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동물농장의 주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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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동물농장의 주인이 되다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22.06.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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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의 대중문화 칼럼 / 문화기호읽기 4
노진화 박사(밸류커뮤니케이션 대표)

조지 오웰이 1945년에 발표한 동물농장1917년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스탈린주의 시대로 이어지는 사건을 반영한 정치 풍자소설이다. 스토리는 이렇다.

메이너 농장에 살던 동물들은 인간 존스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수퇘지 메이저와 스노볼은 동물을 모아 낙원을 건설하자고 한다. 마침내 혁명이 일어나고 7개의 계명으로 구성된 동물농장이 만들어졌다.
주도자였던 메이저가 죽자 신진세력 나폴레옹은 스노볼을 반역자로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했다. 그는 동물들에게 환상적인 미래 설계도를 제시했다. 그러나 특권, 부정, 부패, 살인을 저지르며 불만이 있는 동물들을 공포로 제압했다. 동물들은 이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지만 힘든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동물을 위한 7계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나폴레옹만을 위한 규칙으로 수정되었다.

어느 날, 동물농장 이름이 인간이 불렀던 메이너 농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돼지들은 인간처럼 옷을 입고 두 발로 서 있었다. 동물들은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초판(1945.8.17. 영국)

권력의 탄생

역사적으로 정의를 외쳤던 혁명의 시작은 세상을 바꿔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혁명가들이 권위주의에 빠지면 법의 허점을 이용해 부와 권력, 명예를 자기 몫으로 돌린다. 새로운 혁명의 담론과 논쟁들은 더 잃을 것에 대한, 더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이용하고 분노하는 자들로부터 더 강한 지지 기반을 얻는다. 권력이 무서운 이유는, 정의가 자기에게만 있다는 착각을 가질 때다. 조지 오웰은 이러한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의 모순,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적 한계를 소설로 비판했다.

소설 동물농장에서 신진세력 나폴레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 가지를 사용한다. 첫째, 선동과 선전과 가짜 뉴스다. 그들이 자주 불렀던 노래는 영국의 동물들이었다. 동물들은 구호를 부르짖으며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비밀문서를 만들어 그것이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둘째, 증오의 대상은 추상적이다. 동물들이 불평하면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를 큰 소리로 외쳐 불평을 잠재웠다. 뭐든 잘못된 일이 생기면 모두 스노볼이 그랬다고 모함했다. 어딘가에 적이 있어야 고통을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돼지들만을 위한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처음의 규칙은 모든 동물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7계명은 ’, ‘지나치게’, ‘이유 없이’, ‘어떤 동물들이라는 단어가 추가되거나 삭제되었다. 그것은 돼지들을 위한 특권이 되었다. 동물들이 항의하면 상상이며 꿈이었다고 주입했다. 길든 개들은 돼지의 명령을 준수했고, 감시받던 동물들은 정해진 시간에 군대식 대형을 지어 농장 구내를 행진해야만 했다. 나폴레옹은 신화적 인물이 되었다.

 

인간이 되고 싶었던 돼지들

동물들의 반란은 자신들도 인간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후부터였다. 인간은 동물이 생산한 알과 우유, 도축된 고기 등을 얻기 위해 노동력을 착취하고, 생산물을 도둑질해가는 강한 존재였다. 또한 권력, , 명예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동물들은 인간을 증오한 동시에 부러워했다.

어떤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은 곧 생존에 대한 강한 욕망이다. 니체는 권력의지에 의해 촉발된 약자의 격정, 복수감을 르상티망이라고 정의하였다. 권력의지는 곧 힘의 의지다. 그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다. 그러나 인간에게 해방되고 싶었던 동물들은, 인간을 꿈꾸던 돼지로부터 또 다른 권력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다.

나폴레옹의 대변인 스퀼러는 상황이 더 어려워질수록 선과 정의를 위해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말했다. 곡식 창고가 바닥나고 동물들이 굶어 죽게 되었어도 돼지들은 배불리 먹고 마셨다. 동물들은 권리를 빼앗긴 줄도 모르고 연설을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복종을 다짐했다.

막스 베버는 국가의 지도체계를 세 가지 권위로 구분했다. 전통적 권위는 오랜 관행이며, 법적 권위는 규칙의 합법성으로부터, 개인의 권위는 비범한 자의 카리스마로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돼지들은 전통을 없애고, 법을 바꾸었으며, 나폴레옹에게 추종을 강요했다. 세 가지 권위의 총합이었다. 하나 더 충분한 조건은, 출세를 꿈꾸는 동물들은 자율적으로 충성 경쟁을 발휘하는 것이다. 눈이 어두워진 동물들은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기꺼이 생각도 바꾸고 말았다.

 

권력의 주체는 누구인가

동물들은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고자 기술을 익혔고 글을 배웠다. 그러나 쥐, 토끼들은 행동이 언제나 그대로였고, 고양이는 지붕 위로 도망가고 말았다. 당나귀는 글을 읽었지만,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반면 돼지들은 완벽했다. 지식이 곧 권력이었다.

과거 한국 사회도 동물농장처럼 사회 위계와 권력의 힘은 국가국민, 선생-학생, 기업-이해관계자, 부모-자녀, 주체와 대상은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 속에서 전문가들과 힘 있는 자들은 우위를 점령해왔다. 군대, 종교, 시설 등의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기준이 더 강력했다. 암묵적인 복종에 길들여진 사회구조 체계 속에서 정당함을 외쳤던 힘없는 자들도 불이익 때문에 타협점을 찾거나 포기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대신 규칙을 잘 따르면 보상을 받았다.

미셸 푸코는 니체의 권력개념을 지식과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 관계라고 말했다. 지식과 권력은 각자의 축이 되어 질서와 문명을 만들어낸다. 어떤 질서에 저항하거나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근거가 되는 지식이 필요하다. 무지하다면 권리가 누군가에게 양도되고 만다. 동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무언가를 깨닫고 나면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우리 인생에 돼지가 주인이 되지 않으려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것이 정당한가?”라는, 부당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아무도 하지 못했던 본질적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눈 먼 무지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생각의 주체, 능동적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연대는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 혁명은 권력의 주체가 변하는 한 계속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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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화 박사는…

인터랙티브콘텐츠 박사

밸류커뮤니케이션 대표(現)

인하대학교 인터랙티브콘텐츠 &인지기호 LAB 연구원

(전) 한국인터넷진흥원 비즈니스 평가위원

(전) 한국우편사업진흥원 심사위원

(전) 송파구청 자문위원

realrojin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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