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 <007 어나더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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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MA - <007 어나더 데이>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3.01.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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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 CINEMA


<007 어나더 데이> 과연, 한국을 위해?


고급 턱시도에 둘러싸여 한결 돋보이는 탄탄한 몸매. 세련된 매너와 카리스마, 그리고 여성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섹스 테크닉. 위기의 순간에 더욱 빛을 발하는 냉철한 판단력. 강인한 체력과 탁월한 지성. 결코 실패를 모르는 완벽한 임무 수행능력. 모든 남성의 꿈이자 선망의 대상, 007, 제임스 본드가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온 본드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영 불안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냉전시대에는 구소련을, 탈냉전시대에는 중동을 본드의 유력한 적으로 설정하는 등 (너무나!) 미국적인 정치 시각을 대변해 왔던 이 노쇠한 스파이가 이번 시리즈에서 타깃으로 삼은 공공의 적이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007 어나더데이>는 북한군에게 사로잡혀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하는 제임스 본드의 모습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14개월 동안 계속된 혹독한 고문을 견딘 본드는 때마침 생포된 북한측 테러리스트 자오와의 포로교환을 통해 풀려난다.
하지만 부상을 입고 본국으로 송환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보누설 혐의. 잔혹한 고문을 이를 악물어가며 견뎠건만, 포상은커녕 불명예스러운 혐의를 받게 된 본드는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병상을 탈출한다.

사실을 밝혀줄 자오의 행방을 쫓아 홍콩과 쿠바를 전전하던 007, 언제나 그렇듯 그곳에서 조력자이자 섹스 파트너인 본드걸을 만난다. 그녀의 이름은 징크스. 미국 NSA소속 첩보원이다. 제임스 본드는 징크스와 함께 침대와 전장을 누비며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안팎의 적을 색출, 그들을 응징함으로써 정의(!)를 구현한다.

영화적으로만 본다면 <007 어나더데이>는 전편들에 비해 한층 스피디하고 화려해졌다. 티모시 달튼, 로저 무어, 숀 코넬리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가장 본드다운 본드’로 꼽힌 피어스 브로스넌이 또다시 주연을 맡은 <007 어나더데이>는, 본드 탄생 4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초특급 프로젝트다.

하여, 리 타마호리 감독은 이전 작품들 중 인상적인 몇몇 컷을 차용해 마흔 번째 생일을 맞은 스파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동시에, 장쾌한 액션과 CG, 한층 확장된 스케일로 적극적인 관객 공략에 나선다. 즉 과거의 작품에서 발췌한 의상과 대사 등으로 기존 007 마니아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한편, 예전의 스턴트 중심의 액션을 대규모 특수촬영신이 삽입된 신세대적인 액션으로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

이와 함께 포로가 되더라도 절대 스타일을 구기지 않았던 본드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고, 장장 14개월 만에 ‘포로교환’이라는 방법으로 가까스로 본국에 돌아오는 수모를 겪게 함으로써 전지전능한 본드 이미지의 일대 전환을 시도한다.

하지만 화려한 외피에 비해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심각하다. 미국 개봉 첫 주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을 누르며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던 007은, ‘한국을 구하라’는 미션 수행에 앞서 한반도 가득 넘실거리는 ‘반미정서’ 극복을 당면 과제로 삼아야 할 판이다.

<007 어나더 데이>에서 말 그대로 당연히 제거되어야 할 ‘악의 축’ 으로만 묘사되어 있는 북한, 한반도의 운명을 오로지 007의(미국의) 처분에만 맡기는 낙후된 정치의식과 생활환경을 지니고 있는 남한 등 한국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그렇지 않아도 ‘여중생 장갑차 사건’으로 팽배해 있는 반미감정을 더욱 자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제나 시리즈의 엔딩을 장식하는 본드걸과의 섹스가 하고 많은 장소 중 하필 사찰에서 이뤄진다는 점은, 그동안 누적돼 왔던 ‘동양 문화를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몰이해와 폄하’에 대한 불만과 겹쳐지면서 분노를 더욱 증폭시켰다. 한국을 구한다는 어불성설 장광설을 늘어놓았지만, 이와 같은 정치적 혐의 때문에 사면초가에 빠진 본드.
패배를 모르는 세기의 스파이, 제임스 본드는 과연 ‘사방의 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감독 : 리 타마호리 주연 : 피어스 브로스넌, 할리 베리, 릭 윤
개봉일 : 2002년12월 31일

[한경리크루트 2003-01] 조영주·조이씨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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