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어떤 회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앞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지향하는 삶을 살고 싶은지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돈을 버는 과정은 나를 더욱 나답게 하는 창조의 행위가 될 수 있다. 1인 기업으로 첫 걸음을 내딛는 박서연 디자이너를 만났다. 그가 살펴본 스스로는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걷기로 한 길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UNCOATED(이하, 언코티드)’에 담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브랜드 경험을 기반으로 다양한 디자인 영역을 탐구하는 디자이너 박서연입니다. 최근, 언코티드라는 이름으로 1인 기업을 시작했어요. 디자인이 필요한 기업과 재단, 소상공인 등과 함께 브랜딩, 인쇄물, 패키지 등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 디자이너로서 1인 기업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언젠가 회사의 도움 없이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올해 초,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퇴사하면서 다른 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디자인 에이전시 특성상 제한된 시간 내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매일 작업량이 많을 수밖에 없었어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위주로 하는 에이전시여서 브랜드 스토리와 컨셉 등의 기획부터 전체적인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일을 했습니다. 덕분에 넓이와 깊이를 모두 배울 수 있었어요. 매일을 일로 꽉 채워 보내면서 느끼는 성취감도 있었지만, 본래의 저는 휴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다방면에 소소한 관심을 지향하는 사람이라 디자인 업무 외의 일상에 시간을 내기 힘든 것이 늘 고민이었습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또 다른 기업으로 이직을 한다 한들 과연 내가 ‘회사’라는 조직 체계에 잘 맞는 사람인가를 생각하며 조금 심란하면서도 독립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이 그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수단이 아니라 직접 사회와 기업에 의미 있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주체적인 영역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의사결정에 의해 본래 의도와 다른 작업을 하고 싶지 않았고, 좀 더 주체적으로 일과 삶을 대하고 싶었어요.
고민하던 차에, 과거 같이 일했던 팀장님으로부터 프로젝트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것을 시작으로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로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1~2년 동안은 최대한 많은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수행하면서 다양한 영역에 도전하면서 실수도 해보는 기간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실수를 하더라도 스스로를 용서하면서 그것으로부터 성장의 실마리를 찾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3. 디자인 분야도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고 알고 있는데요, 언코티드는 주로 어떤 분야의 디자인 업무를 하시나요?
주로 브랜드의 전체적인 디자인을 다룹니다. 브랜딩이라고 하면 보통 ‘로고’를 많이 생각하시더라고요. 브랜드 디자인에는 로고 작업도 포함되지만, 로고를 만들기 전에 브랜드를 나타낼 수 있는 비주얼 컨셉과 분위기를 설정합니다. 그것을 토대로 로고와 색상, 폰트, 인쇄물, 패키지 등의 시각적인 요소들을 작업하죠. 생각보다 넓은 범위의 일이라 어떤 일을 한다고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들어요.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디자인이라는 틀 안에서 최대한 많은 영역을 다루자’는 생각입니다.
4. 언코티드라는 이름에 포장되기 전의 브랜드 본질, 날 것부터 꿰뚫는다는 의미를 담으신 게 아닐까 추측했습니다. ‘언코티드’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건가요?
거창한 뜻을 담았다기보다 이름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떠오르는 단어들을 나열해서 주변분들의 의견을 받아 선정했습니다. 색채 전문 회사인 팬톤의 언코티드 컬러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코팅지보다 구현된 색이 흐릿하고 내구성도 약하지만 종이 자체의 질감이 포근하고, 자국 같은 것도 그대로 남아서 시간의 흐름이 반영되는 거라 생각하니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본질과 목적을 잃지 말자’라는 개인적인 의지도 담겨있고요.
5. 지향하는 디자인이 궁금합니다. 디자인을 하실 때 어떤 부분에 집중하시는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등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원하시는 것을 대신 만들어 드리는 대리 작업자로서가 아니라, 통합적인 사고와 고민 끝에 답을 제시하는 전문가로서 디자인에 임합니다. 디자인이 하청 정도에 불과한 작업으로 취급이 될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에는 디자이너로서의 문제 해결보다 현실적으로 어느 선까지 작업을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디자인 요소보다 보이지 않는 ‘문제’에 집중했을 때 디자인 작업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당장 눈에 보이는 스킬보다는 본질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렇게 했을 때 작업을 의뢰해 주시는 분들과 저 또한 훨씬 만족할 수 있는 결과들이 나오는 경험도 했고요. 그래서 이런 작업 방식을 존중해주시는 분들과 협업할 때 즐거움을 느껴요.
그리고 디자인 작업 자체가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유해하지 않고, 옳은 가치를 위한 작업을 지향합니다. 굉장히 이상적인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지향을 가지고 작업을 했을 때, 도출되는 작업물 자체가 끼치는 영향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인쇄할 수 있는 종이나 잉크, 후가공법을 선택하실 수 있게 설명해드리는 것도 저의 지향점에 부합하는 일 중 하나에요. 어떤 대상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프로젝트인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요.
6. 신생 기업이라 생소한 분들이 많을 텐데요, 언코티드의 느낌을 잘 알릴 수 있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무엇이 있을까요?
언코티드만의 느낌보다는 각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것이 우리의 작업 스타일이야’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프로젝트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의도와 과정에 공감했던 프로젝트로는 ‘2021 NPO 파트너 페어’입니다. 비영리 생태계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박람회 작업이라 디테일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거의 처음 시도해보는 3D 조형물과 그라데이션의 조합을 사용했어요. 온라인 박람회라는 특성에 맞게 디자인을 구현했습니다.
7. 언코티드의 느낌과는 별개로,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어떤 이유로 기억에 남는지도 궁금해요.
작업명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독립 후 처음 맡았던 프로젝트가 기억이 나요. 대형 카페의 전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당했습니다. 로고 디자인의 80% 이상이 진행된 상태에서 클라이언트가 갑자기 그동안의 컨셉과는 전혀 다른 요소들을 넣기 원하셨습니다. 제안하신 방향은 인쇄나 사인물 제작 등에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의도한 브랜드의 컨셉과는 어울리지 않아 혼란을 초래할 수 있었어요. 급하게 설득할 자료를 정리하여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했습니다. 비용적인 면과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설명을 드렸더니 흔쾌히 의견을 존중해 주셨고 원래의 취지대로 진행할 수 있었어요. 독립 후 처음으로 맞은 난관이었는데, 디자이너로서 설득에 성공을 경험하면서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에 조금 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8. 언코티드가 다른 디자인 기업들과 무엇이 다른가요?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요?
언코티드를 찾아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재단, 소규모 단체, 자영업자 분들입니다. 1인 기업을 찾아주시는 이유는 빠른 소통과 유연하면서 협력적인 자세, 합리적인 견적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언코티드는 일반 디자인 회사의 80% 수준의 단가로 진행하고 있으나 작업 면에서 빠른 공장식 작업은 지양하고 있습니다. 견적과는 관계없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획과 브랜드의 전체 컨셉을 위한 스토리를 잡는 것에 좀 더 힘을 씁니다. 큰 규모의 회사들보다 작은 규모의 조직들과 일을 하면서 컨셉을 위한 스토리를 잡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또 시안은 한두 개의 시안만 제시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시안을 10개 이상 제시하고 그 중에 클라이언트가 고를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 업체들도 있긴 하나, 그렇게 되면 디자이너가 개수를 채우기 위한 작업을 하게 되고, 결국 인터넷에 떠도는 템플릿이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경쟁력 없는 결과물이 도출돼요. 그래서 한두 가지의 좋은 시안을 만드는 데에 집중합니다.
9. 디자인을 하지 않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작업을 하지 않을 때 하시는 일이 디자인 작업에 영감을 주기도 하는지요?
작업을 하지 않을 때에는 의도적으로 디자인 작업과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해요. 전혀 다른 일을 접하려고 노력하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방면에 소소한 관심이 있기도 하고요. 몰입되어 있던 일에서 빠져나와 전혀 다른 일들을 하고, 제 작업을 돌아보면 좀 다른 시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마냥 손 놓고 쉬는 것보다는 쉼과 새로운 영역에서의 배움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습니다. 특히 책을 자주 읽어요. 책으로부터 앞으로 내가 어떤 작업을 하며 이 작업을 어떻게 어필해야 살아남을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도 합니다. 가보고 싶었던 아름다운 장소에 가거나 예쁜 물건들을 파는 곳에 가서 구경하는 것도 좋아해요. ‘이건 이렇게 인쇄했구나, 이건 이렇게 진열하니까 예쁘다‘ 같은 생각들이 들어요. 좀 무딘 편이라 의식적으로 촉각을 세워서 관찰하고 생각합니다. 의식적으로 영감을 얻는다고 표현하면 좀 어색할까요?
10. 앞으로 언코티드를 찾아주실 여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결국은 사람을 위해 작업을 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저는 사람과 작업의 연결성과 그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규모와는 상관없이, 작업이 끝나고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사랑 받고,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제가 또 다른 디자인 작업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작업의 경제적 보상이 디자인 작업을 존중하는 선에서 책정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 기본 전제이고요(하하). 디자인이 겉으로 드러나는 작은 요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함께 브랜드에 대해 기획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동행함으로써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분들과 협업하고 싶습니다.
글 / 이은지 기자 leeeunji_0220@hanmail.net
사진 / 김민진 객원기자 kminjin0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