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평등아닌 기회의 평등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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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의 평등아닌 기회의 평등을 달라
  • 한경리크루트
  • 승인 2003.06.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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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IAL REPORT : 입사지원서 다시 보기


능력의 평등아닌 기회의 평등을 달라


‘인재상은 변하는데 입사지원서는 그대로다?’
입사원서를 써내려가던 지원자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이 부끄럽진 않지만 이미 출발선에서 뒤처진 기분이다. 다음은 학점과 자격증 소지 유무와 외국어 성적. 여기까지는 납득이 간다.
다음은 가족사항. 가족의 나이와 직업, 거주형태와 재산의 규모를 묻는다. 종교와 병력사항도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도대체 일할 사람을 뽑겠다는 것인지 배우자를 고르겠다는 것인지 한숨이 나온다.

기업의 인사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얼마전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직접적인 업무와 무관한 사항들로 인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개인 신상과 신체사항, 가족관계 등 평균 19개 항목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다.

이를 받아들여 삼성전자 포스코 LGCNS 국민은행 SK 한국전력 등 38개 기업체들이 그동안 입사지원서에 기재해 왔던 차별적 요소를 삭제키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입사지원서 작성 방식 변경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뒤집어보면 그동안 채용과정에서 차별적 요소가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도 된다. 심지어 누가 학비를 내줬는지, 부모가 생존하는지, 가족 월수입은 얼마인지를 묻는 항목도 있었다. 과연 이러한 사항들이 채용 후 회사생활을 하는데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까.


부모의 능력은 나의 능력?
대부분의 회사가 교부한 입사원서에는 부모의 학력과 직업, 부동산 소유현황, 재산 등을 적는 항목이 있다. 입사지원을 한 윤모씨는 “본인이 입사하는데 왜 부모의 재산보유현황이 필요한 건지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모 증권회사에 입사지원을 한 정모씨는 “실제로 모든 조건이 다른 지원자보다 뛰어났음에도, 집안에 투자할 만한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입사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며 “이 업계 선배들이 해준 얘기가 맞았다”고 토로했다.

입사에 능력이 우선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여전히 학연과 지연, 배경이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다. 합리적인 이유없이 충족하기 어려운 신체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대상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예를 들어 판매사원을 채용하는 경우 ‘키 165cm 이상인 자’로 한정을 한다던지, 몸무게를 제시해야 했다. 명문대 출신 여성 이모씨(25)는 아버지 직장 덕분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오는 등 영어 구사능력이 수준급이다.

또 자원봉사 활동도 열심했다. 그러나 정작 취직시험을 보면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좀 뚱뚱하다는 이유때문이었다. 나이 제한도 입사지원 자체를 차단하는 벽이다. 통상적으로 만 27세 미만을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 더군다나 여성의 경우 거기에서 2~3세를 빼는 경우도 많다. 학문이 아니라 연령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석·박사 과정까지 밟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학력 실업자 양산이라는 또다른 사회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입사지원에서는 최소한의 이력만 …
이러한 입사지원시의 채용에 관한 차별에서 여성의 입지는 더욱 좁다. 여성부는 ‘채용과정에서의 남녀차별 방지를 위한 협조 요청’에서 직원 모집과 채용하는 데 있어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 키 체중 등의 신체적 조건을 제시하거나 미혼일 것을 조건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2002년 5~6월 이화여대와 한국여성연구원이 서울소재 중소기업 100곳의 인사담당자와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에서 인사담당자 60%는 모집과 채용과정에서 직종, 직급별로 남녀를 분리하여 모집하는 관행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인사담당자 19%는 여성에게만 혼인여부, 용모, 신체조건, 연령조건을 부과하는 경우가 있다고 응답했다. 남성의 경우는 ‘전공성적/자격증 소유여부’를 1순위로 본 반면 여성의 경우는 ‘용모/인상/성격’을 1순위로 본다고 대답했다. 즉 나이, 신체조건, 결혼유무 등을 묻는 채용 조건이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는 것이다.

올해부터 시행된 기업들의 차별관행을 시정하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과연 어느 정도의 실효성과 차별항목 삭제가 전 사업장으로 확대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 또한 높다.
한 취업준비생은 “입사지원서에는 회사에 입사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소양을 갖췄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최소한의 이력사항만 쓰도록 하는 게 옳다고 본다”며 굳이 필요하다면 자기소개서를 통해 장·단점과 포부, 업무수행에 필요한 자세와 각오를 밝히면 될 일 아니냐”라고 바람을 토로했다.

성·장애·비정규직·외국인등을 차별하지 않는 세상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가치다. 이 바람이 현실이 될 때 채용기준에 대한 ‘능력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 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경리크루트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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