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KOREAN 이은아 호주한인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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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KOREAN 이은아 호주한인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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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1.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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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 GLOBAL KOREAN


肝에 푹 빠진 간 전문가



이은아

호주 한인 의학박사


호주 한인사회에 의학박사 1호가 탄생했다. 7년 전 호주 한인들 중에서는 최초로 내과 전문의 자격을 땄던 이은아 박사(여·35·Alice Lee)가 그 주인공.

그는 지난해부터는 모교인 시드니대학교 의과대학에도 출강하며 간(肝) 전문가로서의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냥 어릴때부터 부모님이 ‘너는 크면 좋은 의사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언니 오빠들한테는 안 그랬는데 유독 저한테만 그러셨지요.”
그 말 때문이었을까. 그는 자연스럽게 병든 사람을 고칠 수 있는 의사의 길을 걷게 됐다. 가난한 나라에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병을 고치며 더불어 살겠다는 작고 예쁜 꿈도 키워왔다.

이박사는 최근 시드니대 의대에서 <간 질환에 대한 연구(Azathioprine-induced hepatoroxiaty:mechanisms of cellular injury)>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91년 시드니대 의대를 졸업(Honor Degree)한 그는 96년 호주 한인들 중 처음으로 소화기내과 전문의 자격을 딴 데 이어 이번에 다시 호주 한인 사상 최초의 의학박사로 탄생한 것이다.
이민 역사 30년을 바라보는 호주 한인사회에서 이제 많은 한인 1.5세대들이 전문직으로 진출하고 있지만, 의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박사는 소화기내과 중에서도 간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 왔다. 간염 간암 등 한국인들이 유독 간 질환이 많기 때문이었다. 2남 2녀 중 둘째 딸인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미국계 컴퓨터 회사에 근무하는 아버지의 직장 이동에 따라 호주로 이민을 왔다. 당시로서는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한국 식품점도 시드니 전체를 통틀어 한 곳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초기 이민생활이 다 그렇듯 아버지는 직장과 함께 세컨잡을 갖고 어머니도 공장일 바느질 과수원일 등을 하며 함께 집안을 이끌어왔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당시 호주로 이민 온 사람들 모두가 많은 고생을 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고 근면하게 사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 되자’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저는 공부를 잘했다기보다는 욕심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남이 잘하는 건 나도 최소 그만큼은 하고 가능하면 그보다 더 잘하자는 목표를 늘 가졌습니다.”

그는 처음에 영어도 안 되고 동양인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어디를 가든 놀림감이 되곤 했다. 분명 아이들이 놀리기는 놀리는데 그에 대처할 방법이 없으니 더욱 답답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무조건 영어를 파고들었다. 그는 지금도 처음 이민 온 학생들이라면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영어를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공부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마침내 영어로 전교 1등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Marist Sisters College, Woolwich)를 ‘닥스(Dux : 전교 1등)’로 졸업하는 동시에 당시 HSC(한국의 대입수능시험) 성적이 한인 자녀 중 최우수로 인정돼 상공인연합회의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시드니대 의대에 진학한 그는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개업을 할 것인지 대학에 남을 것인지를 놓고 잠시 고민을 했다.

영어부터 파고들어야
호주에서는 의대를 졸업하면 곧바로 GP(General Practioner) 자격을 갖고 개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고생하는 부모님께 당장이라도 힘이 될 수 있었다.
그는 후자의 길을 택했고 대학 졸업 후 6년 만인 96년 내과전문의 자격을 획득했다. 소화기내과 전공인 그의 내과전문의 자격 취득은 당시에도 커다란 화제가 됐다.
호주 한인들 중에서는 최초로 나온 내과전문의였고 현재까지도 모든 과목을 망라해서도 전문의 자격을 가진 한인들은 5~6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박사과정으로 올라갔다. 호주 정부병원이나 대학병원 같은 큰 병원에 들어가려면 박사학위가 필수 조건이었고 그는 과감히 도전장을 냈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호주 한인 최초의 의학박사로 다시 태어났다.
이박사는 현재 시드니대 부속 콩코드병원에서 ‘Director of Liver Services’로 활동하고 있으며 캔터베리병원에서는 ‘Visiting Medical Officer’로 일하고 있다.

콩코드병원에는 9명의 소화기내과 전문의들이 있어 그들과의 다양한 연구 활동과 진료 활동을 통해 지식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한인 밀집지역인 캠시와 이스트우드의 개인 진료실에서 환자를 진료한다.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중국인 남편 고돈 리(Gordon Lee)씨 사이에 7살, 2살배기 두 아이를 두고 있는 이박사는 의사로서 뿐 아니라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임무(?)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병원 업무가 끝나면 직접 차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들과의 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이러한 그에게 2003년은 또 하나의 중요한 시기로 다가온다. 자신의 모교인 시드니대 의대 교수로 강단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저한테 오시는 분들 중에는 제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기도 하고 불안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중에는 모두 달라지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릴 수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이박사는 항상 커다란 갈색 가방을 들고 다닌다. 그리고 그는 의학박사라기보다는 아직도 의대생 같은 앳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어찌 보면 가방에 끌려다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의 가방 속에는 항상 커다란 영한사전이 한 개 들어 있다. 27년 전 한국을 떠나 우리말이 유창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정확한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민자라서, 동양인이라서, 여자라서 이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세요.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급하게 마음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속에 확신을 갖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꿈을 이뤄가세요.”

그는 요즘 우리말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한국책도 많이 읽고 있다.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되면 호주 한인들이 사는 모습을 영어로 쓰고 싶다는 게 요즘 그의 또 다른 계획 중 하나이다.

[한경리크루트 2003-01] 김태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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