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KOREAN-김선영 (주)민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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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KOREAN-김선영 (주)민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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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5.1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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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 GLOBAL KOREAN


호주 최대의 한국 미디어&마케팅 리더가 목표!



김선영

(주)민교 사장


김선영 사장, 그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의 얼굴은 세 개일지도 모른다.
조용하고 다소곳해 보이는 외모를 지닌 그이지만 내면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뜨거운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 김 사장은 무슨 일이든 한번 마음 먹은 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스타일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라고 일컫는다.
이같은 그의 열정과 오기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조수미는 물론, 패티 김과 앙드레 김을 세웠고 ‘난타’ 공연을 통해 호주 사회에 한국을 깊숙이 각인시켜 놓았다.


호주 한인 문화생활 책임지는 회사
하지만 그의 세 번째 모습 즉, 자연인 김선영의 모습은 세인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을 날밤을 새고 속된 말로 아랫사람들을 들들 볶아서라도 이뤄내고야 마는 그이지만 혼자 있을 때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고독하고 외로운 모습이 된다.

사장은 어떠한 경우든 직원들 앞에서 지친 모습,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혼자 눈물 짓는 경우도 많다.
94년 호주로 이민 온 김선영 사장은 95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만든 게 여행사였고 97년에는 면세점을 인수, 사업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호주 한인사회 최대의 문화공연기획회사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 민교를 세운 건 99년의 일이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여행사와 면세점이 든든한 기반이 됐다.

“사업 초기부터 민교 창업을 꿈꿨습니다. 남의 나라에 살다 보면 아는 사람도 없고 문화적 갈증도 심하게 마련입니다. 이민사회에서의 문화생활이라는 게 한국 TV의 드라마나 쇼 프로 등을 담은 비디오 테잎을 보는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거창한 얘기 같지만 호주에 사는 한인들에게 제대로 된 문화생활의 장을 마련해주고, 호주 사회에 한국 문화를 깊숙이 심어줄 수 있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김선영 사장은 일에 미쳐 산다. 그리고 그는 남들이 보기에 엉뚱하고 무모해 보이는 대형 사고들을 자주 친다.
점잖고 권위 있는(?) 공연만을 올린다는 오페라 하우스 관계자들과 끈질기게 싸워 한국의 대중 가수와 패션 디자이너를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세웠고, 한국 개봉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최신 한국 영화들을 호주에서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99년에 쉬리로 호주에 한국 영화 돌풍을 일으키더니 이후 해적 디스코왕 되다, 광복절 특사, 파이란, 취화선, 가문의 영광, 집으로,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을 잇달아 들여 왔다.
그것도 모자라 작년에는 아예 시드니 중심부 달링 하버에 한국 영화 전용관 ‘민교아트홀’을 만들었다. 최신 설비를 갖춘 이 영화관은 315석 규모의 1관과 100석 규모의 2관으로 구성돼 있는데 호주 한인들을 위한 문화공간은 물론, 호주 내 여러 민족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문화의 장을 꿈꾸고 있다.

올해로 9년째 시드니에서 사업을 펼쳐오고 있는 김 사장은 사실은 호주에 오기 전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타고 난 사업가적 자질과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대학 졸업 후 청아여행사를 차려 크게 성공, ‘스물 일곱 살 여사장’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언론들을 흥분 시켰던 주인공이다.

그러한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97년 면세점을 인수한지 두 달 만에 한국이 IMF를 맞으면서 그 여파가 호주에도 고스란히 밀려왔다. 어찌 보면 최대의 위기였다. 김 사장은 그때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 이제 막 40줄에 들어선 나이임에도 한 달에 한 번씩 염색을 하고 있다는 고백이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더욱 공격적으로 사업을 전개, 개인이 아닌 기업과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김 사장은 자신의 장점(그는 굳이 ‘성공 비결’이라는 표현을 사양했다) 을 무슨 일이든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것,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부족한 부분은 책을 통해 채우는 것, 항상 자신감을 갖고 도전할 수 있도록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등을 꼽았다.

사업을 제대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아이템, 자본, 노력이 3박자를 이뤄줘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게 한국과 호주에서 17년째 사업을 벌여오는 그가 터득한 평범한 진리이다.

“2001년 ‘난타’ 공연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연 홍보를 했고, 각급 학교들을 찾아가 학생들의 단체관람을 유도했습니다. 시드니 중심가는 온통 난타 포스터와 플래카드로 뒤덮였고, 신문, TV 등 매체에도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들였습니다. 공연 기간 내내 공연장이 꽉꽉 들어 차고 한인들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도 온통 난타 열풍에 휩싸였습니다.”


영원히 못 잊을 ‘난타’ 공연 감동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영화 ‘쉬리’를 수입, 상영했을 때도 가슴 찡한 감동을 받았다. 한인들은 한국 영화를 호주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감격스러워 했다.
시드니 한인들은 물론 멜번에서 10시간씩 자동차를 타고 쉬리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왔고, 영화를 보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들에서 그도 진정 보람찬 일을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민교는 ‘호주 최대의 한국 종합 미디어 & 마케팅 리더’를 지향한다. 현재 모기업 민교를 중심으로 여행사, 면세점, 잡지사, 마케팅/컨설팅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의 시너지 효과를 합쳐 종합 미디어 & 마케팅 회사를 형성한다는 구상이다.
사업이 더 잘 되면 호텔사업도 하고 싶고, 미국과 연계해 진행하는 광고사업도 계획에 넣어두고 있다.

김선영 사장은 요즘 시드니에서 얼굴 보기가 무척 어려운 사람 중 하나가 됐다. 이것저것 벌려 놓은 일도 많고 한국이다 어디다 해서 해외출장도 잦은 때문이다.
대체 무슨 일로 그리 바쁠까? 돈은 좀 벌었을까? 김선영 사장의 가슴 속에서는 과연 어떤 모습, 어떤 색깔의 꿈들이 크고 있을까?

“남태평양 섬들의 전통 춤과 노래로 이뤄지는 원주민 라이브 쇼 ‘남태평양의 보석’ 준비로 바빴습니다. 이제 곧 한국에서 ‘민교 코리아’ 법인이 발족 됩니다. 아무래도 한국과 연계된 사업들이 많기 때문에 현지법인의 필요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돈이요? 못 벌었죠. 고생 끝에 돈 좀 벌만 하면 사장이 엉뚱한 사업을 벌여 돈을 까먹는다고 주위에서 뭐라고들 그럽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얼마 안 되는 제 개인 재산마저도 몽땅 회사에 밀어 넣었습니다.(웃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돈을 아주 많이 벌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를 하나 만들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그림은 좀 더 지나서 공개하겠지만 기존에 있는 학교들과는 전혀 다른 매우 독특하고 획기적인 학교가 될 것입니다.”

[한경리크루트 2003-04] 김태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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