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MANAGEMENT -‘진실된 순간’을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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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MANAGEMENT -‘진실된 순간’을 가져라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3.03.0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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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IOR : HR MANAGEMENT ‘100만 지식근로자’ 길 라잡이


‘진실된 순간’을 가져라


인력자원개발 전문업체인 날리지뱅크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지식근로자 골든룰 11가지 중 여섯번째 ‘시간과 경력을 장악하라’를 소개한다.
여기서 시간은 양이 아닌 질적인 시간으로 연속적인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진실된 순간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만약 당신이 “시간이 몇 시입니까?”라고 누군가에게 물을 땐 “예! 12시 30분입니다”라고 답할 것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에게 “살아 있는 시간을 묻고 있습니까? 죽은 시간을 묻고 있습니까?”라고 다시 질문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아마 당신은 나에게 “이 사람, 정신 나간 거 아냐!”라며 돌아설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시간에 대해 질문 좀 합시다”라고 물으면 당신은 시계를 보면서 지금은 몇 시, 몇 분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에게 시간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지금 어떤 시간을 관리하고 있습니까?”라고 한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말장난하고 있는 것이냐, 쓸데없는 말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시간에 대해서 지나 가는 시간이나 주어진 시간,

읽을 수 있는 시간 등으로만 생각하고 답하도록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관리하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고 답하도록 길들여져 있다면 미친 사람 취급은 안 할 것이다. 오히려 몇 시, 몇 분이라고 답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시간을 컨트롤 하자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는다. 손목이 아프기 때문도 아니고 시계가 싸구려라기 때문에 부끄러워서도 아니다. 이유는 보는 시간과 읽는 시간이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필자가 이 글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으며 숨을 쉬고 컴퓨터 자판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원고를 쓰고 있다. 그 와중에 머리 속으로는 무슨 글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TV를 통해 영화 장면이 끊임없이 지나가고 밖에서는 자동차 소리와 더 나은 삶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아내와 처제는 함께 여유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으며, 길거리 과일 장사는 하나의 물건이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여기 이 시간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 속에서 시계가 몇 시를 가리키느냐가 무슨 소용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시간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간에 대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고자 선각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는 이렇게 설명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가 과연 그것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시간에 관해 웬만큼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누군가 내게 묻지 않는다면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솔직히 나는 알지 못한다.”

그는 시간을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닐 것이다. 위대한 성자도 시간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이라 할 것인가?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시간은 단순히 여러 사건들의 순서일 뿐이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사건들의 순서일 뿐,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사건의 순서를 통해 시간을 측정하는 동시 다발적인 사건(simultaneous events)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 10가지 자연법칙의 저자인 하이럼 스미스(Hyrum W. Smith)도 시간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인생을 컨트롤하는 것은 시간을 컨트롤한다는 것이고 시간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컨트롤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시간의 개념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시간은 사건들의 연속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들이다.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사건을 관리하는 것이다.

필자는 오늘 몇 가지 동시 다발적으로 지금 여기의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직면해 있다. 오늘은 일요일 저녁이다. 필자에게 주어진 몇 가지 사건들이 있다. 일요일인 만큼 집에서 쉬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친한 친구로부터 술 한 잔 하자는 전화가 왔다. 동시에 휴가놀이 온 처제 가족이 원고 쓰는 것을 미루고 술 한 잔 하자는 제의를 했다.

일요일 저녁 TV에서는 재미있는 프로가 많이 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잠을 자고 싶은 생각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건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있다. 이 사건들을 어떻게 할까? 나는 고민 끝에 원고를 계속 쓰기로 결정했다.
왜냐하면 당초 이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었기에 당연히 글을 쓰는 것이 생산적이라 생각했다.

나는 위의 몇 가지 사건들을 결정하려는 순간, 약간의 갈등을 경험했다. 그것을 수용하느냐, 수용하지 않느냐는 내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가 술을 한 잔 하자고 한다. 친구에게 이해를 구하고 그것은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만약에 고객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결정하기 위해 내개 술을 한잔하면서 의논하자고 한다면 나는 그 때 갈등을 해야 할 것이다. 또 연구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 아내가 몸이 아파 나를 찾는다면 이 때 역시 어느 것을 수용해야 할지를 고민할 것이다.

또 다른 사건인 처제와의 저녁 미팅. 나는 지금 글을 쓰기 위해서 있지만 처제가 찾아와 나에게 긴요한 일을 상의하기 위해 만나자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까를 놓고 갈등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시간을 관리하는 지식인으로서 판단해야 할 중요한 사건관리 수용영역인 것이다. 시간을 관리하는 것도 지식인의 중요한 몫이다.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가?


사건의 수용영역 관리로 현명한 판단을
게슈탈트 심리학의 창시자인 프레드릭 플즈는 “지금 여기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들은 사건의 중심에서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간의 관리자인 것이다.

자신의 일을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의 방법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인생을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기본이다. 즉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사건을 관리하는 것이고 수용영역을 잘 관리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사건이고 내일 세미나에서 강의를 하는 것도 사건이고, 회의를 통해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는 것 또한 사건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의 연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을 관리한다는 것은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고 사건들을 적절하게 잘 수용, 활용하는 것이다. 사건은 연속적인 것도 있고 아주 짧은 순간적인 것도 있다.

당신이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사건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지식인으로서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기본이다. 그러한 사건들의 상당한 부분은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용해야할 것들도 있다.

그것은 불가항력으로 관리가 불가능하다. 당신이 월급 사원이라면 분명히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회의에도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용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그 회의에서 ‘의견을 말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는 순전히 당신이 판단해야 할 사건이다. 만약 당신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무엇인가 가치가 있다면 분명히 말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바로 당신에게 주어진 사건의 수용영역이다.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분석해 수용영역에 포함되는 것들을 기록해보라. 어떤 것을 수용할 것인가는 부가가치가 높은 것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때로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한다.

이 때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인생살이의 근본 문제가 될 수 있고 아니면 중요한 사업적인 판단이나 인생의 진로를 판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한순간의 판단은 자신의 삶과 사업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다. 몇 십 년의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이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실패하는가 하면 많은 세월동안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한 순간의 올바른 판단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우리나라가 IMF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많은 고통을 당했고 국민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냉철하고 올바른 선택의 필요성과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반성, 새로운 내일을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경험했다.

48년 동안 월드컵에서 한번도 승리하지 못한 우리나라 축구가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를 통해 세계 4강이라는 신화를 경험하면서 우리에게도 능력이 있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5년이란 짧은 시간의 노력으로 IMF를 벗어나는 국민적 저력을 발휘하는 모습도 보여 줬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은 우리에게 시간과 사건의 가장 효과적인 활용방법에 대한 경험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에는 질과 양이 있다.
시간에는 양의 시간이 있고 질의 시간이 있다. 국어사전이 시간을 양적인 개념으로 해석해 놓은데 반해 영어사전은 시간의 질적인 부분을 더 중요시한 해석을 하고 있다.

국어사전에서 시간이란 ①어떤 시각에서 다른 시각까지의 동안 ②무슨 일을 하기 위해 정한 일정한 길이의 동안 ③과거로부터 현재, 미래로 끊임없이 이어져 머무름 없이 일정한 빠르기로 옮아 간다고 생각하는 것 등이다.

반면 영어사전에서 시간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며 일어나는 사건들의 연속체로 정의하고 있다. <하이럼 스미스 저. 김경섭 옮김, 성공하는 시간관리와 인생관리를 위한 10가지 법칙 36페이지 참조>

전자에서 설명하는 시간에 대한 해석은 그야말로 관리중심의 시간이 아닌 흘러가는 시간이다. 그러나 후자에서 해석한 시간의 내용은 양보다는 관리가 가능한 질을 더 중요시한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시간의 의미는 “관리가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시간의 관리가 불가능한 것인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질과 양의 시간 결과는 너무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다음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그것은 다름 아닌 97년에 발표된 ‘부즈·엘런 & 해밀턴 한국보고서’와 ‘맥켄지 보고서’가 그것이다.

“한국은 세계경제 대전에서 패배했다. 한국경제의 생산성은 미국의 2분의 1이다.” 그리고 한국보고서에서는 “한국의 경제기적은 끝났다”고 선언했으며 이 내용들이 문서화되기 전에는 모 경제지가 “한국경제 위험을 알리는 한국보고서”의 내용을 기사화했다. 그 때 정부에서는 항의단을 파견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전 국민이 익히 잘 알고 있는 한국보고서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바로 시간의 질과 양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30년 동안 고도성장을 하면서 1인당 GNP(국민총 생산) 1만불이라는 경이적인 경제 기적을 이룩한 것이다.

여기서 30년의 경제 성장은 양의 시간이다. 그러나 97년 12월 3일 한국이 IMF를 맞게 된 것을 모 경제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이 IMF의 멍에를 쓰게 된 이유를 바로 ‘지식격차’에서 찾는 것이다. 한 마디로 선무당들이 나라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이런 표현도 있다. “정책을 입안하는 당국자뿐만 아니라 직접 실무를 담당하는 기업관계자들마저도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상황변화에 전혀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업무수행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일을 맡아서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이상의 내용에서 우리는 시간의 질을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환란의 시간”은 경제성장 30년과 비교하면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전 국민을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수없이 많은 실업자들이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안타까운 일과 가정파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자살(98년 한해 1,500명)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맞게 된 것이다.

이외에 또 하나 시간의 질과 관계되는 사실이 있다. 94년 6월14일 미국이 북한 미사일 공격 계획을 수립하고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 때 미국이 북한을 공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미국은 이와 관련 미군 약 8만 명, 한국군 약 40만 명이 전사할 것으로 분석했다. 실로 소름 끼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순간 일부 사람들은 흥청망청이었고 정부와 권력자들은 정쟁에 몰두하고 있을 때가 아닌가?

그 때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전쟁을 결의하기 몇 초전에 특사로 나선 카터 미 전 대통령이 북한과의 중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몇 초의 순간은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되는 운명의 순간이다. 당시 몇 초는 “시간의 진실된 순간”이다. 이제 우리는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월드컵 축구에서 4강이라는 신화를 경험했고 새 정부를 맞이해 2003년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 핵문제는 세계적인 관심과 한반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질적 시간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실제로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시간과 사건을 관리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흘러가는 양의 시간에 기대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하는 디지털시대에는 시간의 질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성공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시간의 영역은 순간적이다. 한순간에 역사가 바뀌는 경험을 하고 한순간에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하는 것이 사이버 공간의 시간이다.

그래서 사이버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함께 경험하는 시간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사이버 시간은 양의 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질의 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진실된 순간의 시간관리
그럼 ‘진실된 순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스페인하면 투우경기를 기억할 것이다. 엉뚱하게도 진실된 순간이란 것이 투우경기에서 나온 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놀랄 것이다.

투우사가 경기를 하면서 붉은 천으로 소를 자극하고 소는 경기시간이 지날수록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투우사를 공격한다. 이 과정에서 소의 눈에서는 적개심이 불타는 눈빛으로 투우사를 공격한다. 마지막 순간 투우사는 자신의 칼로 소의 등줄기에 정확하게 일침을 가한다.

칼은 정확하게 소의 심장을 한치의 오차 없이 관통한다. 그 순간 그렇게 설치던 소는 거짓말 같이 최후를 맞는다. 이것은 투우사의 능력이고 기술이며 투우에 대한 마지막 배려다.

투우경기를 관전하는 사람들은 투우사가 마지막으로 일침을 가할 때 절박할 정도로 간절하게 소를 빨리 죽여 달라는 애원의 눈빛을 보낸다. 진실로 나를 죽여 달라는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 순간이 ‘진실된 순간’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사형수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삼중스님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아무리 사악한 사형수라 해도 마지막 순간에는 진실된 순간을 맞이한다고 했다.

스칸디나비아 항공회사 얀 칼슨 사장은 바로 이러한 순간의 시간과 사건을 관리하면서 고객만족으로 회사를 살려내 ‘고객만족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았다. 얀 칼슨 사장은 고객을 맞이하는 사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했고 사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고객만족을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사례는 고객만족과 권한이양(Empowerment)을 추구하는 기업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진실된 순간과 상실된 순간
어느 날 비행기 이륙시간을 30분 앞두고 허겁지겁 달려온 한 신사가 다급하게 “아가씨! 지금 11시30분인데 12시 비행기표가 있습니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비행기표는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안 신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비행기가 없어 국제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면 자신의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미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비행기표를 끊어주는 여사원과는 전혀 무관한 사실이다. 그러나 사연의 자초지종을 들은 여사원은 담담하고 진지한 표현으로 “손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 표를 구하여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고 신사는 순간 전적으로 그 여사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 여사원이 방송을 통해 “이런 사연이 있으니 12시 비행기표를 가지신 분 중에 바쁘지 않으면 표를 바꿔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방송했다.

물론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상의하지 않은 본인만의 판단으로 방송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표를 바꿔 주는 사람이 없었다. 신사에게는 초조하기 이를 때 없는 순간이었다.

그 때 방송에서는 “손님 중에 표를 바꿔 주시는 분에게는 5달러를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액수는 10, 20, 50, 100, 150달러로 점차 높아졌다.

드디어 한 사람이 나타나 신사는 비행기의 정상적인 표 값을 지불하고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고 그녀는 비행기 표보다 훨씬 많은 돈을 표를 바꿔준 사람에게 지불했다.

그런데 그 표의 값은 회사의 공금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은 신사가 국제회의장에 도착해 호텔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을 찾는 전화가 온 것이다. 그 전화는 공항에서의 그 여사원이었다.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손님 국제 회의장에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저의 항공회사로서는 손님 같은 분을 무사히 모시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국제회의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사건은 무너지는 스칸디나비아 항공회사를 살아날 수 있게 했던 ‘진실된 순간’이었다.

진실된 순간은 단순한 15초의 시간이 소모되는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당한 지식과 기술을 가진 질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이러한 진실된 순간이 존재한다. 그 한순간의 판단과 결정에 공든 탑이 무너지기도 하고 무너지는 탑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는 것이다.

진실된 순간의 반대는 상실된 순간이다. 필자가 비즈니스 관계로 일본을 다녀오던 어느 날이다. 비행장에 도착해 모 항공사의 비행기표를 구입하기 위해 찾아 같다.

“아가씨 비행기표 있습니까?” 여사원은 고개도 들지 않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아가씨 지금 비행기표 있습니까?”라고 물었으나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더 큰소리로 “아가씨 비행기표 있어요! 없어요!”라고 화를 내면서 이야기를 했더니 “손님 없다고 했잖아요!”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 말이 나오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회사의 항공기를 지금도 타고 있다. 두 회사 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상실된 순간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의 사건들을 진실된 순간을 만들 것인가? 상실된 순간을 만들 것인가는 자신이 판단해야 할 인생의 절박한 순간들이다.
지금 당신 노트에 당신이 경험한 진실된 순간과 상실된 순간을 기록해 보라! 그리고 다시는 상실된 순간이 시간관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져보기 바란다.

[한경리크루트 2003-02] 이종훈·날리지뱅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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