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 ‘패닉촌(村)’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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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 ‘패닉촌(村)’ 인가?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3.05.1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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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II


고시촌 ‘패닉촌(村)’ 인가?


취업에 장기간 실패했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적응하지 못한 채 ‘인생역전’을 꿈꾸는 30대들이 고시촌에 집합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오랜 기간동안 사회와 격리된 채 비경제활동인구로 전락되고 있다는 것.
대저택에나 있을법한 ‘패닉룸’을 독서실 삼아 그 속에서 ‘나 홀로 시간’을 가지며 외부세계와 담 싼 이들에게 물어보았다.
“고시촌은 과연 ‘패닉촌(村)’입니까?”라고.


‘고시 1번지, 신림동’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로또복권의 열풍도, 개그맨의 유행어도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다. 그저 어스름한 옷차림이 ‘정장’이요, 너덜더널한 운동화가 ‘구두’요, 며칠 동안 감지 않은 머리가 이곳의 ‘헤어스타일’이다.
거기에 ‘눈곱’은 마치 고급차량의 옵션과도 같이 이들에겐 필수사양이 됐다. 그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지도 아니 아예 그런 생각조차 안한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미국과 이라크간 갈등도 이들에겐 식상하다. 유사이래 공부와의 ‘무혈전쟁’을 펼치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뭇사람들이 평생 읽을 책의 양을 단숨에 독파하는 이들의 무서운 학구열엔 가히 ‘오마주’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사시정원 1,000명 시대. 바야흐로 국민들의 질 좋은 법률서비스를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순수 고시에 매진한 사람과 단지 취업 연령제한에 걸려 고시촌으로 몰리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물론 공부를 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도, 명분도 없다. 다만 사회의 ‘중간관리자급 리더’의 역할을 담당해야할 30대들이 사회에서 실종(?)된 채 ‘비경제활동인구’로 전락되고 있음은 국가적촵사회적으로 도 관망만 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취업 연령제한에 걸려 기업체 입사를 포기한 김모씨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뒤 유학과 취업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2년을 넘기는 바람에 취업시기를 놓쳤다”며 “오랜 고민 끝에 사법시험에 응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따고 귀국했다”는 박모씨도 사실상 6년째 사회생활에서 격리(?)된 상태. 박씨는 “한때 잠시 취업을 했으나 ‘분위기가 생각 같지 않아’ 그만뒀다”며 “박사과정과 고시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현재의 심정을 토로했다.

이들 30대들은 취업과 생계 그리고 성공을 담보로 공부에 매진하는 ‘삼중고’에 노출되고 있다. 고시컨설턴트 전문가는 “이들 30대들이 고시촌으로 속속 모이고 있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며 “무작정 이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과거엔 고시 자체에 목적을 둔 사람이 많았지만 현재는 사회생활 도피성 공부도 적지 않다”며 “고시패스 신드롬을 갖고 취업연령 제한에 걸린 사람들이 대거 고시촌에 모여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흔들리는 30대들의 늦깎이 선택, 고시.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사오정(45세 정년퇴직자)’은 되기 싫다. 때문에 더더욱 고시촌을 떠날 수 없다”고. 하지만 고시를 선택한 이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위협을 받고 있다.
일단 ‘패스만 하면 장밋빛 인생을 보장받을 것’이라는 보상심리 때문에 자신의 젊음을 공부와 맞바꾼 채 불안하면서도 안전한 ‘패닉룸’사이를 위태롭게 오가고 있다.

[한경리크루트 2003-04] 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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