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다루는 안전한 공간, 정신분석센터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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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다루는 안전한 공간, 정신분석센터 판도
  • 이은지 기자
  • 승인 2022.02.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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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 홍성희 정신분석센터 판도 대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훌쩍 귀촌해서 10여 년을 자연과 함께 살며 정신분석 공부를 했다. 그러다 정신을 다루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겠다며 서울에 다시 터전을 잡은 사람, 공간을 정성스럽게 꾸미고 사람들에게 따듯하게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 있다. 정신분석센터 판도의 홍성희 대표이다. 그를 만나 치유와 회복으로 채워졌던 인터뷰 기록을 공유한다.

Q. 이곳까지 걸어오는 길도, 판도 사무실도 참 예쁩니다. 공간 구성에 세심하게 신경쓰신 것 같아요.

처음 판도를 시작할 때부터 공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무엇보다 품격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고통이나 정신을 다루는 장소라면 장소 자체도 품격 있고 존중받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1년 반 전에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요. 정동길을 다니면서 사무실 임대 나온 건물이 있는지 엄청 물어보고 다녔어요. 이 길이 참 예쁘잖아요. 여기로 걸어오는 시간과 나가는 시간도 중요하거든요. 상담이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시간을 온전하게 비우는 용기, 참여 장소로 걸어가는 시간과 수고,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서 그날을 되새기는 시간들. 모두 소중한 과정이고, 그래서 정동길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무실은 제가 일이 잘 안 풀려서 사무실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힘든 시기에 발견했어요. 멋진 야외 테라스며, 옛 건물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벽난로며, 이 공간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해버린 거예요(하하). 전에 상담을 진행했던 내담자 분들도 우리를 믿고 이 공간으로 함께 넘어오셨는데요, 다들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Q. ‘판도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미국 유타주에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시나무숲이 있는데 그 숲 이름이 판도예요. 그리고 라틴어로 뻗어나간다는 뜻이 있기도 하고요. 전에 시민단체에서 일할 때는 세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활동을 했었죠. 상담은 방에서 내담자를 만나는 닫힌 활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담자 역시 정신적으로 계속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하나의 씨앗에서 뿌리가 내리고 큰 숲을 이루는 모습에서 판도라는 이름을 가져왔어요.

그리고 우리는 정신분석적 심리상담을 주요 방법으로 쓰고 있는데요. 정신분석은 역사상 최초의 심리상담 이론이에요. 그런 점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유기체 중 하나인 판도와 그 의미가 잘 연결되기도 하고요.

Q. 전에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셨군요. 시민단체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떤 과정을 거쳐 판도를 열게 되셨나요?

20대 중반부터 여성민우회 지부와 참여연대에서 활동했어요. 참여연대에서는 아카데미 교육 기획 쪽 일을 했었죠. 세상이 많이 변하던 시기였는데, 교육도 아젠다나 굵직한 정책들 중심에서 조금 더 미시적이고 일상의 삶에 주목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민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그 과정에서 좋은 상담사 분을 만났고 그 분께 상담을 받기 시작했죠. 그때는 저도 조금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강원도 춘천으로 귀촌을 가서 삶의 양식을 완전히 바꾸고 살았거든요. 심리와 정신분석 관련 공부는 귀촌해서도 쭉 이어왔고요. 그러다가 마흔이 넘으니까 도시에서 일하고 싶어지더군요(하하).

우선은 개인이 건강해야 사회도 건강한 거니까, 개인이 건강해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주변에서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을 하라고 권유하셨는데 저는 내담자로서의 권리를 상품으로 보고 상담의 질은 확실히 보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그래서 영리로 출발했죠. 이곳에 오면 좋은 상담사를 만날 수 있고 비밀이 보장되면서 안전하다는 확신을 내담자 분들께 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판도가 탄생했습니다.

 

Q. 판도만의 가치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신을 다루는 안전한 공간이 판도의 모토에요. 내담자도 상담자도 이곳에서 모두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합니다. 여기 오셔서 작업하시는 분들 모두가 저는 정말 용기 있고 아름다운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을 품격 있는 공간에서 잘 맞이하는 일이 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판도는 소비자로서의 내담자 권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우리는 상담사들의 수련 정도나 과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반면, 상담사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치료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믿기 때문이죠. 판도는 일방적으로 상담이나 치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아요. 각자 오셔서 자기 작업을 통해 정신적인 영역에 접근하는 것이죠. 각자 삶의 크기에 따라 정신의 영역도 다 다르기 때문에 정리된 매뉴얼이라는 건 없어요.

결국은 내가 나 자신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우울증이 있을 때 약을 먹고 바로 해결하려는 시도보다는, 우울을 인정하고 안고 가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울은 완전히 극복되거나 없애버릴 수는 없거든요. 왜 그렇게 극복하고 싶은지, 과연 극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죠. 사실 우울이나 강박이 우리에게 주는 힘이 있어요. 가령 회계사의 경우 강박에서 오는 힘이 있기 때문에 업무 수행률이 높기도 하거든요.

사실 사람은 연약해요. 내담자도 상담자도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연약하고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 다음을 도전하면서 거기서 많은 잠재능력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감정은 능력입니다. 그 어떤 감정도 필요 없는 감정은 없으며, 감정의 잠재능력을 스스로, 또는 함께 발견하는 곳이 건강한 공간이고 그게 바로 우리가 꿈꾸는 공간입니다.

Q. 그동안 판도가 비영리단체나 비영리활동가들을 위한 별도의 활동을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해오셨나요?

3년 동안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등과 함께 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특정 이슈들이 조금 어려울 수는 있는데 활동가라고 해서 다른 분들과 마음의 상태가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생애주기에서 대부분 비슷한 문제와 상황들을 마주하며 살아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정신적으로 성숙한 개인이 더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모토 하에, 개별적으로 오시는 활동가분들이 심리적 내면을 잘 들여다보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저도 계속 고민을 하고는 있는데요. 예전에 정혜신 박사님이 시민단체 심리 컨설팅을 해주신 적이 있었어요. 그때 박사님이 짱돌을 든 사람들을 후방에서 힘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서포트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에 저도 많이 공감이 됐어요. 판도가 지금 당장 효과적인 활동을 펼칠 수는 없겠지만, 활동가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실 판도는 힐링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활동가들이 자기 안의 신념을 가지고 삶을 이끌어나가는 데 리프레시할 수 있는 찰나의 틈이라도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 NPO 파트너 페어에서 판도힐링박스를 소개했습니다. 아직은 상담의 영역이 시민운동가 분들께는 낯설 수도 있어서 힐링으로 조금 더 쉽게 접근해 보려고 했어요. 하지만 결국에는 판도라는 공간을 경험하면서 자기 작업을 하는 과정을 거쳐 갈 수밖에 없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두어야 힐링박스나 툴킷 같은 도구들이 효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의 심리 지원을 고민하고 계신 조직이 계신다면, 맞춤형 교육이나 조직 힐링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우리가 함께 기획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전에는 수업을 열고 원하시는 분들이 들으실 수 있게 했는데, 이게 정말 맨땅에 헤딩이더라고요(하하). 우리에게 문의를 해주시면 조직이 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을 잘 조율해보겠습니다.

Q.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많은 것들이 비대면으로 행해지는 시기에 판도는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아카데미 프로그램 중에 3년 동안 이어지는 수업이 있어요. 3년이라는 긴 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만족도도 높고 이탈자가 거의 없습니다.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3년 동안 참여하겠다는 각오를 다지신 분들이 모였기 때문이죠. 사실 3년 동안 계속 이 공간에 찾아오고 사람들과 만나는 게 쉽지 않고 불편한 일이거든요. 하지만 그 불편함에 대해 생각하고 감정을 이끌어내고 계속 이어가다 보면 자신감도 찾게 되고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대면이든 아니든 그 아날로그적 경험과 불편함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죠.

하지만 결국 공간이 주는 경험을 대체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내담자 분들이 수고스럽게 공간에 오고 공간에 머물고 되새기며 돌아가는 시간들, 상담사들도 상담이 끝나면 공간을 매만지고 정리하는 것도 모두 과정의 일부이니까요. 1년 동안 계속 찾아주시는 분들의 표정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감지하며 우리는 보람을 느끼는데, 이게 어떻게 온라인으로 가능할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비대면 환경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요즘에는 대면의 영향력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비대면이 강조될수록 대면이 중요해지는 그 틈새가 바로 판도만의 가치가 드러나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Q. 판도의 주요 프로그램들을 소개해 주세요.

언제든 판도 홈페이지에 방문하셔서 <판도심리상담 신청하기>에 고민되는 점을 남기시면, 남겨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심리상담 매니저가 연락을 드립니다. 상담 일정을 확인하고 상담료를 결제한 후에 예약하신 시간에 판도 사무실을 방문하시면 전문상담가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심리상담이 이어집니다.

상시적으로 열려있는 상담 이외에도, 시즌에 맞추어 판도 아카데미가 진행됩니다. 현재는 <판도아카데미 시즌8: 영혼의 가드닝>이 진행중입니다. 영혼의 가드닝은 예술심리치료를 이용한 1:1 맞춤형 단기코스부터, 그룹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자신의 감정을 살펴볼 수 있는 소수정예 그룹형 클래스, 짧은 이벤트의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판도 홈페이지에 들러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주세요.

Q. 판도가 앞으로 더 크게 꿈꾸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가 꿈꾸는 것 중의 하나는 플랫폼이 형성되는 거예요. 예전에 어릴 때 껍데기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장사가 굉장히 잘 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여기가 장사가 잘 되니까 주변에 있던 다른 껍데기 집들도 덩달아 장사가 잘 되는 거예요. 사장님이 나 혼자만 잘 사는 게 아니라 나는 이 골목을 함께 먹여 살리는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어요. 그 점은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상담 분야도 각자 영역에서 활동하다가 그 골목 네트워크처럼 필요할 때 연대할 수 있다면, 어떤 사회적 위기가 와도 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개인 치료사 분들은 고립되어 있기 쉬운데, 판도처럼 공간에서 안전함을 보장받을 때 상담이 더 큰 힘을 발휘하듯이, 우리도 플랫폼을 중심으로 느슨하게라도 연결되어 있다면 든든할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분노와 울분 상태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좀비 영화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건 지금 사람들이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 살고 있고, 울분과 공포라는 자극에 반응하면서 삶을 버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내 몸이 곧 전쟁터인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것이죠. 이럴수록 이게 나만의 감정이 아님을 서로 발견하고 감정과 감정이 서로 만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그 과정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것이 있거든요.

저는 제 정신이 살아있는 순간까지 상담을 하고 싶어요. 정신 작업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제 자신의 삶의 의미가 되었어요. 정신분석을 만나 일상이 풍성해지고, 자기 내면을 만나고 관계적인 성숙을 이루는 그 모든 과정을 제가 참 좋아해요. 그 과정에 여러분도 초대할게요. 언제든 문 두드려 주세요.

/ 이은지 기자 leeeunji_0220@hanmail.net

사진 | 정신분석센터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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