는 축사를 하나 더 짓는 것입니다. 지금의 축사는 아버지가 일구신 것인데요, 아버지가 이루신 것을 제 스스로 하나 더 이루고 싶어요. 축사가 하나 더 생기는 날,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 이은지 객원기자 leeeunji_0220@daum.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